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의 난·숙청 …피바람 일으킨 임금
격동적인 정치적 생애 따라가며
이념-권력·맹자-한비자·인정-술치
양면성 지닌 야뉴스 정치인 조명
조선의 건국 초기는 태종 이방원까지 창업군주로 분류하고, 뒤를 이은 세종부터 수성기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특히 1,2차 왕자의 난과 숙청 등 피바람을 일으킨 폭력적 이미지 때문에 태종은 공론정치보다는 권력군주로서, 세종의 시대를 준비한 악역 정도로 평가되곤 한다.
박홍규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평전 ‘태종처럼 승부하라’(푸른역사)에서 이런 기존의 연구와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태종은 창업과 수성을 겸했다는 것이다.
박 교수가 일단 근거로 드는 사료는 태종이 즉위한 지 얼마 안된 시점에 권근이 올린 6개 항목의 상소와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있던 세종1년 변계량이 올린 글이다. 권근은 상소에서 “대업이 정해져 수성할 때에는 반드시 지난 왕조에서 절조를 다한 신하에게 상을 주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창업의 시대가 지났으니 수성의 시대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권한 것이다.
또한 변계량은 “태조는 창업만 하시었고 우리 전하(세종)께서는 수성만 하시었으며 우리 상왕 전하(태종)께서는 창업과 수성을 겸하시었습니다”는 글을 올렸다. 신하들이 태종의 역할을 창업과 수성을 겸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박 교수는 기존의 이방원 연구의 두 줄기, 즉 골육상쟁과 숙청이란 태생적 한계로 규정짓는 ‘권력 결정론’과 유교적 군주로서의 업적을 부각시킨 ‘업적포섭론’ 은 태종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본다. 태종의 독자성은 권력의 화신이나 유교적 군주라는 하나의 틀에 갇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저자는 태종의 격동적인 정치적 생애를 따라가며 이념과 권력, 맹자와 한비자, 인정과 술치(術治)의 양면성을 지닌 야누스적 정치인 태종을 조명한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저자가 폭력성에서 ‘정치적’ 폭력을 구분해낸 데 있다.
저자는 태종의 폭력성을 혁명가가 결정적 순간에 폭력을 사용해 정치 상황을 반전 시키는 ‘정치적’ 폭력으로 본다. 그런 점에서 무장으로서 군사적 폭력엔 주저함이 없었으나 정치적 폭력을 사용해야 할 순간엔 나약했던 이성계와 구별한다. 이방원이 보기에 아버지는 충성 프레임에 갇힌 출중한 무장에 불과했으며, 그래서 정몽주를 살해하는 정치적 결단을 단독으로 결행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태종의 이런 정치적 폭력과 왕위찬탈의 정당성을 맹자의 역성혁명론과 마키아벨리의 공공의 이익을 전제로 한 네체시타, 즉 시대정신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태종에겐 쿠데타로 왕위에 오른 어쩔 수 없는 정통성의 한계가 따른다. 언제든 권력에 도전하려는 이들을 주시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저자는 태종의 집권기를 전반기와 후반기로 가른다. 태종의 집권 전반기(1401~1410)는 권력 강화를 위해 갖은 술책을 구사하는 한비자적 술치의 모습을, 집권 후반기(1410~1418)는 유교적 군주로서 수성의 시대를 열어가는 모습이다. 대사면을 취하고, 논란이 있는 제도를 독단적 판단 대신 신료와 공개적 논의를 추진하는 등 조선의 공론정치를 열었다는 평가다.
태종은 이성계가 죽고 신주를 종묘에 모시는 날, 유교군주로서 새 시대를 선언했다.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유신의 교서를 발표한 것이다. 저자는 여기에서 “자신이 초래한 이중구조를 자신의 정치적 역량으로 극복하고 진정한 권위를 창출하고자 하는 ‘승부사’ 태종”을 읽어낸다. ‘유신’이란 표현을 통해 한비자적 시각을 털어내고 진정한 유교적 군주로의 전환을 선언한 것이란 시각이다.
유신의 교화 선언 이후 태종은 전반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정치세계, 공론정치를 펴나간다. 그러나 인과 덕에 바탕한 성군을 지향한 길은 순탄치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밀어줘야 할 신하들이 술치를 내세우며 길목을 막았다. 완원군 이양우 사건, 민무회, 민무휼 사건 등을 놓고 사헌부와 충돌한 태종은 자신의 의지와 함께하며 실행해줄 덕망있는 인재를 찾았다.
저자는 1418년 충녕에게 전위하고, 상왕정치 체제를 구축한 것도 태종의 ‘빅 픽쳐’로 해석한다.
사료를 꼼꼼이 살피고 이방원의 심중을 읽어내듯 입체적으로 조명한 저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도 전한다.
이성계의 위화도회군 당시, 이방원이 경기도 포천으로 달려가 모친과 서모와 어린 동생 등 가족을 이끌고 함흥 쪽으로 도피하려 했다든지 양녕을 탐탁치 않게 여긴 이유가 버려야 할 술치를 어줍잖게 흉내낸 때문이란 지적, 양녕을 세자위에서 내친 후 당초 세종이 아니라 양녕의 아들을 후계로 조정에 공표하고 논의에 부친 사실, 세종 대 치적으로 꼽히는 대마도 정벌이 실은 태상왕인 이방원의 주도로 이뤄진 사실 등이다.
저자는 ‘권력의 화신에서 공론정치가로’ 거듭난 이방원에게서 ‘성공한 정치인’의 상을 끌어내 현재에 시사점을 던진다. 이방원은 한마디로 ‘정치적 현실주의자’라는 평가다.
책은 부족한 사료를 채우는 합당한 역사적 추리와 감각적인 현대 정치적 표현, 쟝르적 재미를 주는 전개로 평전의 딱딱함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태종처럼 승부하라/박홍규 지음/푸른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