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
영화 ‘열한시’ 비극 막기 위해 미래로 ‘어바웃 타임’ 여심 잡기 위해 과거로
시간을 거스르자 더 혼돈속으로… 인생은 끊임없는 교환·선택의 연속 삶은 지금 이순간에만 존재하는 것을
당신에게 타임머신의 티켓이 주어진다면, 과거로 갈 것인가, 미래로 갈 것인가. 과거에 후회막심한 자, 지난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모든 것을 되돌리고 싶을 것이다. 미래로 가고 싶은 이유는 먼 훗날의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거나, 혹은 모종의 꿍꿍이가 있어서일 것이다. 우리가 하는 흔한 상상이란, 다음주의 로또 당첨 번호를 미리 알아내는 것 따위다. 그러나 ‘시간여행’을 다룬 수많은 영화를 보면, 대체로 로또 당첨 번호를 미리 보거나, 프로야구경기 승패를 알아 스포츠복권 대박을 내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영화가 ‘나비효과’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래로 다녀와 로또 당첨 번호를 알아낸 사람이 다시 현재로 복귀해 복권을 산다고 한다면, 그 회차의 추첨에 새로운 변수가 생기고 확률이 변하며 결국은 결과까지 달라지리라는 것이다.
이렇듯, 시간여행을 다룬 영화에서 재미가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짓는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가 ‘제한조건의 설계’다. 논리적으로 설정되지 않는다면, 관객들은 납득하기 어려운 작품이 될 것이다.
공교롭게 시간여행을 다룬 한국영화와 외화가 차례로 개봉한다. 28일 개봉한 한국영화 ‘열한시’(감독 김현석)와, 12월 5일 개봉하는 영국영화 ‘어바웃 타임’(리처드 커티스)이다.
‘열한시’는 미래로, ‘어바웃 타임’은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다뤘다. ‘열한시’는 극중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말을 인용하며 시간여행은 오로지 미래로만 가능하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기술적인 이유를 들어 ‘24시간’까지만 건너 뛸 수 있다고 설정한다. 러시아 에너지 기업의 연구원 우석(정재영 분)은 하반신 장애가 있는 회장에게 “시간여행이 가능하다, 당신에게 미래의 의학기술을 가져다 건강한 다리를 주겠다”며 프로젝트를 맡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3년간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 우석은 회사로부터 연구 중단을 통보받는다. 프로젝트 성공을 목전에 뒀다고 판단한 우석은 현재 기술 수준으로 가능한 24시간 시간여행을 입증해 보이겠다며 회사와 재계약을 조건으로 실험에 들어간다. 때는 12월 24일. 우석은 아끼는 후배 영은(김옥빈)과 함께 타임머신 ‘트로츠키’호에 탑승해 24시간 후인 12월 25일 오전 11시로 이동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하루 뒤의 미래에서 그들이 목격한 것은 연구소의 폭발과 화재, 그리고 처참한 시신들이었다. 충격 속에 현재로 돌아온 그들은 미래에서 가져온 CCTV영상으로 사건을 막으려 한다.
미래는 결정된 것인가, 바꿀 수 있는 것인가.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다. 우석과 영은은 조각난 CCTV의 영상을 실마리로 비극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예고된 미래’는 현실이 된다.
‘러브 액츄얼리’ ‘노팅 힐’ 등을 만든 감독의 영화이자 영국 로맨틱 코미디의 명제작사 워킹타이틀의 작품인 ‘어바웃 타임’은 역시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로맨스영화이자 따뜻한 가족드라마다. 연애에는 ‘젬병’인 팀(돔놀 글리슨)은 성인이 된 날, 아버지(빌 나이)로부터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집안 남자들의 놀라운 능력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된다. 바로 어디서나 어두컴컴한 공간에 홀로 들어가 정신을 집중하면 원하는 과거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밝힌 이 시간여행의 제한 조건 또한 있다. 자신의 인생 어느 순간, 기억할 수 있는 시공간만 선택가능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과거로 돌아간다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로 돌아가 히틀러를 죽이거나, 트로이전쟁 시대로 가서 여신 헬레네와 사랑하는 일 따위는 불가능하다.
변호사로 새 출발을 위해 부모집을 떠나 런던으로 간 팀은 사랑스러운 여인 메리(레이철 맥아담스)를 만나 첫 눈에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여전히 여자만 앞에 있으면 ‘숙맥’이 되는 팀. 말도, 키스도, 구애도 처음은 연습, 두 번째는 ‘실전’이다. 근사한 말 한 마디로 여심을 잡지 못하면, 그대로 몇 분 전으로 ‘시간여행’. 한결 멋있고 여유있게 실행에 옮겨 성공한다. 과거 이동이 자유자재인 팀에게 인생은 제대로 될 때까지 촬영하는 영화 같다. 영화는 팀의 연애와 결혼 출산 등 기쁨의 순간과, 사랑하는 가족의 불행이나 죽음 같은 가슴 아픈 일들을 겪는 과정을 그린다. 이를 통해 인생에서는 되돌릴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그는 뒤돌아가 바꿀 필요가 없는 ‘지금, 여기’의 행복을 찾는다.
결국, 이들 영화는 시간여행조차 공짜가 없으며,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는 말이다. 과거를 바꾸면 현재도 뒤틀리고, 미래를 알아버리면 현재가 달라지니 말이다. 인생이라는 순방향의 긴 시간여행 또한 끊임없이 바꿔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 사이의 끊임없는 교환과 선택의 과정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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