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박경수 작가의 ‘바둑’ 사랑이 종영을 향해 가는 SBS ‘펀치’에도 고스란히 녹아났다. 박경수 작가의 ‘펀치’ 속 주인공 박정환 검사가 세계 랭킹 1위의 프로 바둑기사 박정환을 모티프로 했을 뿐 아니라 드라마 속 권력게임이 바둑판 위의 세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펀치’ 속 박정환의 인생은 다사다난하다. 그는 진흙탕을 기어 검사가 된 ‘개천의 용’이다. 정의보다는 욕망이 앞섰고, 법률보다는 자신의 앞길을 터주는 상사의 지시가 중요했던 권력의 충견이다. 권력을 향한 욕망에 가족까지 버렸던 박정환은 그러나 뇌종양으로 시한부 6개월 판정을 받은 뒤 개과천선한다. 죽음을 앞둔 개과천선이지만, 그것이 정의 구현을 위한 변화는 아니다. 남겨질 가족들의 안위가 위태로워지자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따르던 상사를 물고 뜯는 내부고발자가 됐다.

드라마 제작진은 이 박정환이라는 인물에 대해 “당당한 말투, 여유있는 미소, 상대의 의중을 간파하는 통찰력을 지녔다“고 설명했는데, 사실 박경수 작가는 드라마 구상 단계에서 프로 바둑기사 박정환을 모티프로 삼아 눈길을 끈다.

올해로 스물두살이 된 박정환 9단은 2006년 프로에 입단, 2010년 9단으로 승단했고, 같은 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한국바둑 행킹 1인자다. 지난달 14일엔 국수전 58기에서 그 많은 고수들을 제치고 한국바둑의 계보를 잇는 국수가 됐다.

SBS 드라마국 관계자에 따르면 박경수 작가는 박정환 9단이 어떤 상대를 만나든 능수능란하게 대처하고, 싸움을 걸어오는 상태의 의중을 간파하는 통찰력을 지닌 모습을 드라마 캐릭터에 부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티프로 했을 뿐 두 박정환은 성향이 상당히 닮아있지는 않다. ‘펀치’의 박정환이 처절하리만치 끈질기게 더 나쁜 놈들을 향해 끊임없이 물어뜯기를 반복하는 반면 바둑애호가들 사이에서 박정환 9단은 내성적이고 차분하나 상대를 독사처럼 물어뜯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박경수 작가가 실존 바둑기사를 모티프로 삼아 드라마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추적자’에서도 손현주와 김상중이 연기했던 백홍석, 강동윤 역시 프로 바둑기사였다.

다만 박 작가가 이번 작품에서 박정환과 주변인물들을 통해 권력을 향한 끝도 없는 아귀다툼으로 점철된 세계를 그려가는 모습이 바둑판 위의 세상을 닮아있어 흥미롭다.

드라마는 온갖 비리가 뒤덮인 공권력을 다루며 정의를 논하지만, 무거울 수 있는 주제와는 달리 빠른 호흡과 반전을 거듭하는 전개가 인상적이다. 멈추지 않을 것만 같은 권력자들의 복마전은 어느 쪽이 최후의 승자가 될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반전의 연속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난타전 속에 승리를 예감하며 회심의 미소를 띄우면 상대는 어느 순간 일어나 반격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지속적인 펀치를 날리는 끝도 없는 권력게임이 이어진다. 그 세계가 마치 검은돌과 흰돌이 복잡하게 얽히며 각자의 집을 더 많이 지어야 살 수 있는 치열한 바둑의 세계와 닮아있다.

정치 권력을 다룬 ‘추적자’, 자본 권력을 다룬 ‘황금의 제국’에 이어 공권력을 정조준한 ‘펀치’는 박경수 작가의 ‘권력 3부작’의 마지막 편으로 불리며 현재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안방을 찾는 주중 미니시리즈 가운데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꼴찌로 안방에 첫 발을 디딘 이후 최강자로 군림 중인 반전이 드라마 제목을 빼다 박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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