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주인은 그 땅을 잘 관리하는 사람의 것이죠.”

7년 전 왕의 비밀정원, 경복궁의 후원인 청와대 터에 대한 역사적 상상력을 풀어낸 소설 ‘금지된 정원’을 쓴 작가에게서 얼마 전 얼굴 좀 보자며 카톡이 왔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날을 잡았다. 무려 4년 만이다. 청와대 터와 관련해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는 상황을 그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청와대의 터가 안 좋다’는 말이 떠돌았다. 사람들이 그냥 하는 소리를 넘어 논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도 꽤 됐다. 그러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공약으로까지 나왔다. 청와대 땅은 시쳇말로 정말 나쁜 땅인가? 언제부터 그런 오명을 쓴 것일까? 풍수지리 호사가들이 말하듯 주산인 북악산에 문제가 있는 걸까?

역사적 사실에 스토리를 입힌 팩션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작가는 청와대와 관련한 책과 사료를 50권 정도 읽었다니 거의 전문가급이다.

작가가 당시 청와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좀 엉뚱했다. 광화문 일대를 걷던 중 몇몇 관광객이 청와대 투어 버스를 기다리는 것을 보고 호기심이 일었다.

책을 쓴다는 이유로 청와대 투어를 신청하고 허락을 받아 마침내 경내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일행과 경내를 둘러보던 중 일본 총독 관저가 자리 잡았던 수궁 터에 세워진 표석을 보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치욕의 역사를 담은 표석을 바라보고 있는데 옆에 일본인 관광객도 그 표석을 열심히 보고 있었다. 한 사람은 아픈 역사를, 한 사람은 옛 영광을 보고 있는 묘한 상황에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수궁 터로 불리는 옛 청와대 터는 잘 알려진 대로 일제강점기 총독 관저가 있던 자리다. 미나미 총독이 한민족의 정기를 단절시키기 위하여 세운 관저로 알려져 있다. 일찍이 터는 명당으로 불렸다. 삼각산의 정기를 이어 북악을 거쳐 경복궁 쪽으로 길게 뻗어 내린 이 산자락에 고려 시대에는 이궁이 있었다. 그런데 왜 그런 나쁜 이미지가 생긴 것일까? 작가는 일제 때 이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총독 관저를 두고 사람들은 언젠가 망할 것이라며 땅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그런데 일제가 망한 이후에도 말은 더 보태지고 커졌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말년이 안 좋게 끝나면서 풍설은 더 굳어졌다. 당시 청와대를 구경하고 작가가 느낀 것은 ‘여기에선 바깥세상을 전혀 알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소설 ‘금지된 정원’은 왜 그 자리에 총독 관저가 들어서게 되었는지에 대해 역사적으로 추리해 나가는데, 작가는 정작 중요한 것은 땅이 아니라 사용자라고 이야기기한다. 말하자면 그 땅을 잘 사용하면 좋은 땅이고, 잘못 사용하면 나쁜 땅이란 것이다.

태화관을 예로 든 게 그럴듯했다. 조선 중종이 순화 공주를 위해 지어준 ‘순화궁’은 1908년 고종 황제 양위 사건으로 이완용의 별장으로, 이어 명월관요정(태화관)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태화관은 3·1 독립운동 때 민족 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역사적인 공간으로, 1938년엔 감리교회선교부가 사들여 태화기독교사회관으로 바뀐다. 땅은 그대로인데 바뀐 주인들의 면면이 그야말로 대조적이다.

작가는 우여곡절 끝에 청와대를 떠나 용산으로 대통령집무실을 옮긴 지금도 마 찬가지라고 본다. 이사를 한 집에 덕담을 해주는 게 인지상정이라는 이야기다. 땅도, 집도, 사람도 말 한 마디가 중요하다. 좋은 말로 격려하고 북돋아줘야 기운이 좋아지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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