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베를린)=김지헌 기자]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찾은 독일 베를린의 밤은 그야말로 깜깜했다. 현지 가이드인 한국인은 독일이 전기료를 아끼기 위해 일부 지역의 가로등을 아예 켜지 않기 때문이라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독일을 비롯한 유럽 지역의 소비자들은 높아진 가스·전기료 등에 신음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에너지소비량을 절감할 친환경 신제품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 2일부터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IFA 2022’에서 높은 에너지 사용 감축 기능을 내건 글로벌 가전기업들의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독일의 가스네트워크 등을 관리하는 연방네트워크청장은 러시아로부터 가스 공급이 줄어들면서 독일의 내년 가스비 청구액이 최소 3배가량 뛸 것이라는 관측을 제기하기도 했다. 현지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입 모아 가스·전기료 인상을 걱정한다. 할레지역에 사는 한 교민은 “올해 초 월 4만원이던 전기료가 10월부터 월 6만원으로 오를 예정으로, 내년에는 아마 훨씬 더 오를 것”이라며 “저는 그나마 가격 인상이 작은 편이고 다른 지역 교민의 부담은 훨씬 큰 상태로 4인 가정은 월 20만원 내외의 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같은 우려는 ‘IFA 2022’ 신가전의 주요 테마로 자리 잡았다. ‘스마트홈 시스템을 통한 에너지 절감’이 그야말로 글로벌 기업들의 화두가 된 것이다. ‘IFA 2022’에서 만난 독일 ‘리페르’의 로만 샤퍼 매니저는 “친환경제품은 독일을 포함한 유럽인에게 중요 트렌드 중 하나”라며 “탄소저감을 위한다는 친환경 목표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기와 가스 사용료가 너무 올라 어쩔 수 없이 친환경 가전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4일 기자가 찾은 독일 보쉬 전시장은 스마트홈 전시공간을 따로 구비하고 가전기기 간 연결성을 강조했다. 보쉬의 베트리스 샤이다 매니저는 보쉬 스마트폰 앱을 직접 켜서 라디에이터 온도조절기를 제어하는 모습을 기자에게 직접 시연했다. 그는 “독일도 가스 사용료가 너무 올라서 온도를 낮추는 일상생활은 이제 익숙해지고 있다”며 “앱을 통해 기기를 제어하는 스마트홈 시스템을 통해 방안 열기를 조정해 기존보다 36%가량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고 소개했다.
보쉬는 세탁기와 건조기의 에너지절감 효과도 참관객들에게 알렸다. 보쉬는 내년 3월에 출시할 자사 세탁기가 유럽 기준 에너지 최고 등급(A단계)의 전력 사용량보다 20%나 더 절감한 신제품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현장에서 만난 보쉬 매니저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에너지절감 세탁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최고 등급의 전력사용량보다 10% 더 절감한 세탁기·냉장고 등의 제품을 이번 IFA에서 전시한 가운데 보쉬는 이보다 10%포인트 높은 효과인 ‘20% 절감’을 제품 홍보 수단으로 내건 것이다.
독일 가전사인 그룬딕 역시 자사 ‘홈위즈’ 앱으로 제어 가능한 친환경 세탁기를 내놓아 참관객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룬딕 담당자는 “홈위즈 앱이 가전기기 내 와이파이와 연결이 된다”며 “앱으로 세탁기를 조절하고 에너지도 절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룬딕은 세계 최초로 세탁기 안에 필터링 기능을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이 필터를 통해 세탁 후 나온 물에 녹아 있는 미세플라스틱을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세탁기의 성능 역시 개선돼 기존보다 세탁시간을 절반 수준으로 줄일 수 있고, 이에 따라 물 사용량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독일 밀레 역시 스마트홈 기능을 통해 자사 제품의 에너지소비량을 한눈에 모니터링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밀레의 앱인 ‘밀레앳홈’ 앱 안에 ‘소비량 대시보드’ 기능을 추가한 것이다. 소비량 대시보드 기능은 데이터 심층 분석을 바탕으로 특정 프로그램에서 실제로 소모된 물·전력정보를 제공하고 주·월·연 단위로 프로그램을 사용한 횟수와 총 제품 가동 횟수 등을 보여준다. 알렉산더 로플러 밀레 매니저는 “올해 말 안에 소비량 대시보드 서비스를 글로벌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상용화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기업들 역시 높은 수준의 에너지절감 신기술을 선보이며 참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삼성전자는 유럽 에너지 규격 기준 최고 등급보다 전력사용량이 10% 적은 고효율 냉장고와 세탁기, 에어컨(EHS)을 유럽 시장에 이달 도입한다.
이 신제품들은 스마트싱스 에너지의 ‘AI 절약 모드’로 작동시키면 세탁기와 건조기는 각각 최대 70%와 20%(실사용 기준) 수준의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다. 냉장고는 올해 말까지 AI 절약 모드 활용과 온도조절을 통해 최대 30%로 절감률을 확대할 예정이다. 가정용 에어컨 역시 AI 절약 모드를 활용해 최대 20% 에너지를 절감 가능하도록 연내 업데이트할 계획이다. 해양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미세플라스틱 배출량을 최대 54%까지 절감해주는 파타고니아 협업 세탁기 도입한다.
LG전자는 유럽 시장에서 프리미엄 빌트인 주방가전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를 비롯해 이 지역에 최적화된 에너지효율을 갖춘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주력 제품인 ‘2도어 상냉장 하냉동 냉장고’는 핵심 부품 ‘인버터 리니어 컴프레서’를 탑재한 것이 특징이다. 인터버 리니어 컴프레서는 동력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에너지 손실이 적어 일반 컴프레서보다 에너지효율이 뛰어나다. 기존 LG전자 에너지효율 A등급 냉장고와 비교해 소비전력량이 10% 적다. 폐전자기기에서 추출해 만든 재생플라스틱을 사용한 신개념 테이블형 공기청정기 ‘퓨리케어 에어로퍼니처’도 LG전자의 친환경 제품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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