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터 맨체스터’는 영국 맨체스터시를 중심으로 하는 통합 행정구역을 의미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구구단인 ‘맨시티’와 ‘맨유’가 이곳을 연고지로 한다. 박지성 선수 덕분에 많이 알려져 맨체스터란 지명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맨체스터는 19세기 산업혁명의 발상지로, 당시 대영제국의 공업생산을 담당하며 급격하게 성장한 도시다. 이를 계기로 인구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20세기 초반에 그레이터 맨체스터 일대는 세계에서 9번째로 인구가 밀집한 지역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성장에는 맨체스터대학이라는 우수한 혁신자원의 역할을 간과할 수 없다. 2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영국 최고 수준의 대학 중 하나다. 수학·철학 기반의 논리 실증주의를 대표하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과 컴퓨터과학의 선구자로 스티브 잡스에게 영감을 준 앨런 튜링이 주요 동문이다.

대학만이 지역에 혁신문화를 확산시키는 자원인 것은 아니다. 1781년 설립된 맨체스터문학철학협회는 영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지역학습 커뮤니티다. 그레이터 맨체스터에 거주민의 인문학적 소양과 과학적 교양을 향상시키기 위해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학기 중 매주 수준 높은 강의나 이벤트를 제공한다고 한다.

협회의 최장수 회장이었던 존 돌턴은 맨체스터 대학교에 입학해 자신의 색맹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한 후 맨체스터문학철학협회 회원이 됐다. 대학 중퇴 후에도 화학 연구를 지속해 원자설과 분자설을 정립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하며 “맨체스터가 오늘 생각하는 것을 세계는 내일 생각한다”는 자부심을 지역사회에 부여했다. 맨체스터문학철학협회는 기업가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조직이다. 청소년 시절 존 돌턴에게 잠시 사사한 제임스 줄은 양조업을 운영하며 열역학 제1법칙을 발견한 물리학자로 거듭나게 된다. 이 협회 회원이었던 조지프 휘트워스는 정밀 공작기계 제조업을 하던 사업가로, 세계 최초의 규격 나사를 고안하고 한국의 KS에 해당하는 영국의 부품 표준(British Standard)을 정립하는 등 현대 정밀 공작기술 발전에 기여한 인물이다. 사회개혁 사상가 로버트 오언도 이 협회 회원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자생적 학습 커뮤니티가 지역을 넘어 국가 전체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마음 맞는 사람이 모여 문학과 철학에 대해 논하는 지적 모임이었던 프랑스의 살롱문화는 문화적·예술적·철학적 지식을 공유하기 위한 지역주민의 관계자본이었을 뿐만 아니라 계몽주의를 확산해 프랑스 대혁명의 근간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지방이 위기라고 아우성이다. 필자가 사는 경상남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산업도시인 창원시는 마산과 진해를 통합해 덩치를 키우고 특례시의 지위를 부여받았지만 지방 소멸이라는 거센 파고를 헤쳐 나가기 버거워 보인다. 중앙정부의 예산을 수혈받아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으려 노력 중이지만 거창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만이 지역혁신의 씨앗이 될 수는 없다. 지역 소재 혁신 자원을 중심으로 창조적 학습공동체가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한성태 한국전기연구원 전기물리연구센터장(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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