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서현, ‘리차드3세’로 연극 복귀
깊이있고 묵직한 에드워드 4세役
배우 윤서현(사진)의 얼굴엔 ‘의외성’이 있다. 짐짓 심각한 표정인데, 뻔뻔한 대사가 튀어나온다. 단기기억상실증으로 진지한 순간까지 능청맞던 이 형사(MBC ‘거침없이 하이킥’), 어디에나 존재하는 평범하고 찌질한 윤 과장( ‘막돼먹은 영애씨’)…. 드라마 속 한 장면이 만화였다면 그의 머리 위로 말풍선이 따라다녔을 법 하다. 난처한 순간을 빠져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잔머리를 굴리는 주인공의 친구. 느슨하고 말랑하게 시청자를 무장해제시킨 윤서현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다. 연극 ‘리차드 3세’(1월 11일 개막, 예술의전당)를 통해서다. 리차드 3세의 친형인 에드워드 4세를 연기할 그는 “늘 꿈꿔왔던 명작 중의 명작을 만났다”고 했다.
“죽기 전에 한 번은 해보고 싶은 작품이었어요. 산으로 치면 지리산처럼 깊고 영험한 매력을 가지고 있어요. 웅장하고 거대한 작품이 주는 기운과 매력을 그대로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마치 학기초로 돌아간 것처럼 잘하고 싶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윤서현에게 무대는 ‘마음의 고향’이다. 드라마를 종횡무진하면서도 무대에 서는 기회는 마다하지 않았다. 서울은 물론 지역의 작은 무대를 오가며 연기폭을 넓혔다. “공연을 하던 중 어느 기회에 방송을 접하며 얼굴을 알리게 됐는데 마음 한켠엔 연극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어요. 연습장에 오면 공기부터 달라 너무 재미있어요.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윤서현은 자신이 연기하는 에드워드 4세에 대해 “‘리차드 3세’에 꼭 필요한 조연”이라고 했다. 에드워드 4세는 황정민이 연기하는 리차드 3세의 계략에 휘말려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다른 동생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그 슬픔으로 사경을 헤매며 절규하다 죽어가는 장면은 배우로서도 꼭 하고 싶은 신 중 하나였어요. 무대에선 원 없이 소리를 질러요.” 그는 “나를 보여주려 노력하지 않고, 에드워드 4세를 통해 리차드 3세를 악인 중의 악인으로 보여줄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했다.
최근 종영한 ‘결혼작사 이혼작곡’(TV조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으로 시청자와 만났지만, 윤서현은 오랜 시간 고정된 이미지에 갇혀 있었다. 배우로는 정통파 코스라고도 할 수 있는 서울예대 연극과를 나와, ‘연기파’들이 거쳤다는 학전에서 활동했다. ‘거침없이 하이킥’, ‘막돼먹은 영애씨’는 “인기도 얻고 돈도 벌 수 있는 기회”였지만, 배우로서 얻은 명성만큼 감수해야 할 대가도 있었다.
“ ‘영애씨’의 윤 과장이나, ‘하이킥’의 이 형사는 배우 인생의 터닝포인트였어요. 이 작품으로 저를 기억해주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만큼 정형화된 이미지도 있고요. 좀 가볍고 나사 하나 빠져 모자란 모습이 대중과 가까운 저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오랜만의 연극 무대를 통해 그는 “조금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깊이 있고 묵직한 모습과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이기에 기존의 이미지와는 다른 색깔이 되리라”는 자신감도 있다. 이미 연습에 돌입한 두 달 전부터 윤서현은 에드워드 4세로 살고 있다. 그는 “연습 현장에 오면 태릉선수촌에 온 듯한 기분”이라고 했다. “국가대표들이 올림픽에 출전하듯 반복연습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으로 “죽도록 연기만 하고 있다”고 했다.
“하고 싶은 이 일을 하는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아 남들에게 권하고 싶진 않아요. 늘 선택 받아야 하는 직업이니까요. 하지만 연기가 제겐 정말 잘 맞아요. 이게 아니면 뭘 할 수 있겠냐는 생각도 들고요.” 눈에 띄지 않아도 자기의 몫을 살아내는 여느 직장인처럼 윤서현은 그의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지치지 않기 위해 “적당히 열심히 했다”지만, 다른 곳을 보지 않고 묵묵히 한 우물만 팠다.
“아직 배우로서 제가 가진 모습의 20~30%밖에 보여주지 않았어요. 틀에 박힌 이미지로 비슷한 역할만 들어왔으니까요. 하고 싶은 역할이 여전히 많아요. 제게도 천만 배우의 꿈과 욕심이 있고요. 공연은 최고의 오디션이라고 생각해요. 이 작품이 제게 또 다른 기회이자 또 한 번의 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아요.”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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