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제주도에선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넘쳐난다. 풍력발전소의 경우 강제로 발전을 중단한 출력 제어 횟수가 지난 2020년 77회에 달할 정도다. 작년에는 전남 신안에서도 태양광 발전소의 발전이 멈췄다.
하지만 궁금해진다. 어차피 바람은 불고 햇볕은 쬐는데, 굳이 발전을 멈추면 손해 아닌가? 제주도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약 16.2%. 육지의 6%보다는 훨씬 높지만, ‘탄소 제로’ 목표를 달성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럼에도 발전소를 멈출 ‘여유’는 왜 생기는 걸까?
이같은 답답함에 해법을 찾는 이들이 있다. 가상발전소(VPP)를 개발하는 소셜벤처 식스티헤르츠의 김종규 대표가 그중 한 명이다. 가상발전소란 기상을 고려한 발전량 예측 알고리즘을 중심으로, 전국에 흩어진 발전소들을 IT기술로 연결해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기술·서비스를 말한다.
“재생에너지 발전소는 일단 건설하고 나면 연료비가 안 들잖아요. 가능하면 계속 돌리는 것이 국가적으로 바람직합니다. 만약 일조량, 풍량을 예측해서 발전소 운영에 반영할 수 있다면? 바람이 너무 많이 분다고 발전소를 멈추는 대신, 그 시간에 맞춰 화석 연료 발전소들이 발전량을 줄이는 대응이 가능해질 겁니다. 혹은 발전량이 넘치는 시간에 전기차 충전을 몰아서 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겠죠.”
탄소배출 제로를 외치는 이 시대에, 가상발전소는 없어선 안 될 솔루션처럼 들린다. 실제 글로벌에선 재생에너지 산업에 진출하려는 전통 석유 기업들이 눈여겨보고 있는 산업이기도 하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과정에 왜 가상발전소가 중요한지 김종규 대표에게 물었다.
-가상발전소의 개념이 아직 생소합니다. 간단히 설명한다면?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늘어나면서 생기는 여러 어려움 중 하나는 당장 내일 발전량이 얼마인지 모른다는 겁니다. 기존 화석 연료를 활용한 발전이나 원자력 발전의 경우 출력이 일정하지만, 재생에너지는 날씨에 따라서 발전량이 달라지니까요. 그래서 전력망을 안전하게 운영하기 위해선 발전량을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런 기술을 개발해 재생에너지 발전소의 가동률을 높여주는 플랫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평소보다 많이 발전한 날에는 에너지를 저장하는 방법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저장하려면 설비 투자가 뒤따라야 하는데, 아직은 비용 대비 효과적인 수단이 아닙니다. 전력망을 안정시키기 위해 가장 빠르고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조치가 출력을 제한하는 것이거든요. 하지만 바람직하지는 않죠.”
결국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연료가 필요 없는 재생에너지 발전소의 가동률은 최대로 유지하는 한편, 발전량이 넘칠 때에는 비(非) 재생에너지 발전소의 발전량을 낮추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전국에 퍼져있는 발전소별로 발전량을 예측해야 하고, 그 발전량을 중앙에서 모니터링할 수 있는 IT플랫폼이 필요하다.
-기상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이 핵심이겠군요.
“네. 그래서 우리나라 기상청뿐만 아니라 미국 해양대기청에서도 기상 데이터를 가져다 쓰고 있고요. 올해부터는 유럽연합 데이터도 반영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3개국에서 생산한 데이터를 알고리즘을 고도화하고 있습니다.”
-기상 예측 기술이 회사 역량의 핵심이라면, 사실 경쟁 기업과의 차별화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기상 정보는 공공데이터니까요.
“재생에너지 시장이 지금보다 커지면, 발전소의 가동률을 높게 유지하려는 과정에서 다양한 IT 서비스가 가능해질 겁니다. 가령 전기차는 도로 위에 있을 때는 운송 수단이지만 주차장에 있을 때는 커다란 배터리잖아요. 넘쳐나는 재생에너지를 저장하는 수단이 될 수 있겠죠.
스마트 가전과도 연계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체적으로 에너지가 모자란 여름날이라고 해볼까요. 우리 서비스와 연결된 에어컨이 100만대라고 한다면, 한꺼번에 5~10분가량만 가동을 멈추더라도 블랙아웃 위기를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죠. 이처럼 전력 수급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여러 서비스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실제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유럽에서는 기상 상황에 따라 발전량이 넘칠 때 전기 요금이 마이너스로 책정되는 황당한 경우도 생긴다고 한다. 만약 수급 조절이 유기적으로 이뤄졌다면, 시민들이 마음대로 전기를 쓰도록 하는 대신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누가 식스티헤르츠의 솔루션을 쓰나요?
“우리나라엔 현재 10만개 이상의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있는데요, 그중 중대형 규모의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운영하는 분들이 주요 고객입니다. 중소기업이라든가 시민들 협동조합 등입니다. 현재 저희는 600㎿ 규모의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대상으로 실증을 했고요. 아직 초기 단계 기업이라 인상적인 매출을 올리고 있지는 못하지만,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수익화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올해 이후를 자신하는 이유는?
“지난해 10월부터 예측 정산금 제도가 시행됐습니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하루 전에 예측하고, 일정 오차율 이내로 이행하면 정부로부터 돈을 받을 수 있는 제도인데요. 발전소 운영자 입장에서 예측까지 정확히 하긴 힘드니, 저희같은 회사를 활용해 사업을 키우려는 수요가 있습니다.”
-다행히 예측 정산금 제도는 뒤늦게나마 시행이 됐네요. 재생에너지 시장을 키우는 과정에 있어, 여전히 더딘 측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전력 거래죠. 지금 우리나라는 전력 판매를 한국전력이 독점하고 있거든요. 반면 해외같은 경우는, 가까이 일본만 해도 민영화가 돼서 일반 기업들이 전기를 사고팔 수 있는 시장이 됐습니다. 통신사들은 통신요금을 전기요금과 결합해서 팔고, 테슬라도 전기를 팝니다. 제가 공부했던 독일 베를린의 경우 전기 요금제가 수십 가지더라고요.
심지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생산된 전기만 쓸 수도 있습니다. 옵션에 태양광, 수력 발전 전기만 쓰겠다고 선택한 뒤 별도의 요금을 내는 방식이죠. 유기농 농산품을 비싼 값에 사 먹는 것과 비슷하달까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유기농 농산품과 화학비료 활용한 농산품을 한 데 섞어 주고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전력시장을 독점 체제로 운영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최근 관련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꼭 한국전력을 통하지 않아도 전력을 구매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개인은 여전히 한국 전력을 통해야 한다. 여러모로 갈 길이 멀다.
이제야 초입길이 희미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한 가상발전소 시장을, 과연 창업 1년차 스타트업이 주도해 나갈 수 있을까. 기회를 포착한 것은 식스티헤르츠뿐만 아닐 것이고, 자본을 앞세운 대기업들이 순식간에 시장을 잠식할 수도 있다. 단순히 성공적인 창업으로 부를 축적하는 것이 목표였다면 금방 지쳤을 것이다.
그의 동력은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데에서 나온다. 물론 주주 눈치를 보는 경영자라면 누구나 사회적 가치를 말한다. 하지만 아예 회사 정관에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을 기업의 목표로 삼는다’는 선언을 심어놓기란 쉽지 않다. 해외 시장에 진출할 설렘을 벌써부터 품은 것 역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길이 보였기 때문이다.
“좋은 파트너와 함께 다양한 해외 프로젝트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5개 국가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굿네이버스 글로벌 임팩트와 업무협약을 맺었는데요. 기후변화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고, 저개발국가도 예외는 아닙니다. 한국의 기술로 이들 국가의 에너지 전환에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