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의 전쟁’ 하면 ‘나쁜놈들 전성시대’라는 부제가 뒤에 붙는, 배우 최민식·하정우 주연의 2012년 영화를 대부분 떠올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범죄와의 전쟁’은 그전, 지금으로부터 31년 전에도 있었다. 바로 1990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폭력 범죄를 소탕하겠다며 발표했던 ‘10·13 특별선언’이다.
이 ‘범죄와의 전쟁’은 앞서 언급했던 영화에서는 시대적 배경을 이루는 중요한 사건이 된다. 해당 영화에서는 ‘범죄와의 전쟁’ 당시 소탕작전으로 위기에 빠진 조직폭력배들이 살기 위해 서로 적이 돼 뒤통수까지 치는 모습이 나왔다.
왜 당시 정부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해야 했을까. 강력 범죄가 발호하면서 민생치안이 위협받았기 때문이었다. 1980년대까지 이어졌던 공안정국의 여파로 대학가에서는 정권에 저항하는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당시 수사기관들은 국면전환용으로 ‘간첩 사건’을 잇달아 기획했다는 의혹도 있다. 공안정국 유지를 위해 경찰력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1980년대 3저 호황 속에 유흥업소가 급증, 여성에 대한 납치·인신매매 사건이 연일 매체들을 장식했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배우 박영규가 인신매매범에게 끌려간 아내를 찾기 위해 전국을 헤매는 남편을 연기한 영화 ‘인신매매’가 나왔던 시기도 이때다.
서울 변두리 산기슭, 후미진 골목 같은 으슥한 곳에는 이른바 ‘우범지대’도 있었다. 그곳에서 ‘날라리’, ‘양아치’ 등으로 불리던 청소년들이 대낮에 버젓이 또래에게 돈을 갈취하던 일도 비일비재했다. 당시 기자가 살던 동네에도 우범지대가 있었다. “○○슈퍼 뒤쪽으로는 가지 마라”던 어머니 말씀도 떠오른다.
“저는 우리의 공동체를 파괴하는 범죄와 폭력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동원해서 이를 소탕해나갈 것입니다.” 이 같은 대통령의 일성에 검찰과 경찰이 움직였다. 특히 경찰은 ‘범죄와의 전쟁’ 선포 1년 후 100여 차례의 검문을 통해 강도, 폭력범 등 60여만명을 검거하고 2만600여명을 구속했다는 성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물론 ‘범죄와의 전쟁’ 선포가 순수한 의도라고 보기는 어렵다. 대통령이 특별선언을 발표한 날은 국군보안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소속 윤석양 이병이 정부의 반정부 성향 민간인 사찰과 검거계획을 담은 ‘청명계획’을 폭로한 지 10일째 되는 날이었다. 분위기를 바꾸려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실적 위주의 무리한 수사는 인권 침해 논란도 불러일으켰다. 당시 대한변호사협회는 “범죄예방을 빙자해 선량한 시민이 부당하게 자유를 억압당하거나 범인을 검거한다는 구실하에 폭행, 고문 등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범죄와의 전쟁’ 이후 치안 수준의 향상은 그 시대 사람들이 방증하고 있다. ‘범죄와의 전쟁’ 당시 수사 현장에 있던 한 현직 경찰관은 “조폭을 소탕하느라 쉬는 날도 없이 일했다”면서도 “지금 야간에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거리가 된 게 당시 ‘소탕작전’ 덕”이라고 회상했다.
당시 직접 ‘작전’을 선포하고 주도했던 사람이 노 전 대통령이다. ‘범죄와의 전쟁’이 그의 업적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노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
신상윤 사회부 사회팀장
ken@heraldcorp.com
![앤트로픽 IPO는 시작일 뿐…AI 모델 ‘골라주는 시장’ 커진다 [서학개미 주식회사]](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3/rcv.YNA.20260813.PRU20260813276001009_T1.jpg?type=h&h=240)
![“교과서 미래엔 AI가 있다”…‘AI 공장’된 미래엔 세종공장 [그 회사 어때?]](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2/news-p.v1.20260821.9213ff47283443e4aeec745e2b971c31_T1.jpg?type=h&h=240)
![일본서 사라진 인플레 ‘명목 앵커’…물가·엔화에 중요한 이유 [츠토무 와타나베]](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1/news-p.v1.20260816.209013b3297d4c92ab32710d529f3877_T1.jpg?type=h&h=2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