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진원 전통문화산업 작업환경개선사업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전통문화로 가업을 잇는다는 것은 선대를 통해 보존된 기술을 이어받는다는 의미도 크지만, 시간과 함께 낡고 쇠락한 환경도 함께 물려받는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사명감으로도 잇기 힘든 상황에서 열악한 환경은 대를 잇는 결정을 더디게 하는 요소가 될지도 모른다. 돈을 벌어야 전통 계승도 잘 하니 전통산업기업 동료들의 근로환경을 정상화 시키는 것은 기업가의 임무이기도 하다.
이렇게 전통문화산업 분야의 세대 순환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팔을 걷어붙였다. ‘2022 전통문화산업 작업환경개선 지원 기업’(이하 작업환경개선 사업)에 선정되어 새롭게 태어난 전국 전통 장인의 공간 3곳의 변화 모습을 집중 소개한다.
▶진안 손내옹기, 화려한 부활= 호남의 지붕으로 불리는 진안고원은 토기나 도자기를 구워내던 도요지(가마터)의 보고이다. 진안고원에서도 도요지의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은 전북 진안군으로, 옹기의 원료가 되는 태토가 많고 땔감이 풍성하여 옹기생산이 왕성하였다.
현재 전북 진안군 백운면 평장리의 손내옹기도 옛날 화려했던 진안고원 도자 문화의 전통과 그 맥락을 같이하며, 진안고원형 옹기를 생산해오고 있는 대표적인 옹기점이라 할 수 있다.
손내옹기의 이현배 대표는 업력 30년이 넘는 베테랑 옹기장이다. 이 대표는 진안군 향토 문화유산 민속 1호 가마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 57호 진안고원형옹기장을 보유하고 있다. 숭례문 복구용 기와 가마 자문 및 조성에 참여하기도 했다. 또한 아내와 자녀까지 가족 4명 모두가 옹기장이니 옹기 가문이라 할 만하다.
손내옹기는 2010년과 2016년 두 차례의 대형 화재를 겪고 국도확포장공사로 작업장이 도로로 편입되면서 공간이 어둡고 협소해졌다. 별도의 작업 공간이 없어 지자체에서 요청하는 체험 학습도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이어졌다.
작업환경개선 사업을 통해 화재로 인해 손상된 전시 체험실의 바닥과 벽체를 보수하고 20평 체험학습실을 리모델링하여 교육과 전시가 가능한 공간이 탄생했다.
“그을음이 가득했던 공간이 환하게 바뀌었다. 쾌적해진 환경에서 지역민들에게 문화유산으로서 옹기를 체험하고 옹기 문화를 공유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며 소감을 밝혔다.
▶원주의 옻내음, 방방곡곡 퍼진다= 옻칠은 선사시대부터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 일본 등지에서 천연도료로 널리 이용되었다. 옻칠은 목기에 칠하면 갈라지고 터지는 결점을 보완하고 수분의 침투를 막아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고 인체에도 무해하다는 특징이 있다.
옻칠 공예품 제작과정을 세분화하면 칠을 하는 과정과 나전을 붙이고 마무리하는 과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칠장이란 옻칠을 하여 깨끗한 표면을 만들어 내는 작업을 주로 하는 장인을 말한다.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옻내음의 김경민 대표는 가업을 승계해 강원 무형문화재 칠장인 아버지 김상수 칠장에 이어 2세대 원주 옻칠장을 하고 있다. 공학도였던 그는 연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해인 2016년도에 브랜드 옻내음을 론칭했다.
기술 분야에는 젊은 피의 수혈이 이루어졌지만 대물림한 작업장에 닥친 세월의 풍파를 비껴갈 수는 없었다. 옻칠을 경화시키는 공간인 칠장이 노후화되고 목대를 제작하고 연마하는 환기 시설 부족으로 작업의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외부 공간으로 연결되는 작은 문과 창호로는 대형 가구를 옮기는 데 한계가 있었다.
작업환경개선 사업을 통해 건조장 내부의 누수를 해결하고 습도 조절 역할을 하는 벽체의 삼나무를 모두 교체했다. 또한 대형 옻칠 작업물을 쉽게 옮길 수 있는 동선 확보를 위해 출입문에 여닫이가 편한 폴딩 도어를 설치하고, 집진 설비를 확충해 옻칠에 최적화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서울 종로 한국서각사 각자문화 계승 허브= 서울 종로구 부암동 한국서각사는, 1971년에 각자 공예에 입문해 업력만 50년을 넘긴 각자 장인 정진웅 대표가 운영하는 공간이다. 각자는 목판에 글자를 새기는 전통공예로, 우리에게는 인쇄를 목적으로 만든 목판이나 건물에 거는 현판 등이 친숙하다.
정 대표는 1982년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국보 무구 정광 대다라니경 복원에 참여한 이후,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 각각의 복원과 한석봉 천자문 복원 등 다양한 국보 복원 사업에도 참여해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반세기가 넘도록 각자를 하던 그에게도 시련이 있었으니,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아 매출이 급감하면서 2021년까지 운영하던 인사동의 점포를 폐쇄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남은 부암동의 작업장은 노후한 창호로 겨울철 외풍과 여름철 더위를 막기 힘들었고, 목재와 작품이 뒤섞인 채로 빼곡히 공간을 막고 있었다.
작업환경개선 사업을 통해 심각한 단열 문제를 야기하는 노후한 창호를 이중창으로 교체하고, 벽면 도색과 조명 배선 작업이 이루어졌다. 작업용 목재와 완성된 작품을 효율적으로 수납하기 위해 철재 선반을 맞춤 제작, 설치하고, 안전을 위한 방화문 교체와 공방실내 환기를 위한 환풍기 설치도 이루어졌다.
한국서각사의 정진웅 대표는, “전통장인들의 경우 공방 환경 개선을 위한 정보에 대해 부족한 경우가 많다.”며 “이번 지원 사업에 선정되면서 전문가 멘토를 통해 공방 환경 개선 전문 컨설팅을 받을 수 있었고, 작업환경이 몰라보게 개선됐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한편 올해 ‘전통문화산업 작업환경개선 지원 사업’은 ‘전통문화 혁신이용권(바우처) 사업’으로 통합하여 공진원 누리집(kcdf)을 통해 오는 3월 신규 모집 공모가 진행될 예정이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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