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유럽연합(EU)도 우리나라 정부도 원자력 발전이 친환경적이라는데.. 도대체 탈원전 주장은 왜 했던 건가요?”
환경부가 최근 원자력발전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Taxonomy, 이하 K-택소노미)에 포함하는 계획을 공식화했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말 원전을 배제한 K-택소노미 지침서를 발표한 바 있는데, 이때와 비교하면 180도 달라진 행보다. 원전 정책이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기보다는 정치적 계산에 따라 좌지우지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택소노미는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 등 6대 환경목표에 기여하는 경제활동을 분류한 목록이다. 여기에 포함되면 녹색채권을 발행하는 등 투자를 유치하는 데 유리하다.
원전의 택소노미 포함 여부는 최근 2년여 간 ‘뜨거운 감자’였다. 앞서 지난 2020년 6월, EU가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의 범위를 정하는 기준체계로 ‘그린 택소노미’를 발표했는데, 논의 초반에는 원전과 천연가스(LNG)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지난 6일, EU 의회는 논란이 됐던 두 에너지원을 택소노미에 포함하기로 결정했다. 환경부가 원전을 K-택소노미에 포함시킨 것은 이같은 국제 동향을 고려한 결과다.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온실가스 배출만 놓고 보면 원전은 오히려 수력, 태양광보다도 친환경적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자료에 따르면, 발전소 건설부터 폐기까지 전 주기 동안의 탄소배출량은 원전이 ㎾h당 12gCO2-eq(각종 온실가스를 이산화탄소로 환산한 수치)로, 수력(24gCO2-eq/kWh)이나 태양광(27gCO2-eq/kWh)보다 더 적다.
그럼에도 EU가 택소노미를 논의하던 초반 원전을 포함하지 않았던 것은 안전성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방사성 폐기물 처분 과정에 환경 오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2020년 3월 EU 집행위원회의 기술전문가그룹이 발표한 최종 보고서는 원자력 발전이 기후 변화 완화에 기여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환경 목표에 중대한 피해를 미치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보다 전문적인 기술 평가를 권장했다.
이에 EU는 총 세 전문가 그룹에 보고서에 대한 검토를 맡겼다. 그 결과 지난해 3월 EU의 정책 지원 연구 기관인 공동조사센터(JRC)는 “원자력 에너지가 풍력, 태양광 등 다른 에너지원보다 인체 및 환경에 큰 피해를 입힌다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는 결론을 냈다. 하지만 나머지 두 곳의 전문가 그룹은 지난해 7월 “(기존 기술전문가그룹 보고서에서는) 중대재해에 대한 직간접적 영향이 평가되지 않았다” “무해원칙검증에 사용한 비교방법론이 ‘중대한 위해가 없음’을 보장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다소 논란이 소지가 있는 평가를 내렸다.
결국 한 달 전까지만 해도 EU 택소노미가 원전을 포함할지 여부는 미궁 속에 있었다. 지난달 15일, EU 경제통화위·환경보건식품안전위 등 소위(小委)가 “원전과 천연가스는 택소노미 규정에 명시된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 활동의 기준’을 준수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는 의견과 함께 택소노미에서 두 에너지를 배제하자는 결의안을 채택한 것이다. 결국 한 달 뒤 전체 회의에선 이 결의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주요 과정마다 논란거리를 남긴 셈이다.
논란을 감수하고 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시킨 것은, 현실적으로 신재생 에너지만으로는 발전 수요를 모두 감당해내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발전 부문은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27%를 차지한다. 즉 탄소 중립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발전 부문의 탄소 배출을 큰 폭으로 줄여내야 한다. 하지만 화석연료뿐만 아니라 원전까지 퇴출시키면 전력 수급 안정성이 낮은 재생에너지에만 기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원전이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도기성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주목받았다. 더 더러운 연료인 석탄에 대한 의존도를 계획대로 줄여나가려면, 안전성 문제에 눈감았다는 비판을 감수해서라도 원전을 과도기적 에너지로서 활용해야 한다는 명분이다.
실제 EU 집행위도 지난 2월 원전과 천연가스를 택소노미에 포함하자고 제안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 등 영향으로 과도기적(transitional) 역할을 하는 기술로 원자력과 가스를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일 뿐, (그것이) 지속가능한 기술이기 때문은 아니다”라고 단서를 붙였다.
원전을 ‘과도기적 에너지’로만 활용한다는 명분에 따라 EU는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었다. 2045년 이전에 건설허가를 받은 원전에 대해서만 녹색 라벨을 붙여주겠다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각국이 탄소 중립 목표를 단계적으로 달성하며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충분히 끌어올렸을 즈음에는 원전의 과도기적 필요성마저도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여기에 ▷2025년까지는 사고저항성 핵연료를 이용해야 하고 ▷2050년까지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는 조건도 달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EU처럼 원전을 과도기적 에너지로만 활용하겠다거나 까다로운 조건을 걸겠다는 원칙을 확실히 밝히지 않고 있다. 오히려 환경부는 ‘EU 조건을 토대로 실정에 맞게’ 조건을 마련하겠다고만 설명하는 등 EU보다 완화된 조건을 적용할 것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