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함영훈 선임기자] 제례를 엄격히 하는 대다수의 집안에서는 4대조 즉 고조 할머니·할아버지까지 제사를 지낸다. 이를 ‘4대 봉사’라고 한다. ‘4대 봉사’는 어떤 규정에서 유래한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관련 규정은 없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제례문화의 바람직한 계승을 위해 ‘제례문화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라는 알쓸신잡 같은 학술정보를 1일 공개했다. 설 연휴 전에 제사상과 차례상에 대해 공개한 바 있다. ▶헤럴드경제 1월18일자 보도
신분에 따라 제례 달라.. 그래도 4대봉사 기록 없어
이날 국학진흥원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누가, 누구의 제사를 지내는 지를 법으로 규정했었다.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는 관직의 품계를 중심으로 상하 구분을 했는데, 6품 이상(현재 공무원 5급 이상)은 증조부모까지의 제사를, 7품 이하(현재 공무원 6급 이하)는 조부모까지의 제사를, 관직에 오르지 않은 일반 백성들은 부모의 제사만을 지내도록 법률로 제정해뒀다. 조선시대에도 고조부모까지의 제사를 지내는 ‘4대 봉사원칙’이 제도적으로 명시된 적은 없었던 셈이다.
실제로 1484년 성종 때 편찬된 조선시대의 법전 경국대전에는 “6품 이상의 관료는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3대까지를 제사 지내고, 7품 이하는 2대까지, 벼슬이 없는 서민은 부모 제사만을 지낸다”고 명시돼 있다. 1474년에 편찬된 국조오례의 등에도 신분 별로 조상 제사의 대상에 차등을 두고 있었지만, 4대 봉사를 규정한 기록은 없다.
4대 봉사는 조혼 습속과 연관... 오늘날엔 시대착오적
4대 봉사의 시작은 주자가례를 신봉하는 유학자들로부터 유래작됐다는 의견이 많다. 당시 유학자들은 주자가례에서 신분과 지위에 상관없이 4대 봉사를 해왔다고 주장하면서 4대 봉사를 널리 보급했다.
사실 조선시대에는 15세 전후의 어린 나이에 결혼하는 조혼(早婚) 습속에 의해 고조부모까지 4대가 함께 사는 경우가 흔했다. 늘 얼굴을 봐온 어르신이기에 고조부모의 제사를 모시는 4대 봉사가 당연시 여길 수 있었다는 게 국학진흥원 측 설명이다.
그러나 조혼 습속이 사라진 오늘날에는 고조부모나 증조부모를 대면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고, 심지어 기억도 없는 상황이 많다. 이에 4대 봉사를 이어간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김미영 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은 “유교적 성향이 강한 경북 지역 종가에서도 증조부모까지의 3대봉사, 조부모까지의 2대봉사로 변화하는 사례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며 “그 기준은 생전에 뵌 적이 있는 지, 즉 ‘대면 조상’인 여부인데, 이는 조상에 대한 기억이 많을수록 제사에 임하는 정감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학진흥원은 제사의 대상은 ‘대면 조상’으로 한정시키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권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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