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김태호 PD)과 ‘개그콘서트’(서수민 PD)는 5000만의 웃음을 끌어내는 동시에 대한민국 사회 전반을 향한 풍자로 뼈 아픈 메시지를 던진다. ‘꽃보다 할배’(나영석 PD)는 대중문화 뒷편에 자리했던 평균 나이 70대의 실버세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낯선 그림으로 세대통합을 이끌었다. 오디션 프로그램 시대를 연 ‘슈퍼스타K’(신형관, 김용범 PD)는 시즌2 당시 허각을 통해 공정사회를 향한 화두를 던졌고, ‘응답하라 1994’는 잊고 있던 시대의 가치를 복고감성으로 버무리며 신드롬에 가까운 사회현상을 만들어냈다.

“진지함을 요구하기 보다는 즐거움을 추구”하고, 그 안에서 던져진 메시지에 주목하는 요즘을 흔히 “예능이 만능”인 사회로 부른다. “예능이 곧 우리의 삶”이 된 시대에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 1년 간의 기획 및 집필기간을 거쳐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예능PD 여섯 명의 직장생활 노하우를 담은 저서를 펴냈다.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중앙북스)라는 제목의 책이다. 집필기간만 놓고 보며 10개월이지만, 지금은 스타 PD가 돼 각광받는 여섯 명과 정 평론가가 쌓아온 지난 8년여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대중문화를 이끄는 가장 선봉에 선 사람들로 예능PD가 각광받고, 그들의 창의력이 한류를 움직이는 일등공신이 된 때에 ‘콘텐츠 제작자’들을 조직 내의 일원으로 바라본 시각이 독특하다. 이미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여섯 명의 PD(CJ E&M 나영석 , KBS 서수민, CJ E&M 신원호, CJ E&M 김용범, CJ E&M 신형관, MBC 김태호)가 만들어내는 콘텐츠의 제작과정과 그들의 인터뷰를 통해 발견한 업무방식은 꽤 흥미롭다. 이 책이 대중문화를 다루면서 경영 분야의 자기계발서적으로 분류된 이유다.

최근 헤럴드경제 사옥에서 만난 정덕현 평론가는 “예능PD들은 가장 프론티어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며 “세상의 변화를 민감하게 바라보고 프로그램에 투영한다. 달라진 세상에서 무엇을 만들어야하는 지에 대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변화의 흐름을 잘 파악하는 사람들의 작업방식에선 사회초년병은 물론이거니와 기업이 배울 수 있는 성공 노하우가 담겨있다.“대중문화에서 예능PD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은 산업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면 하나의 상품이 된다. 이를 즐기는 시청자, 즉 대중은 달리 말하면 소비자”라는 정 평론가는 여섯 명의 PD들을 여섯 개의 키워드로 정의했다. 나영석 PD의 ‘미완성’, 서수민 PD의 ‘관계’, 신원호 PD의 ‘무경계’. 김용범 PD의 ‘스토리텔링’, 신형관 PD의 ‘마니아’, 김태호 PD의 ‘도전’이다.

전 세대를 아우른 소통의 콘텐츠로 각광받은 ‘꽃보다’ 시리즈로 예능한류를 이끌고, ‘삼시세끼’로 각박한 도시인에게 아날로그 정서를 깨운 나영석 PD의 키워드가 된 ‘미완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 평론가는 “과거 사람들은 일의 마무리는 완벽함이라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약간의 여지를 남겨야 하는 시대가 됐다”며 “완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중 혹은 소비자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겨 쌍방향 소통을 이뤄내야 한다는 의미에서 ‘미완성’이라는 키워드를 붙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신드롬에 가까운 열풍을 몰고 온 신원호 PD의 키워드가 된 ‘무경계’는 기업이 추구하는 ‘혁신’의 가치와 닮았다.

KBS에서 ‘공포의 쿵쿵타’를 연출하며 회식자리마다 ‘쿵쿵타 게임’ 붐을 일으키고, ‘나는 남자다’ 를 통해 중년남성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던 신원호 PD는 CJ E&M으로 몸을 옮겨 예능이 아닌 드라마를 통해 다시 한 번 대중을 사로잡았다. 과거엔 각자의 영역이 경계를 나누듯 구분돼있었지만, 정덕현 평론가는 “신원호 PD의 사례처럼 다큐, 예능, 드라마의 경계라는 것이 무의미하게 됐다”고 읽었다. 이미 ‘융복합 시대’로 접어든 때에 조직은 조직원에게 멀티태스킹을 요구한다. 정 평론가는 이를 “시대적인 변화”라고 짚으며 특정 분야에 고립되지 않고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경계를 허무는 작업방식을 높이 평가했다.

‘슈퍼스타K’를 연출한 김용범 PD의 키워드는 ‘스토리텔링’이다. 정 평론가는 이에 대해 “스토리텔링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며 “스토리의 전달 이전에 잘 듣는 것이 우선해야 하며 스토리를 전하는 것뿐이 아닌 정서를 전달해야 마음을 움직인다”고 말했다. 또 “소수집단으로만 여겨지는 마니아는 일과는 정반대의 개념으로 생각하지만, 마니아의 남다른 열정이 일로 연결될 때 폭발할 수 있는 힘이 나온다”는 것도 정 평론가의 생각이다.

자타공인 국내 최고의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서수민 PD를 설명하는 키워드 ‘관계’는 “200여명의 개그맨을 탈 없이 관리하는 조직관리 능력”으로서의 해석이며, 김태호 PD의 ‘도전’은 대한민국 대표 장수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만든 한국형 리얼리티 버라이어티의 도전, 시스템의 혁신으로의 도전, 또한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예술가로서의 도전을 의미했다. 이미 오랜 시간 인연을 쌓아온 스타PD들의 이야기를 색다른 시각으로 접근한 정 평론가는 이들 6명의 PD들의 작업방식에서 한 가지 법칙을 발견했다. “PD의 성격이 곧 그가 만든 프로그램”이라는 정 평론가는 “각자의 개성이 투영된 프로그램에 대중이 열광하는데, 그 PD와 프로그램이 가진 키워드는 결국 이 시대의 키워드”라고 설명했다. 정서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한 시대에 나영석 PD의 ‘꽃보다’ 시리즈와 ‘삼시세끼’가 사랑을 받고, 매회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아이템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무한도전’이 ‘국민예능’으로 장수할 수 있는 데에는 대중의 요구가 담겨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 주류회사 진로의 홍보팀에서 직장생활을 한 이후, 아담소프트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사이버 가수 아담을 기획했다. 당시 아담 탄생의 스토리라인을 만들며 음반제작에 관여하는 것으로 대중문화계에 첫 발을 디뎠던 정 평론가는 이후 소설, 시나리오 작업을 하던 중 칼럼니스트로 대중문화 비평을 시작하게 됐다. 현재는 방송, 신문, 인터넷 등 미디어가 가장 많이 호출하는 대중문화평론가로 활동 중이며, 대학과 기업 강연을 통해 대중문화 속에서 찾은 우리 사회의 이야기를 전한다. “모든 콘텐츠의 답은 대중에게 있다”는 정 평론가는 “대중이 가진 생각과 정서를 파악하고 갈급함과 즐거움을 느끼는 지점을 찾아가면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정덕현 평론가는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의 출간에 맞춰 오는 22일과 29일에 각각 나영석, 서수민 PD를 초청한 ‘북콘서트’를 서울 홍대의 T 1/2 바에서 진행한다.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사진=윤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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