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8> 감추어진 승부 (92) 글 채희문 | 그림 현경희
“성애 씨, 잠시만 내려요. 윙을 떼어내야겠어.”
유호성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머신 밑바닥으로 기어들어갔다. 그의 손에는 언제 꺼내들었는지 멍키스패너가 들려 있었다.
“윙을 떼어내요? 점핑스폿하다가 목이 부러지려고?”
“상관없어. 곧 스페셜 스테이지가가 시작될 텐데… 비상수단을 강구해야지.”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그는 어느새 치타 밑 부분에 날개처럼 달려있는 윙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윙이란, 머신 밑에 장착하여 강력한 다운포스를 발생시키도록 만든 장치이다. 그렇다면 다운포스란? 공기가 머신의 몸체를 내리누르는 힘, 즉 바람의 저항을 일으켜 머신을 길바닥에 달라붙게 하는 힘을 뜻한다.
이를테면 그는 공기가 내리누르는 힘을 없애버려서 더 이상 타이어에 압박을 주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면 코너링 때 차체가 미끄러지게 마련이고, 울퉁불퉁한 지점에서 점프로 튀어오를 때 요동칠 가능성이 한결 높아질 것이 분명했다.
또한 ‘스페셜 스테이지’란 랠리에서 기록을 재는 경쟁구간을 일컫는 말이므로… 그는 기록경쟁 구간을 달리는 동안, 타이어에 펑크가 난 상태에서 최고속도를 내기 위해 안전마저도 포기하겠다는 의지였다.
“이 지경이 된 바에야… 차라리 달리다가 죽어버리자.”
“미련한 짓 하지 말아요. 이번 스페셜 스테이지는 포기해요. 다음 포스트에서 타이어를 교체한 뒤에 쫓아가도 늦지 않아요.”
“기록이 꼴찌로 매겨지는 꼴을 어떻게 눈 뜨고 봐? 난 쪽팔려서 그런 짓 못해.”
“꼴찌는 모리타니아 군인 애들이 맡아놨잖아요? 그 애들은 라싸에서 관광하느라고 정신없단 말예요.”
“안 돼, 최소한 권도일 선수가 모는 로열골드만큼은 따라잡아야 된다고.”
“꿈 깨요, 제발. 펑크 난 차로 어떻게 로열골드를 따라잡아? 차라리 강유리 선수가 벌이는 사막 골프쇼나 보면서 휴식을 취하자고요.”
현성애는 결국 마음속에 품고 있던 말을 꺼내고야 말았다. 1974년 산 치타를 사막 한 가운데에 세우고, 유호성이 골프에 관심을 보이도록 이끌어주면 거금 2천 만 원을 주겠다던 HY 훌 푸드 신희영 회장의 말이 다시 한 번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았다.
“골프 쇼? 사막에서 골프 쇼를 벌이다니… 강유리 선수도 얼이 빠졌지.”
“그런 말씀 마세요. 강유리 선수 주위에 구름처럼 몰려있던 클래식 카들 못 봤어요? 굴지의 외국 재벌들이 강유리 선수에게 환호하고 있었잖아요. 결국 골프가 돈이 된다는 말이에요. 이까짓 랠리… 목숨 걸고 달려봐야 돈이 되나?”
“그래서 어쩌자고요?”
“이왕 머신도 박살났으니 차제에 강유리 선수나 따라다녀 보자는 거지요. 그게 바로 HY 훌 푸드 신희영 회장님의 뜻이기도 하잖아요?”
“우리 엄마 말이야? 맞아, 듣고 보니 아까… 아칠 절에 라싸의 썬라이즈 호텔 옆방에 투숙했던 사람이 우리 엄마가 확실한 거 같아. 보나마나 내 뒤를 따라 온 것일 게야. 이런 염병… 그렇다면 더군다나 랠리를 포기할 수 없지.”
공연히 심기를 건드린 것일까? 유호성은 현성애의 말을 듣고 나서부터 더욱 분기탱천 한 모습이었다. 그는 떼어낸 윙을 사막 한 가운데로 집어던지고는 곧바로 운전석에 올라 1974년 산 치타의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그러나 구멍 난 연료탱크에서 스프링을 타고 졸졸 흐른 기름이 드디어 바닥났는지… 치타의 셀 모터에서는 헛김 빠지는 소리만 날 뿐이고, 차체는 덜덜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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