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에게 4·5나노미터(㎚·1나노는 10억분의 1m)에선 뒤처졌습니다. 그러나 3나노는 게임체인저가 될 것입니다.”
지난달 중순 삼성 파운드리의 한 고위 관계자는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설명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지난 6월 세계 최초로 게이트올어라운드(GAA)기술을 반영한 3나노 칩 양산 소식을 알리며 ‘기술 프리미엄’을 획득한 삼성전자가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칩 위탁생산) 1위인 TSCM를 넘어서며 칩기술의 판도를 바꿀 것이란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삼성의 자신감에도 우려와 불신이 빗발친다. “삼성에 무슨 기술 프리미엄이냐” “삼성이 TSMC를 넘어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등 인터넷기사 댓글란과 업계 커뮤니티 등에선 삼성을 향해 냉소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있다.
기술력을 입증해도 삼성 앞엔 냉소와 불신이란 또 하나의 벽이 놓인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불신은 삼성에 처음은 아니다. 삼성전자가 1983년 64K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을 때 일본 업계가 삼성을 대하는 시선은 차갑기만 했다. 당시 반도체 강국이던 일본은 “한국이 반도체를 어떻게 만드느냐”며 코웃음 쳤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9년 뒤 삼성전자는 D램시장 글로벌 왕좌 자리에 올랐다. 이듬해부터는 메모리 시장 1위를 거머쥐었다. 64K D램, 이 작은 반도체 하나를 시작으로 조금씩 제품을 확대해나가면서 광대한 메모리반도체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6월 삼성이 처음 3나노 반도체를 만들었다고 했을 당시에도 억측은 난무했다. “삼성의 상반기 3나노 양산계획이 하반기로 미뤄진다” “삼성의 고객사가 전혀 확보되지 않았다” 등의 외신발 소문이 나돌자 국내 업계 반도체 전문가들 역시 이를 그대로 따라 삼성의 기술력을 문제 삼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일각에선 삼성이 절대로 TSMC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확신이라도 하는 듯이 의견을 쏟아냈다.
그렇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듯했던 TSMC가 최근 3나노 양산 일정을 미루고 있다. TSMC는 애초 지난 7월 3나노 양산에 나설 계획이었지만 9월로 한 차례 이를 미룬 후 또다시 올해 4분기로 양산계획을 재조정했다. 그런데 올해 역시 불과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상황이 되면서 일각에선 TSMC의 3나노 양산 가능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일각에선 TSMC의 양산 지연을 논하기 전에 삼성의 3나노 성능과 수율부터 따지라고 한다. 그러나 업계에 따르면 삼성의 수율은 양산 후 정상궤도에 오른 것으로 전해진다. 3나노 칩은 4나노에 비해 50% 가량 성능이 개선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금 삼성 반도체에 필요한 것은 첨단 기술 외에도 시간에 대한 인내심일지도 모른다. 해외 경쟁 기업인 등의 불신과 경계의 목소리 견뎌내고, 아무도 할지 몰랐던 64K D램을 처음 개발했을 때처럼 한걸음 한걸음 묵묵히 걸어나가는 뚝심이 필요한 때다. 또 다른 1992년(D램 1위)을 위해서다.
ra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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