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신 ‘월하’ 역 맡은 김호영
매 작품 ‘자기화’ 탁월한 19년차 뮤지컬 배우
“월하 역은 유독 칭찬을 많이 들었던 인생작”
떼창·함성은 금물...오로지 박수로 참여 유도
특정 역할 ‘이건 반드시 김호영’ 각인에 만족
월하가 등장하면 무대는 시작된다. “제 역할은 추억여행 가이드예요. 마당놀이처럼 판을 벌이고선 관객에겐 ‘자, 이제부터 이명우의 과거 속으로 들어갑시다’ 하는 거죠. 그러면서 동시에 공연 속으로 관객들을 가이드하고 있어요.”
내년이면 데뷔 20년. 무대에선 늘 주체할 수 없는 끼가 넘쳤다. 매작품 ‘자기화’가 탁월했다. 2009년 ‘자나, 돈트!’로 첫 주연을 맡으며 “티켓 파워가 없어도 흥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고, ‘모차르트 오페라 락’에선 자신의 장점을 십분 발휘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중성 캐릭터를 잘 소화해, ‘여장남자 전문배우’로도 불렸던 그는 변화와 도전에도 소극적이지 않아 많은 순간 배우로의 변곡점을 그렸다. ‘광화문연가’는 그런 김호영의 프로필에도 빼놓을 수 없는 ‘한 줄’이다.
“20년간 많은 작품을 해왔지만, 월하 역할은 유독 칭찬을 많이 들었어요. 저에겐 특히나 의미가 있는 작품이에요.”
‘광화문연가’ 속 월하는 명우의 시간여행 안내자다. 성별도 없고, 연령대도 정해지지 않아 남녀 배우가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 이번 시즌에선 김호영과 함께 차지연, 성규가 연기한다. “월하는 신의 영역이기에, 목소리와 연기를 어떻게 표현해도 극에 피해를 주지 않아요. 배우가 만들어가는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캐릭터예요.” 김호영은 이번에도 자신만의 ‘완벽한 월하’를 만들었다. 이 역할을 통해 극 안팎에서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대중적인 곡들이 나오다 보니 관객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뮤지컬이지만, 자칫 드라마와 연결될 때 내용을 잘 따라오지 못할 수도 있어요. 지금 이 장면이 과거인지 현재인지 알려주고, 대중적 노래와 극 사이를 관객들이 잘 따라갈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 역할이에요. ‘광화문연가’라는 쇼뮤지컬의 MC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코로나 시국’의 ‘광화문연가’ 공연장엔 어려운 점이 많다. 귀에 익은 노래의 향연에도 떼창과 함성은 금물. 오로지 박수로만 공연에 참여해야 한다. 김호영은 공연장의 돌출무대를 활용해 객석의 박수를 유도하기도 하고, 손을 들며 흥을 돋우기도 한다. “개인적인 캐릭터 구축보다는 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공연 전체를 바라보면서 관객들이나 배우들의 그날 그날 컨디션을 체크하게 되더라고요.” 무엇보다 캐릭터 자체가 ‘남다른 흥’을 유지해야 만큼 김호영에겐 안성맞춤이다. “높은 텐션을 유지하는 것이 쉽진 않지만, 약간 굳은살이 있는 상태라고 할까요. 한 번 오르면 무조건 끝까지 가야죠.(웃음)”
수많은 작품으로 무대를 장악했으면서도, ‘광화문연가’는 김호영에게도 도전이었다. 뮤지컬 노래가 아닌 대중가요를 불러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그는 “이번이 두 번째이다 보니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 보컬 트레이닝도 받았다”고 했다.
“차라리 콘서트장에서 가요 한 곡을 부르면 쉬울 것 같아요. 대중가요가 뮤지컬이라는 장르 안으로 들어와 극과 연결해줘야 하다 보니 고민이 많더라고요. 뮤지컬과 가요는 창법과 표현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노래와 선율에 이질감 없이 다가설 수 있도록 고심하면서 부르고 있어요.”
2002년 뮤지컬 ‘렌트’로 데뷔한 김호영은 누구보다 본인의 색깔이 강한 배우다. 지난 20년간 쌓은 필모그래피는 김호영의 독보적인 길을 보여주는 발자취다. 뮤지컬 ‘프리실라’에선 드랙퀸(여장남자)으로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줬고, ‘맨 오브 라만차’에선 산초 역을 통해 코믹 연기의 정수를 보여줬다. 지치지 않는 에너지와 넘치는 끼는 그의 상징이기도 하다. 어떤 배역을 맡아도 자신만의 색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큰 강점이지만, 한 가지 이미지에 갇힌다는 점은 스스로에게 적잖은 고민을 안기기도 한다.
“강렬한 인상과 에너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은 제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른 부분들이 취약할 지라도 지금 보여줄 수 있는 강점들을 더 보여주자는 생각을 할 때도 있고요. 그러면서도 한 가지만 가지고 있는 배우는 아닌데, 어떻게 하면 다른 모습을 알려 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기도 해요.”
무대를 넘어 예능, 드라마 등을 통해 영역을 넓혀가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뮤지컬 ‘킹키부츠’에서의 노멀하고 댄디한 찰리 역은 기존의 이미지를 깬 도전이었다. 선입견을 깨고 오디션에 지원해 합격한 이 역할은 김호영에게도 배우로서 ‘전환점’이 되리라 생각했던 작품이다. “이 작품을 마치면 다양한 장르의 역할들이 쇄도할 줄 알았어요. 작품 하나로 크게 바뀌지 않더라고요.(웃음)”
배우로서 이름을 알리고 싶고, 성공하고 싶었던 20~30대를 지나온 지금의 그는 “조급함을 버리고,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됐다”고 말한다.
“제게도 한 가지 이상의 다른 부분도 있지만, 설사 그것이 보여지지 않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어떤 특정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고, 특정 역할에 있어 ‘이건 김호영이 해야 한다’고 각인이 된다면, 그것만으로 다른 의미의 성공이 아닐까 생각해요.”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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