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다세대 주택 건물. 출입구 옆으로 난 창문은 판자로 덧대져 있었다.
내부는 벽지와 천장 전선이 뜯긴 채 시멘트와 벽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하 주차장 입구에도 성인 허리 높이 만큼 물이 찼던 자국이 남았다.
바로 이 곳은 작년 여름, 밤새 내린 폭우로 침수, 반지하에서 일가족 3명이 세상을 떠났던 현장이다.
작년 여름은 이상기후에 따른 폭우 피해가 속출했다. 시간당 100㎜ 이상 퍼붓는 기록적인 집중 호우로 전국 곳곳의 저지대, 지하 주택 및 주차장 등이 물에 잠겼다. 이 현장도 그 중 하나다. 이같은 피해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정부는 침수 이력이 있거나 피해 우려가 있는 곳에 차수판을 설치하고 배수구를 점검하는 등 대비하고 있다.
올 여름에는 더 극심한 폭우가 예상된다. 이제 이상기후와 기후재난은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바로 작년에 겪었던, 그리고 올해 더 극심하게 겪을 내 문제가 됐다. 그리고 당장 눈 앞에 닥친 기후재난은 바로 폭우다.
올 여름에 더 극심한 폭우가 예고된 까닭은 바로 ‘엘니뇨’다. 지금 동남아의 기록적인 폭염을 가져온 장본인이다.
엘니뇨는 동태평양 남미 연안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은 현상이다. 0.5도 이상 높은 채로 5개월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그 첫 달에 엘니뇨가 시작된다고 본다.
지난 3월에는 6~8월께 돼야 엘니뇨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해수면 온도가 빠른 속도로 오르면서 발생 시기가 한 달 가량 앞당겨졌다.
명복순 APEC기후센터 선임연구원은 “엘니뇨가 빠르게 발생하면서 올 여름은 폭염보다는 폭우로 인한 침수 피해를 주의해야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이대로 바다가 뜨거워진다면 ‘슈퍼 엘니뇨’가 올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1.5도~2도 높은 채로 3개월 이상 지속될 때 슈퍼 엘니뇨라고 한다.
1951년부터 지난해까지 슈퍼 엘니뇨는 1972년, 1982년, 1997년, 2015년으로 딱 네 차례 발생했다. 15년 안팎으로 발생하던 슈퍼 엘니뇨가 이번에는 7년 만에 찾아올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슈퍼 엘니뇨가 나타나면 전지구가 극심한 가뭄, 홍수, 폭염, 태풍 등에 시달리게 된다. 가장 최근 슈퍼 엘니뇨가 발생했던 2015년, 인도 남부에선 5월 최고기온이 48도를 기록하면서 2330여명이 사망했고, 대만과 중국에선 태풍 영향으로 각각 1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결국 한국도 엘니뇨에 따른 기후재난에 직면하고 있다. 엘니뇨가 발생하면 우리나라 여름철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강수량이 많아지고 기온은 내려가는 경향을 띈다.
간단히 말해, 폭우가 쏟아진다. 슈퍼 엘니뇨가 발생했던 2015년 우리나라도 비가 가장 많이 온 해가 됐다. 전국의 강수 일수는 14.9일로 1973년 이래 최대 1위, 강수량은 평년 대비 267%로 1973년 이래 최다 2위를 기록했다.
명 연구원은 “엘니뇨가 발달하게 되면 남서풍이 유입되고 수증기가 많이 공급되면서 비가 많이 오게 된다”며 “올 여름에 물난리를 대비해야 하는 이유”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