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훈, BBC콩쿠르 ‘아리아’ 한국인 첫 우승

“월드클래스” 찬사...눈물흘리는 심사위원까지

고3때 뒤늦은 재능 발견...성대결절 시련딛고

‘곡성 촌놈’서 세계 정상 성악가로 발돋움

“자만하지 않고 노력하는 바리톤이고 싶어요”

김기훈이 BBC 콩쿠르에서 코른골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 중 ‘나의 갈망이여, 나의 망상이여’를 부르자 심사위원들이 눈물을 떨구는 모습이 생중계됐다. 그는 비평가들로부터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가수”이자 “이미 월드 클래스”라는 찬사를 들었고, ‘심사위원을 울린 가수’라는 수사를 안게 됐다. [아트앤아티스트 제공]
김기훈이 BBC 콩쿠르에서 코른골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 중 ‘나의 갈망이여, 나의 망상이여’를 부르자 심사위원들이 눈물을 떨구는 모습이 생중계됐다. 그는 비평가들로부터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가수”이자 “이미 월드 클래스”라는 찬사를 들었고, ‘심사위원을 울린 가수’라는 수사를 안게 됐다. [아트앤아티스트 제공]

“영화 ‘곡성’에 나오는 그 곡성 맞아요. 저희 곡성은 ‘골짝나라 곡성’이라고 불러요. 저 곡성 촌놈이에요. (웃음)”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다” 고등학교 3학년이 돼서야 성악을 시작했다. 개인기가 있다면 ‘성악가 흉내’. “김범수의 ‘보고싶다’를 그냥 부르는 것보다 성악으로 부르면 웃기고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그 노래를 듣고 교회 세미나에 온 강사가 김기훈에게 성악을 권했다. 뒤늦게 재능을 발견하고, 성악의 길을 걸었다. “노래 이외에 다른 것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고 한다.

‘곡성 촌놈’의 목소리가 전 세계에 울려 퍼졌다. 지난 6월엔 ‘BBC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BBC 콩쿠르) 대회의 핵심인 오페라 아리아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983년부터 2년마다 여는 ‘BBC 콩쿠르’는 아리아와 가곡 부문에서 우승자를 가린다. 1999년 바리톤 노대산이 가곡 부문 우승을 차지했다. 아리아 부문에서 한국인이 우승한 것은 김기훈이 처음이다.

콩쿠르에서 선보인 곡들을 들려줄 리사이틀(9월 4일·예술의전당)을 앞두고 만난 김기훈(30)은 당시를 떠올리며 “아리아를 불렀을 때 솔직한 심정으로는 심사위원이 미웠다”고 말했다.

“그때 심사위원이 턱을 괴고 어두운 표정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내가 정말 노래를 못하고 있나 보구나, 평생 한 번 있는 무대를 망쳐 놓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우승은 꿈도 꾸지 않았다. 다음 차례였던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성악가에게 우승이 돌아가리라 생각했다고 한다.

김기훈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가 코른골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 중 ‘나의 갈망이여, 나의 망상이여’를 부르자 콩쿠르 심사위원인 로베르타 알렉산더와 닐 데이비스는 눈물을 흘렸다. 유랑극단의 삐에로가 나와 부르는 감미로운 이 아리아는 이전까지 잘 불리지 않았던 곡이다. “사실 심사위원이 콩쿠르에서 운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객관성에서 어긋나고, 심사위원이 제 편을 드는 것 같기도 하고요. 있으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 나중에 생중계된 영상을 보고 정말 놀랐어요.”

김기훈은 ‘BBC 콩쿠르’를 ‘성악판 슈퍼스타K’라고 했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생중계되는 콩쿠르 동안 혹독한 평가가 이어진다. 매 라운드의 노래가 끝나면 비평가들은 참가자의 음악에 ‘한 줄평’을 매긴다. 그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가수”이자 “이미 월드 클래스”라는 찬사를 들었다. 콩쿠르를 마친 이후엔 ‘심사위원을 울린 가수’라는 수사를 안게 됐다.

세계 정상에 서기까지 10여년. 김기훈에게도 인생의 고비는 찾아왔고, 가시밭길은 길었다. 연세대 음대를 졸업하고 독일 하노버 음대에서 최고 연주자 과정을 밟고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시련이 따라왔다.

“군대 전역하고 10개월간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었어요. 군대에서 성대결절이 왔거든요. 학교 유망주로 불리면서 선생님들의 기대도 높았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 정말 무기력해지더라고요.” 노래를 할 수 없으니 성적은 떨어졌다. 자신의 재능과 진로를 의심하던 시기였다. “진지하게 그만 두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플랜B를 세우기도 했고요. 그 무렵 잠깐 복싱 체육관을 다녔는데 관장님이 자질이 있다고, 프로 복싱 선수를 권하셨어요. 그래서 복싱이나 격투기 선수가 돼볼까 생각하기도 했고요.”

노래를 향한 갈망, 갈망 이상의 재능은 그에게 다른 이정표를 보여주지 않았다. “꿈을 찾고 있을 때, 제가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걸 하고 싶었어요. 하필 또 노래가 가장 좋아하는 거였고요.” 플랜B는 있었지만, 무엇도 음악을 대체하진 못했다.

‘BBC 콩쿠르’ 이전에도 세계적 명성은 이미 쌓였다.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1등을 하며 동아시아에선 경쟁자가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2019), ‘도밍고 콩쿠르’로 불리는 오페랄리아 콩쿠르(2019)에서 2위를 차지했다. “1등을 노리고 출전했는데 막상 2등을 하니 기분이 좋진 않더라고요.(웃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선 김기훈이 2등을 하자, 객석과 마린스키 극장 관계자들로부터 “왜 기훈 킴이 1등이 아니냐”는 항의가 나오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항상 1등만 하다가 큰 두 번의 콩쿠르에서 2등을 하니 프로게이머 홍진호 씨가 정말 많이 생각이 났어요.(웃음)” 홍진호는 스타크래프트에서 라이벌 임요환에게 여러 차례 고배를 마시며 2인자에 머물렀다.

그는 “만족하는 예술가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머무르지 않았고, 꾸준히 도전했다. ‘BBC콩쿠르’에 나가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연달아 2등만 해서 2등 이미지가 굳어질까봐 마지막으로 ‘꿈의 대회’에서 우승을 해보고 싶었어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보고 싶었고, 한국인 최초라는 타이틀도 따고 싶었고요.”

이젠 이견 없이 ‘한국인 최초’, ‘세계 최고’의 수사를 안았지만, 지금도 그는 만족하지 않는다. 한국에서의 리사이틀을 마치고 오는 10월 출국하는 김기훈은 독일 뮌헨 바이에른 극장, 폴란드 바르샤바 국립 오페라 극장, 미국 워싱턴 국립 오페라 등 해외 주요 극장에서의 공연이 예정돼있다. 이번 콩쿠르 우승으로 영국 코벤트가든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도 데뷔한다.

“이런 타이틀을 하나 얻었다고 해서 자만하거나 현상 유지를 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어요. 끊임없는 불만족에서 좋은 예술이 탄생하니까요. 만족하는 순간 제 예술 인생은 끝이라고 생각해요. 항상 미래를 향해 노력하는 바리톤이고 싶어요. 정말 잘하는 바리톤이고 싶어요. 소프라노 하면 조수미 선생님이 가장 먼저 생각나듯이 바리톤 하면은 제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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