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81세…록밴드 섹스 피스톨즈 의상 담당·펑크 문화에 영향
1990·91년 ‘올해의 영국 디자이너’, 여왕 훈장도 두차례 받아
[헤럴드경제=한지숙 기자] 요란한 머리 모양과 색채, 검정 가죽 등이 특징인 ‘펑크 패션’을 창시한 영국 패션계 대모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29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1세.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비비안 웨스트우드 패션하우스는 이날 트위터에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오늘 런던 남부 클래펌 자택에서 가족들에게 둘러싸인 채 평화롭게 숨졌다”고 알렸다. 이어 “세상은 더 나은 변화를 만들기 위해 비비안 같은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추모했다.
웨스트우드는 1970년대 펑크 패션으로 명성을 떨쳤다. 록밴드 섹스 피스톨즈의 매니저 말콤 멕라렌과 함께 런던에 펑크 패션 의류 매장을 열고 밴드의 무대의상을 담당하며 패션계 저항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패션 디자인을 통해 기후변화, 환경오염, 미국의 기밀을 폭로한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를 지지하는 등 사회참여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는 2014년 자서전에서 “내가 패션을 하는 유일한 이유는 ‘순응’이란 단어를 파괴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기도 했다.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 마가렛 데처 전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도 저항 이미지를 표현하는데 웨스트우드 의상을 활용했다.
1941년 영국 잉글랜드 중부 더비셔주 글로섭에서 방직공인 어머니와 구두 제조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에 전쟁과 전후 배급제를 경험한 세대로서 리사이클링 개념을 작품에 녹였으며, 패션계에 “잘 고르고, 적게 사라”라는 말을 자주 했다.
10대 때 가족이 런던 북부로 이사하면서 보석디자인과 은세공을 배웠으며 이후 안정적인 벌이를 위해 초등학교 교사가 됐다. 이 때 첫 남편인 데릭 웨스트우드를 만나 집에서 만든 드레스를 입고 결혼했으나 아들이 태어난 지 3년 뒤인 1966년 이혼했다.
싱글맘으로서 런던 포토벨로로드에서 장신구 판매를 하던 중 당시 미술학도였던 멕라렌을 만나면서 펑크 영향을 받았고, 이후 디자이너로 전향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패션을 가르치던 안드레아스 크론탈러를 만나 1993년 두번째 결혼을 했다. 이후 크론탈러는 아내와 디자인을 협업하는 등 패션계 동반자였다.
그의 이름을 딴 브랜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1990년대 많은 패션니스타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전세계에서 의류, 액세서리, 향수 등으로 팔리고 있다.
웨스트우드는 영국 패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0년과 1991년 연이어 ‘올해의 영국 디자이너’로 선정됐다. 영국 여왕에게서 1992년 OBE(대영 제국 훈장), 2006년 DBE 작위(2등급의 작위급 훈장) 훈장을 수여 받았다.
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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