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를 사는 사람들, 소개팅에 나가는 젊은이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꼬마들. 그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저버릴 수 없는 ‘기대’다. 그 기대의 정도는 각각 다를 것이다. 기대에 대한 확률이 없는데 성공적인 결과를 원하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1등 당첨을 기대하며 많은 이가 로또를 산다. 행운의 여신이 나를 향해 미소 지을 것이라고 바라면서 말이다. 한 학생이 불안장애를 앓고 있다. ‘1등을 못 하면 어쩌나’ ‘성공 못 하면 어떡하나’ 매사가 걱정이다. 기대가 때로는 반드시 잘해야 한다는 희망고문이 된다.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서 잘하면 되는데 먹을 게 없는 곳에서 남들과 경쟁하며 살아가는 신세가 우울하다. 학생이 알랭 드 보통을 찾아 상담한다.
“질투는 나의 힘일까요. 나랑 친구랑 별반 차이가 없는데 그 아이가 나보다 좋은 성적을 거뒀어요. 결국 나와 그가 같지 않다는 데서 불안감이 밀려들고 울화가 치미는 거예요. 우리 아빠는 친구가 부동산 투자에서 재미를 보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어요.” 보통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빌 게이츠의 말을 인용하며 학생에게 삶의 지혜를 주고자 하지만 설득하기가 쉬워 보이진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세운 빌 게이츠가 하버드대학생들에게 한 연설이 있어요.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다. 그 불공평을 불평하며 인생을 보내지 마라. 불공평한 사실에 적응하라.’ 이 말이 잔인하게 느껴지나요? 그저 부자의 독설로 들리나요?”
학생은 부잣집에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이들이 있어 세상이 기울어진 운동장인 것은 참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비슷하다고 느낀 동료가 운으로 더 잘되는 것은 못 참겠다고 한다.
“친구가 잘되면 좋잖아요. 성공의 요소에서 행운의 요소가 크지만 행운이 그냥 오는 게 아니죠. 호기심을 가지고 인내하며 위험을 감수한 대가라고 볼 수는 없을까요.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서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일이 많을 텐데 그때마다 좌절할 건가요. 그냥 세상이 평평하지 않은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요. 별반 기대하지 않았는데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어요. 불안도 길들이기 나름이에요. 너무 불안해하면 정신적으로 힘들어요. 불안을 인정하면 전진할 수도 있어요. 약간의 스트레스가 약일 수 있다는 거죠.”
보통에 의하면 우리는 같다고 여기는 사람들과 우리의 조건을 비교하며 살아가는 경향이 커서 불안하고 불행하다. 그는 불안을 야망의 하녀로 본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성공의 척도에 부합하는 성취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누군가의 인정을 받고 싶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실망한다. 평등사회에서 능력으로 자신이 처한 사회적 지위를 높이고 싶어 한다. 그렇지 못하면 불안하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는 건 인간의 본성 아닐까요. 보통 선생님.”
“그렇죠. 인정합니다. 기대가 없으면 살아갈 이유가 없죠. 희망이 없는 곳에서 실낱같은 희망으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런 인간 승리 이야기에 환호하잖아요, 문제는 기대가 반드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할 용기가 필요하죠. 자신의 인생에 만족하고 더 행복한 기분으로 살아가는 게 때론 현명하죠. 누구나 뭐든 이룰 수 있는 무한한 힘이 있다는 기대가 심리적 고뇌를 오히려 안길 수 있죠. 지금 같은 무한 경쟁사회에서는요.” 보통의 말처럼 인간은 누구나 성공이란 이상에 부응하지 못할 위험에 처해있다. 철학자들은 불안도 종류에 따라 쓸모가 있다고 본다. 오히려 생존에 적합한 사람은 불안에 떠는 사람일 수도 있다. 너무 느긋하면 삶에 힘이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렇다고 스스로의 존엄을 망각하고 존중받지 못한다고 자책하며 불안하다면 삶의 의미를 잃을 수 있다. 계층 사다리가 낮은 단을 차지하고 있을 때나 앞으로 현재보다 못한 수준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면 대개는 불안해진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늘 빠듯한 벌이인데, 뭔가 한방이 필요한 것 아니겠어요? 내게서 로또의 꿈마저 빼앗아간다면 그건 삶 속에서 기대를 송두리째 앗아가는 것인지도 몰라요.”
정부가 저소득층을 위해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무너진 계층 사다리를 바로 세우려고 노력하는 것은 희망의 산소 호흡기를 꽂는 행위이다. 기대가 있어야 비빌 곳이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알랭 드 보통의 기대 이야기를 생각하는데 위대한 경영학자가 생각난다. 미국의 경영학자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으로 성장한 회사들의 기대를 바라보는 공통된 특징을 분석했다. 보통을 바라보며 콜린스의 기업이야기에서 ‘스톡데일 패러독스’를 생각해 본다.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정면 대응한 회사는 살아남았어요. 반면 조만간 상황이 풀릴 거라는 근거 없는 낙관에 기댄 회사들은 무너졌죠.”
짐 콜린스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가 8년간 포로수용소 생활을 견디고 돌아온 제임스 스톡데일이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밝혀냈다. 그의 명저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에 나오는 이야기다. 스톡데일은 낙관 대신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의 부하로서 포로가 된 이들에게 조만간 석방될 거라는 희망에 매달리지 말고 현실에 적응부터 하라고 말했다.
“단순히 ‘잘되겠지, 잘될 거야’라는 생각을 하는 게 지금 당장의 현실에 위안을 줄 순 있죠. 격려랍시고 ‘잘될 거야’를 남발하는 것도 조심해야죠. 잘 안 될 일에 몰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어요. 현실 파악과 상황 대처가 문제를 제대로 직시하게 만듭니다. 때로는 투자에서도 손절매가 필요하죠.”
학생은 알랭 드 보통의 기대와 불안을 경제학에 대입해 본다. 경제적 의미에서 기대란 미래에 대한 예측과 같다. 사람들은 자신이 입수한 모든 정보를 동원해 미래 예측을 하고 이에 기초해 경제 행위를 한다. 기대가 그대로 반영되는 대표적 사례가 바로 물가다. 미국의 경제학자 어빙 피셔는 명목이자율을 실질이자율과 기대 인플레이션의 합으로 봤다. 2022년 41년 만의 인플레이션에 당황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금리를 올리면서 기대 인플레이션을 줄이는 데 사활을 걸었다. 연준 정책처럼 사람들의 기대 심리를 죽이는 게 경제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기대는 여러 가지 정보와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다. 물론 기대를 바라보는 경제학자들의 의견은 사뭇 다르다.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기대를 하는 경우가 있다. 지난해 물가가 3%만큼 오를 것이라고 믿었는데, 실제로는 2%밖에 안 올랐다고 치자. 그러면 새해 물가를 예측할 때는 지난해의 경험이 반영된다. 지난해에 실제로 올라간 3%뿐 아니라, 당시 예측치 2%와의 차이까지 고려한다. 다음 기대를 예측할 때 과거의 기대치와 경험을 동시에 반영하는 것이다. 이런 기대를 적응적 기대(adaptive expectations)라고 한다. 적응적 기대 가설은 과거 경험과 정보에 의존해 기대를 형성하기에 현재의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과거 인플레이션율의 가중 평균이다. 과거 경험이 실제를 제대로 반영 못 한다면 기대 역시 믿기 어렵게 된다.
과거 경험뿐 아니라 미래 상황의 예측 평가를 토대로 기대를 형성할 때 실수를 덜 할 수도 있다. 과거가 아닌 현재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기대를 형성하는 게 더 현실적이라는 견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현재 가진 모든 정보를 활용해 미래를 예측하는 합리적 기대(rational expectations)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이 가설은 사람들은 미래에 벌어지는 사건의 원인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있기 때문에 진정으로 새로운 정보만이 예상이나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고 가정한다. 적응적 기대건 합리적 기대건 너무 빈약하거나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보통을 찾아온 학생이 말한다.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처럼 안 좋은 기대는 죽여야죠. 경제 심리가 좋지 않을 때는 기를 살리는 정책을 해 기대 심리를 올려야 하고요. 어쩌면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능력에 부치는 과한 기대는 낙담을 가져오죠. 하지만 비관이 팽배한 사람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기대 심리를 높여야 할 것 같아요. 기대의 관점에서 보니 경제와 삶이 많이 닮았어요.”
보통은 고개를 끄덕이며 학생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을 들려준다. 학생은 수첩을 꺼내 들고는 꼼꼼히 그의 말을 토씨 하나 빼지 않고 적는다.
“세상에 영원히 사는 것은 없죠. 영원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우리를 흥분시키는 것들 가운데 중요하다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스티브 잡스도 나도 죽음이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합니다. 타인의 기대, 자부심, 좌절, 실패처럼 세상의 모든 것은 죽음 앞에서 덧없이 사라지고, 오직 진정 중요한 것만 남게 되죠. 타인의 시선이 불안의 원인이 되기도 하잖아요. 부모님의 기대도, 내 스스로의 기대도 불안의 원인이지만.”
밤에 꿈을 꾸지 않고 낮에 자신만의 척도로 꿈을 꾸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꿈꾸는 상상이 현실이 되자 그는 행복해한다. 오래된 꿈이 푸른 초목 넘치는 곳에 활짝 피어오르자 그는 우뚝 선다. 그런 그의 모습이 알랭 드 보통을 닮았다. 학생은 알랭 드 보통을 보고 환히 웃고 있다. 그들은 마주 보고 말한다. “희망 없는 두려움이란 있을 수 없고, 두려움 없는 희망은 있을 수 없다.”
불안과 기대는 그래서 닮아 보인다.
bonsang@heraldcorp.com
![프롬프트의 신법 [‘오늘’에 대한 우리 이야기]](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1/news-p.v1.20260901.203c531a96884d4da174595cad521d59_T1.png?type=h&h=240)
![자산가의 저력은 하락장서 나타난다…위기 속 기회 찾는 ‘힘’ [큰손 따라잡기]](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8/31/news-p.v1.20260831.a0fa168d036d4658b6cb03a0502c0de4_T1.jpg?type=h&h=240)
![“고3 딸 학원비 40만원만” 끝내 외면한 전처…자식 마저 버린 ‘나쁜 부모’와 싸우는 그들 [세상&플러스]](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8/29/news-p.v1.20260829.87d95bef732846b383020b75a70f53a5_T1.png?type=h&h=2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