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안녕하셨는지?’ 근래 이런 씁쓸한 문자를 주고 받았다.
안전불감증과 사고공화국. 명확히 그 원인값과 결과값이 일치하는 두 단어는 한국사회의 후진성을 적나라하게 대변한다. 땅위 땅속 물위 하늘 그 어디에도 안전한 곳이 없다. 지진, 태풍 같은 천재지변보다 안전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더 많다는 사실에선 깊은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산업현장은 또 어떤가. 추락·낌·넘어짐·붕괴 같은 고질적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CEO에게 직접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도입됐지만 이 다발성 재해들은 예년과 차이 없이 발생한다.
대체 원인이 뭘까? 낮은 안전의식과 부주의한 행동, 안전시설 미비, 안전교육 부실 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다. 국민이 일상에서 본능적으로 안전수준을 감지하고 평가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할 순 없을까? 안전을 국민의 1차 생존항목으로 삼아야 할 정도다.
생활속 재해 못지 않게 산업안전도 지상의 과제다. 이는 노사의 책임이 따로 없다. 함께 만들어내지 않으면 같은 유형의 안전사고는 또 발생한다. 애도와 수습, 보상의 기간이 끝나면 그 뿐, 우리는 사고에서 처절히 학습하고 깨우치고 재발을 막을 노력을 하지 않는다.
이태원 참사 역시 사고원인과 책임소재를 놓고 정치적 시비가 난무한다. 본질에서 벗어날 조짐이다. 우리 스스로 가죽을 벗기듯 고통스럽게 현실과 마주해야 하며, 깨달아야 하며, 바뀌어야 한다. 그 다음 안전에 대한 가치를 재정립하고 행동해야 한다. 행동할 때에만 바뀔 수 있다.
책임소재를 가려 처벌은 하되, 처벌로서 상황을 정리해선 결코 안 된다. 처벌은 언제나 통과제의 또는 상징제의로서 일단락하고자 하는 공동체의 집단최면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집단의 위안을 얻기 위한 정리굿판과 같다고나 할까.
법과 제도정비로 마무리해서도 안 된다. 여기서 그치면 사고는 또 반복될 뿐이다. 우리 사회는 영원히 안전을 확보하지 못한 채 사고의 순환에 갇히게 된다. 원인을 분석하고 기록하고 대책을 만들고, 그런 다음 몸으로 행동하게 해야 한다. 안전은 생명권 보장의 첫째 요건이다. 안전하지 않은 사회는 다른 어떤 헌법적 권리도 보장하지 못하는 것이 된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안전을 최고의 가치로 대접해야 한다. 안전투자는 비용이 아니라 자산이라는 역발상도 해보자. 안전으로도 브랜드를 만들 수 있고 소비자의 높은 신뢰와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우량고객도 확보할 수 있다. 기업들도 안전자산 확보에 배전의 노력을 기울일 때다.
freihei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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