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했지만 ‘바람 찬 거리를 헤매는 상갓집 개’는 아니었다. 왕실 종친 이하응은 안동 김씨 세도의 눈을 피하기 위해 건달행세를 하면서 절치부심했다. 마침내 아들 고종을 즉위시킨 뒤 섭정에 나선 흥선대원군은 서원철폐 등 강력한 개혁정치를 펼쳐나간다. 하지만 세상은 서양세력이 밀고 들어오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형국이었다. 병인과 신미년 두 차례 ‘서양 오랑캐’의 침입을 물리친 자신감으로 대원군의 쇄국의지는 더욱 굳어졌다. “자손만대에 경계”하기 위해 “서양 오랑캐가 침범했을 때 싸우지 않는 것은 곧 화의하는 것이요, 화의를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란 척화비가 곳곳에 세워졌다. 세계사의 큰 흐름에 눈을 감고, 조선이 근대국가로 전환에 실패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야당이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을 ‘기춘대원군’으로 부르고 있다. 대원군은 국수주의자였지만 개혁가, 실권자 등 여러 해석이 가능한 인물이란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창협 디지털뉴스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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