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과 선거의 공통점은 당사자를 승복시키기 위한 절차라는 것이다. 재판도, 선거도 사회갈등을 종결짓는 데에 본질이 있다.

결국 윤석열 후보가 당선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 결과에 승복하는 과정이 순탄할지는 미지수다. 선거 조작 같은 허무맹랑한 얘기를 꺼내는 게 아니다. 누구보다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선거관리위원회가 불복의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번 일에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인사책임 소재도 분명히 있다. 대법관을 지명할 땐 다양성 확보를 고려해야 하지만 선관위원장을 고를 땐 조직운영 능력을 먼저 따져야 한다. 역대 선관위원장은 대법관 중 잔여 임기가 여유있게 남은 선임자가 맡았다. 예외 없이 사법행정 경험이 많거나 지역 선관위원장을 겸임하는 법원장 이력이 있는 대법관이 선관위원장이 됐다. 그런데 김 대법원장은 노정희 대법관을 지명했다. 선임자가 여러 명 있었을 뿐만 아니라 노 대법관은 법원 도서관장을 해본 것 외엔 이렇다 할 행정 경험도, 법원장 이력도 없었다. 이번 사전투표 과정에서 기표된 투표지를 쇼핑백에 담고, 길가에 방치한 장면은 있어서는 안 됐다. 돌발 변수가 생긴 것도 아니고, 코로나 확진자 폭증이 충분히 예상됐던 상황이었다. 결국 조직 기강이 흐트러진 탓이다.

김 대법원장이 노 대법관의 역량을 그다지 높게 보지 않는 건 법조계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실제 노 대법관은 군형법 조문도 고려하지 않고 판결을 잘못하는 일이 있었다. 2심 군사법원이 노 대법관의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았지만 대법원 재판 신뢰도에는 금이 갔다. 그런데도 선임 대법관을 지명하는 관례를 뒤집고 노 대법관을 선관위원으로 지명했다. 김 대법원장이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는 외부에서 알 수 없는 영역이다. ‘서열 파괴’ ‘최초 여성 선관위원장’ 등의 수식어가 붙었지만 정작 역량에는 물음표가 달렸다.

김 대법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지명받은 후보자 시절에 “재판만 한 사람의 진가를 보여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탄핵 대상으로 거론되던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사표수리 과정에서 거짓말을 한 일이 드러나 곤욕을 치렀고,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재판을 하고 있는 부장판사를 무리하게 유임시켜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했다. 정작 현직 대법관이 ‘대장동 몸통’으로 지목되고 공격받을 땐 침묵을 지켰다. 며느리 회사 임원들을 공관에 불러 저녁식사를 하는 일도 있었다. 김 대법원장이 그 회사 재판을 심리한 직후였다.

무리한 인사를 하면 구멍이 생기게 돼 있다. ‘조문도 안 보고 판결했던’ 대법관을 선관위원장에 앉힌 인사는 선거신뢰도가 위협받는 결과로 이어졌다. 노 대법관은 선관위원장직과 관련해 거취표명을 하는 게 순리에 맞다. 인사권자는 심각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김 대법원장뿐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도 포함된다.

임명권자는 자신이 능력이 뛰어나서 높은 자리에 갔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신세를 졌다고 생각할 사람을 고르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실력 없는 사람이 장관을 하고, 대법관을 하고, 검사장을 하는 사이 사회 시스템은 망가진다. 윤 당선인은 ‘사람에 충성하는’ 공직자를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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