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희=마음이 가난한 사람에겐 위로를, 현실이 팍팍한 사람에겐 대리만족을…사실, 그냥 재밌다 ★★★★★
정진영=고작 밥 차려 먹는 것일 뿐인데...건강한 웃음 유발이 참 좋다 ★★★★★
[헤럴드경제=고승희ㆍ정진영 기자]도시생활이 인생의 전부였던 두 남자가 강원도 정선 산골로 향했다. 심지어 유학파다. 옥순봉이 내려다보는 소박한 집 앞엔 작지도 크지도 않은 수수밭이 펼쳐져있고, 산줄기를 굽어타고 내려온 차디 찬 개울물은 냉장고를 대신한다. 매사에 투덜거리기 일쑤지만 ‘노예근성’이 숨어있는 배우 이서진과 허리를 꼿꼿이 펼 날이 없는 아이돌 출신 일꾼 옥택연이 이 곳에 산다. 두 사람을 조종하는 관찰자는 나영석 PD다.
지난 10월 17일 4.7%(닐슨코리아 집계, 유료플랫폼 기준)로 첫 방송을 시작한 ‘삼시세끼’는 방송 5회차(11월14일)에 7%를 돌파해, 지난 28일 방송된 7회분은 8%를 기록했다. 순간 최고 시청률은 9.7%였다.
‘삼시세끼’ 인기 돌풍에선 바쁘게 돌아가는 생활에 지친 시청자들의 요구가 읽힌다. 예능PD들 사이에선 “왁자지껄한 버라이어티나 신변잡기식 토크쇼에 싫증난 시청자들이 라이프 스타일과 방송 흐름의 변화를 담은 프로그램을 찾아가고 있다”, “슬로라이프가 변화한 삶의 형태로 각광받으며 이를 지향점으로 삼는 프로그램이 주목받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기존 예능이 사건이나 미션이 있어야 프로그램이 존재했다면, 나영석 PD는 어떤 그림이나 사건이 없는 곳에서도 발견의 예능을 해온 모험가”라며 “‘삼시세끼’는 나영석 PD가 끊임없이 해왔던 공력의 최대치가 나온 프로그램”이라고 평했다. 여기에서 프로그램의 인기 이유가 나온다.
▶ ‘사람’부터 ‘동물’까지…캐릭터도 가지가지=얼핏 지루할 수도 있는 반복되는 그림 안에서 ‘삼시세끼’가 생동감을 가지게 되는 건 프로그램 안에서 견고하게 구축된 캐릭터 덕분이다.
일찌감치 ‘투덜이’ 이미지를 굳힌 이서진을 주축으로 ‘삼시세끼’에는 이른바 ‘옥순봉 계급도’가 만들어졌다. ‘꽃보다 할배’(tvN)를 통해 인연을 맺은 신구 백일섭이 지난 2회 방송에 출연하자 ‘톰과 제리’처럼 서로에게 달려들던 나 PD와 이서진은 두 어르신에게 허리를 숙였다. 제작진은 이 때 계급도를 만들어 출연자들에게 저마다의 캐릭터를 부여했다.
최상위 계급은 이서진이 극진히 모셨던 두 할배 신구 백일섭이었고, 그 아래로 방송 출연은 많지도 않으면서 시도 때도 없이 이서진과 아웅다웅하는 것처럼 비치는 나영석 PD가 자리했다. 스스로 부여한 캐릭터는 ‘악덕업주’였다. 그 아래로 이서진, 강아지 밍키, 옥택연이 줄을 서있다.
옥택연은 당시 방송분을 통해 대선배의 방문에 허리를 세울 새도 없이 장작불을 지폈고, 고기를 구웠으며, 동분서주 뛰어다니기 바빴다. 그 때부터 옥순봉의 ‘노예’가 됐다.
사람에게만 캐릭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장난처럼 이름을 붙였다”는 동물 식구들도 각각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캐릭터를 만들었다. 순둥이 염소 잭슨은 밥을 주고 집을 만들어주는 이서진만 갈망하는 ‘서지니 바라기’였고, 방부터 마당까지 ‘밍키’적거리며 돌아다니는 강아지 밍키는 혼자서도 잘 노는 옥순봉의 마스코트였다.
동물에게 단지 이름만 붙인 것이 아니라 잭슨이 이서진의 꽁무늬를 좇거나 등에 기대는 모습, 밍키와 멀랜다(고양이)가 마당에서 어울리는 모습을 집요하게 따라가며 제작진은 동물들이 주인공이 된 이야기도 만들어낸다.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동물들의 속마음은 제작진의 자막을 통해 술술 전해진다. 동물별 전용 말투를 담은 자막엔 각자의 글씨체도 생겼다.
나 PD는 “‘삼시세끼’의 시작은 남자 둘이 했지만 이들의 세계가 조금씩 넓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단지 달걀을 주거나 우유를 주는 동물이 아니라 이름을 부르며 인격을 부여할 때 식구가 된다. 식구가 되는 순간 따뜻함이 느껴지는데 이 같은 정서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 ‘편집의 기술’ 극대화된 관찰예능=단 한 장면도 허투로 버리지 않는 ‘편집의 기술’이 극대화된 ‘삼시세끼’는 이를 통해 관찰예능의 묘미를 한껏 살린다.
“여행처럼 공간이 바뀌지 않아 촬영분량이 대단히 많지 않은 점”이 그나마 위안일 정도로 나 PD와 제작진은 후반작업에 공을 많이 들인다. “신 전환이 거의 없는 정적인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기획단계부터 디테일하고 깊은 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편집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이유다.
나 PD에 따르면 ‘삼시세끼’의 제작진은 촬영 현장에선 굵직한 스토리를 파악하는 데에 주력하고, 편집을 할 땐 세부적인 모습을 보며 이야기를 찾아가는 과정을 반복한다. 잭슨의 러브스토리나 밍키가 편안한 잠 자리를 찾는 모습, 작물들이 쑥쑥 자라나는 모습들은 모두 제작진의 공력으로 태어난 장면들이다.
잘 편집된 70분 분량의 ‘삼시세끼’ 한 회분을 보면 때문에 관찰예능 프로그램의 진화가 엿보인다. ‘리얼’을 표방하면서도 제작진의 개입이 노골적으로 비추거나, 출연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좇기에 바빴던 프로그램과는 달리 ‘삼시세끼’는 오로지 편집 만으로 한 회에도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출연자들의 감정이나 행동 변화를 미세하게 잡아냄으로써 프로그램 안에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물 사이의 관계를 형성하도록 하는 것 역시 치밀한 관찰을 통해 찾아낸 새로운 스토리였다. 이들간의 이야기가 만들어지자 강아지 밍키는 ‘대세 반려견’이 됐고, 새침한 염소 잭슨은 특별출연에서 고정자리를 꿰차며 ‘신 스틸러’가 됐다.
▶ 작위성 사라지니 공감도 두 배=방송가에선 ‘힐링’ 코드는 이미 지나간 트렌드라고 하지만 ‘삼시세끼’가 각박한 세상을 사는 도시인들의 여전한 갈증을 예민하게 알아차리자 시청자들은 다시금 위로받고 대리만족을 안게 됐다. 기존 예능 프로그램과는 달리 유난히 몰입도가 높은 두 출연자를 통해 시청자가 받게 되는 감정들이다.
나 PD는 자신의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에게 “웃길 필요도 농담할 필요도 없으니 이 상황에 몰입만 해달라고 요구한다”고 한다. 놀랍게도 이서진은 매사에 툴툴거리다가도 정선 읍내를 오가며 이웃과 교류할 정도로 시골 생활을 즐기게 됐다. “싫다”, “좋다”는 의사표현이나 카메라 앞에서도 대놓고 “미쳤냐”며 화를 내는 이서진의 행동이나 뭘 해도 열심인 옥택연의 모습은 인위성이 사라져 시청자에겐 거부감 없이 다가온다. 당연히 두 남자의 모습을 통해 공감대도 높아진다.
요리에 서툰 두 사람이 스스로의 노력과 땀을 담아낸 밥상을 차릴 때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복잡한 일상을 벗은 두 사람이 정선의 하늘 아래에서 하루를 보내는 모습을 통해 도시생활에 지친 시청자들이 대리만족을 느끼며 힐링의 시간을 갖게 된다. “판타지가 섞였기에 100% 리얼의 공간은 아닐 지라도 출연자들이 억지로 쇼를 하지 않기에 인위적인 구성 없이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추출해낼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누구라도 경험했을지 모르지만 잊고 있었던 보편적 감정들을 꺼내올 수 있었다”고 나 PD는 설명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삼시세끼’는 밥 먹는 것 이외에는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는 예능 프로그램 안에서 끊임없이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다. 발견에 스토리텔링이 더해진 데서 재미와 로망이 나온다”며 “그러면서도 로망이 커지는 만큼 의미도 나온다. 결국 우리의 삶은 먹고 사는 일인데, 고립된 지역에서 밥 한 끼 먹는 것에서 고마움을 느끼게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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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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