대법, 피해자에게 1억 위자료 지급 판결한 원심 확정
“피해 당시를 손해 시점으로 보면 부당한 결과 초래”
“진단 때부터 손해발생 현실화…이때 소멸시효 시작”
민법, ‘불법행위 한 날부터 10년’을 소멸시효로 규정
A씨, 피해 발생 후 10년 더 지난 후 PTSD 진단받아
이후 가해자 형사 고소 하고 손해배상 소송 제기
[헤럴드경제=안대용 기자] 과거의 성범죄 피해로 인해 시간이 흘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발생했다면, 진단을 받은 이후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시작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9일 A씨가 B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B씨가 A씨에게 1억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도록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성범죄 당시나 일부 증상의 발생일을 일률적으로 손해가 현실화된 시점으로 보게 되면, 피해자는 장래 손해 발생 여부가 불확실해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한다”며 “나중에 손해가 발생한 시점에 소멸시효가 완성돼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게 되는 부당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피해자가 피해 당시 아동이었거나, 가해자가 가족인 경우 등 특수한 사정이 있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의 경우 성폭행 피해 당시 원고의 나이와, 피고와의 관계, 이후 사정 등을 고려하면 2016년 전문가로부터 성범죄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은 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 발생이 현실적인 것이 됐다”며 “이때부터 10년의 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약 20년 전 피해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 소멸시효 완성 여부를 어떻게 볼 것인지였다. 민법 766조 1항은 피해자나 법정대리인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 및 가해자를 알게 된 날부터 3년 간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로 권리가 소멸한다고 규정한다. 2항에선 불법행위를 한 날부터 10년이 지난 경우도 마찬가지로 권리가 사라진다고 정해놨다.
지난 2018년 A씨는 과거 테니스 코치였던 B씨가 2001~2002년 자신을 성폭행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A씨는 2016년 5월 한 테니스 대회에서 B씨를 다시 만난 뒤, 과거 피해 기억이 떠올랐고 같은 해 6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았다. 이후 B씨를 형사 고소하고,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B씨가 답변서를 내지 않아 무변론으로 이뤄졌다. 재판부는 B씨가 A씨에게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항소심에서 B씨는 2002년부터 소멸시효가 진행돼 10년이 넘게 지났기 때문에 A씨의 손해배상 청구 권리가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소멸시효가 지나지 않았다며 1심과 같이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민법 766조 1항의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이란 손해 발생, 위법한 가해행위 존재, 가해행위와 손해 발생 사이 상당 인과관계가 있다는 사실 등 불법행위 요건 사실에 대해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했을 때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또 “766조 2항의 ‘불법행위를 한 날’이란 손해 발생이 현실적인 것으로 됐다고 할 수 있을 때를 뜻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A씨는 B씨에 대해 유죄 판결이 선고된 때에야 비로소 불법행위의 요건 사실에 대해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해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했다고 보인다”며 “민법 766조 1항에 규정된 소멸시효 시작 일은 형사재판의 1심판결 선고일인 2017년 10월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B씨의 불법행위로 A씨에게 발생한 손해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최초 진단을 받은 2016년 6월에 잠재하고 있던 손해가 현실화됐다고 봐야 한다”며 “민법 766조 2항에 규정된 소멸시효 시작일은 이 때가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A씨가 2018년 6월에 소송을 냈으므로 각각의 소멸시효가 지나기 전 소를 제기했다”며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한편 B씨는 2016년 12월 A씨에 대한 성폭행 혐의로 기소돼 2017년 10월 1심에서 징역 10년을 받았다. 이후 항소심과 상고심이 열렸고 2018년 7월 대법원에서 형이 그대로 확정됐다.
dand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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