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월화극‘ 따뜻한 말 한마디’불륜남편 아내役 김지수
남편 외도알고 가슴치고 눈물 쏟고 공감서 우러나는 절절한 감정 열연 가슴 후비는 대사까지…女心 울려
‘정혜’ ‘태양의여자’서도 역할 비슷 트라우마 깊은 역할 매력 느껴요
“자유로운 엄마, 순종적인 며느리, 다정다감한 아내로 살고 싶었는데 당신이 다 망쳤어.”(SBS 월화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 미경의 대사 중)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아내는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져내린다. 정말 ‘다 망쳤다’. “돌겠어, 미치겠어.” 소리를 지르고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눈물을 쏟아내다 주저앉는다. 감정은 지겨울 정도로 수십번씩 널뛰기를 한다. 백지장처럼 깔끔한 얼굴로 남편에게 “더럽다”고 독설을 던진다. 상간녀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한 공간에서 지켜봤고, 협박편지도 보낸다. 스릴러가 따로 없다.
대본에도 없는 대사가 생겨나고, 없던 행동이 더해진다. “남편의 불륜을 알고 난 뒤 마음 정리가 잘되는 게 비정상이지. 내 마음이 미경이를 생각하면 몇 번씩 가슴을 치고 싶었어요.” 지옥으로 떨어진 아내 곁에서 속없이 잠을 자는 남편(지진희 분)을 베개로 눌러버리는 아내, “순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겠냐”고 한다. 배우 김지수(42)는 지금 남편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아내로 살고 있다.
한창 방영 중인 드라마 촬영 스케줄이 딱 하루 비어 있던 지난 10일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지수의 얼굴은 맑았다. 감정 소모가 많은 캐릭터로 보내는 날들이지만 “고통스럽고 진이 빠지긴 해도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했다.
SBS 월화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는 ‘불륜의 끝’에서 출발해 그로 인해 뒤엉킨 인물들의 관계를 그려내며 여성 시청자들의 깊은 공감을 사고 있다. 김지수에겐 하루에도 몇 번씩 페이스북으로 “언니, 전 결혼도 안 했는데 미경의 마음이 정말 공감이 간다”는 글이 도착한다. 기혼여성이라면 오죽할까.
결혼은 안 했지만 김지수도 다르지 않았다. “여자라면 화병이 나지 않겠냐”며 “사랑에도 아주 쿨한 사람이 있지만 정말 많이 사랑한다면 절대로 쿨할 수 없다”는 게 김지수의 지론이다. “서로의 ‘찌질’한 모습이 나올 수밖에 없어. 바닥을 치고도 우아하고 고상할 수 있는 인간이 어디 있냐”는 것이다.
독한 대사도 당연히 공감에서 나왔다. 남편의 사랑을 끊임없이 확인받고 싶어하는 미경은 잠자리 후 “누가 더 좋았냐”고 묻는다. “미경이가 이런 대사까지 하는 게 불편하고 싫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여자라면 백이면 백, 물어보고 싶지 않겠어요?”
생각만으로도 분통 터지는 남편의 외도를 맞닥뜨린 자신을 미경에게 이입한 김지수는 드라마 내내 오락가락하는 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실제 부부들의 사연을 다룬 ‘사랑과 전쟁’을 통해 탁월한 심리 묘사를 익힌 하명희 작가의 대본과 고립되고 결핍된 여자들의 감정선을 자유자재로 연기했던 김지수가 만난 효과다.
김지수의 전작이 대체로 그랬다. 영화 ‘여자, 정혜’(2005)부터 KBS2 ‘태양의 여자’(2008), JTBC ‘러브 어게인’(2012)까지 김지수는 사랑에 다쳤고, 품어줄 따뜻한 가정이 없는 결핍된 캐릭터를 만나왔다. ‘정혜’였고, ‘도영’이었으며, ‘지현’이었던 삶은 김지수라는 배우 안에 들어와 서럽도록 울고, 유리처럼 부서지다가도 초연하게 자기 앞에 놓인 삶을 찾아 걸어 들어갔다. 김지수가 연기하는 인물들의 삶은 마치 그의 삶인 것처럼 녹아났다. “트라우마가 깊은 역할에 매력을 느낀다”며 “원래 독하고 진한 걸 좋아한다”지만 김지수의 말간 얼굴과 눈빛에 묻어난 숨은 이야기가 자꾸만 새어나오는 듯했다. 정말 많은 사연 속의 주인공 같은 모습이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두 번의 공개 연애와 두 번의 이별도 겪었다.
“사연 많아 보인다고요? 나이도 있는데 왜 없겠어요. 이런 일 저런 일 다 겪었고, 알려진 사람이라 힘들 때도 많았죠. 그런데 또 배우이기 때문에 힘든 시간을 견디면 자양분이 되더라고요. 어떤 경험을 할 때의 감정들이 작품 속의 감정과 일치할 때가 있어요. 인생은 어차피 불행의 연속이다가도 행운의 연속이라고 생각해요. 좌절할 필요도, 자만할 필요도 없는 것 같아요. 지금은 행복하지만 내일도 행복하다는 장담은 못하겠어요.”
한동안 괴롭혔던 슬럼프도 이겨내니 연기도 부쩍 재밌어졌다. “이전엔 고통스럽고 스트레스가 많아 드라마가 너무 하기 싫은 날도 있었고, 시집이나 갈까 생각도 했다”지만 “지금은 어떻게 울어야 할까를 고민하고, 깊어진 감정을 어떻게 꺼낼까 공부하니 연기가 점점 재밌다”고 한다. 여전히 ‘동안 미모’를 자랑하지만 어느덧 40대 초반, ‘행복한 현재’를 사는 김지수는 결혼관도 달라졌다. 물론 드라마 때문은 아니다.
“초조할 때도 있었죠. 이젠 결혼을 하냐, 안 하냐는 제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는 아니에요. 운명처럼 하게 되면 하는 거겠죠. 결혼을 한다고 더 행복한 것도, 덜 외로운 것도 아니잖아요. 하게 된다면요? 룸메이트처럼 살고 싶어요. 서로에게 자유를 주는 친구 같은 부부라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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