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이유 설명·심리 없는 심불 기각 70%↑
상고기각 판결도 4~5줄 불과한 짧은 설명
‘법원이 하면 그냥 끝’ 쉽게 승복 어려워
대법원 상고심 1년에 4만건 이상 판결
12명 대법관이 1인당 年3665건 처리
부실한 심리·불충분한 판결문 원인으로
심리불속행 제도는 폐지 목소리 높아
‘상고이유에 관한 주장은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에 정한 사유를 포함하지 않거나 이유가 없다고 인정된다. 같은 법 제5조에 의해 상고를 기각하기로 한다.’
올해 9월까지 대법원이 처리한 민사 본안 사건 10건 중 7건이 판결이유 항목에 이처럼 두 줄만 적힌 채 별다른 설명과 심리없이 마무리된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판결 이유가 기재되는 심리불속행 외 상고기각 판결도 4~5줄짜리 짤막한 설명에 그치는 사건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적극적인 상고심 개선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대법원에 따르면 특정인이 과다하게 제기한 중복소송을 제외하고, 올해 1월~9월 처리된 전체 민사 본안 사건은 9073건이다. 이 가운데 판결이유가 따로 알려지지 않고 2심 판결대로 종료된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은 6362건(70.1%)으로 집계됐다. 지난해의 경우에도 대법원이 처리한 민사 본안 사건 1만1878건 중 심리불속행 기각은 8631건으로 72.7%의 비중을 차지했다.
처리건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행정사건과 가사사건에선 심리불속행 기각 비율이 민사사건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행정사건의 경우 올해 9월까지 대법원이 처리한 본안 사건 3065건 중 2308건(75.3%)이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종료됐다. 같은 기간 처리된 대법원의 가사 본안 사건 494건 중에선 420건(85.0%)이 심리불속행 기각이었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상고이유에 관한 주장이 헌법이나 법률, 대법원 판례 위반이나 중대한 법령 위반에 관한 사항 등을 포함하지 않는 경우 더 이상 심리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다. 형사를 제외한 민사·가사·행정 사건에서 적용된다. 소송당사자 입장에서는 ‘심리불속행 사유에 해당하기 때문에 판결이유를 적지 않는다’는 내용만 확인할 수 있을 뿐, 선고날짜를 미리 알 수도 없고 어떤 이유로 기각됐는지 확인할 방법도 없다.
소송 당사자 입장에선 심리불속행 기각이 매우 불친절한 제도인데도 정작 그 기준을 알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심리불속행의 기준이 없다는 게 문제”라며 “중대한 법령 위반에 대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대법원이 심리불속행 기각을 하면 그냥 그대로 끝난다”고 말했다.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4조 1항이 ‘중대한 법령위반에 관한 사항이 있는 경우’ 등 6가지 중 하나를 포함하지 않을 때 심리불속행 기각이 가능하다고 규정하는데, 법원이 이 기준을 명확히 제시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일선 변호사들 사이에선 ‘어차피 상고기각일 거면 차라리 심리불속행이 낫다’는 말까지도 나온다. 심리불속행 기각의 경우 대법원이 기록을 받은 날부터 4개월 이내에만 가능하고, 2012년 1월부터 ‘민사소송 등 인지법’에 따라 소송 당사자가 납부한 인지대의 절반을 돌려준다. 때문에 2심 결론을 뒤집지 못할 거면 결과적으로 심리불속행 기각이 재판 기간과 비용 등 ‘소송경제’ 면에서 일반적인 상고기각보다 낫다는 푸념이다.
이 같은 목소리는 심리불속행 기각이 아닌 상고기각도 판결이유가 충실하지 않다는 점에 기인한다. 지난달 대법원이 상고기각을 선고한 한 민사사건 판결문의 이유에는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춰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 거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법리오해, 심리미진 등의 잘못이 없다.”고만 적혀 있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심리불속행이 없는 형사사건은 더 하다”며 “한 줄짜리 판결도 많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구조는 1년에 4만건이 넘는 사건을 대법원이 처리해야 하는 상고심 제도가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대법원이 처리해야 하는 사건 수 자체가 많다보니 판결문을 자세하게 기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란 것이다. 올해 9월 발간된 ‘2022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대법원이 처리한 총 본안사건 수는 4만3980건이었다. 재판에 참여하지 않는 법원행정처장과 전원합의체 선고 사건에만 참여하는 대법원장을 제외한 12명의 대법관이 1인당 연간 3665건을 처리한 셈이다. 한 명의 대법관이 쉬지 않고 1년간 하루 10건씩 처리해도 사건이 남는다.
김정철 법무법인 우리 대표변호사는 “대법원까지 간다는 건 그 사건이 굉장히 쟁점을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는 뜻”이라며 “어떤 상고 이유에 대해 의견을 적지 않는다는 건 판결의 신뢰성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고, 최종 대법원 판결에 승복이 쉽지 않게 되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관으로부터 공정한 재판 받을 권리는 헌법에 보장된 권리인데 그게 실질적으로 지켜져야 한다”며 “현실적인 이유로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를 훼손하는 건 잘못된 것이고, 심리불속행 제도는 폐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안대용·유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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