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3주 간의 정글생활, 족장 김병만과 류담 노우진이 아니라면 ‘정글의 법칙(SBS)’을 채우는 얼굴은 늘 ‘뉴페이스’입니다. 야생으로 떠나기 전, 이들은 첫 만남을 가집니다. 같은 연예계 종사자라지만, 수년간의 활동에도 처음 보는 얼굴이 많습니다. 매일 24시간, 약 21일간의 낯선 얼굴들이 체험하는 정글생활은 어떨까요. 익히 봐왔습니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한밤중 물가에 뛰어들고, 갑작스레 비가 쏟아지면 방수포를 꺼내 숙소 재정비에 나섭니다. 뜻하지 않은 모기떼의 습격을 받기도 하죠. 위기는 그들을 가족으로 만듭니다. 최근 방송에서 조여정이 말했습니다.

“원래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를 잘 못해요. 개인적으론 문제 아닌 문제라고 느꼈어요. 여기 정글에서는 ‘저 사람들이 없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진짜 가족이에요. 의지하는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글에서 병만족장은 생각이 많습니다. ‘족장’이라는 감투로, ‘정글의 법칙’의 원년멤버이자 고정멤버인 덕에, 재주 많은 달인이었던 탓에 늘 분주합니다. 부족이 편히 쉴 집을 짓고 더 풍성한 먹거리를 내놓기 위해 애를 씁니다. 때로는 PD가 되기도 하죠. 족장으로의 역할에 충실합니다. 늘 차고 넘치는 병만족장의 배려가 ‘정글의 법칙’ 안에서는 조여정이 느끼는 ‘가족애’로 돌아오는 근간이 되지 않나 생각도 듭니다.

정글이 아닌 일상에서 김병만은 어떤 모습일까요. 방송가에서 그는 무서운 선배로 정평이 나있기도 하죠. 첫인상은 거친 남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김병만 씨는 따뜻하고 진솔한 사람이었습니다.

두 달쯤 전, 경기도 가평에 위치한 김병만 씨의 집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인터뷰를 막 시작할 무렵,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김병만 씨에게 걸려온 전화였습니다. 요즘 엄청 잘 나가는 ‘예능대세’ 샘 해밍턴 씨였죠.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지난 6월이었나요? 지금은 폐지된 ‘무릎팍도사’에 출연했던 샘 해밍턴이 연예계에서 가장 무서운 선배로 김병만 씨를 꼽은 이후 두고 두고 인터넷을 통해 그의 이야기가 회자됐습니다.

샘 해밍턴은 그게 마음에 걸렸는지, 뒤늦게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김병만 씨는 후배의 전화를 반갑게 받으며 “요즘 바쁘지?”, “에이 그게 뭐”, “그래, 이번주엔 녹화가 많으니 다음주에 보자”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평범하고 다정한 선배였죠. 전화를 끊고 기자에게 사과와 양해를 구한 김병만 씨는 ‘밍턴이’라고 이야기를 하더군요. 샘도 해밍턴도 아닌 ‘밍턴이'로 부르나 봅니다.

“밍턴이가 한 얘기 때문에 요즘 죽겠다”고 얼굴 가득 미소를 띄우던 김병만 씨는 “그것 때문에 신경 쓰였나봐요”라고 말하더군요. 장난스레 입을 열었지만, 안타까웠나봅니다. “정말 친하지 않다면,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밍턴이가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겠냐”는 거죠. 그러면서 김병만 씨는 고백 아닌 고백을 했습니다.

“사실 제가 후배들에게 좀 무섭게 하긴 합니다. ‘개그콘서트’ 때도 하루종일 함께 하면서 회의를 하는데, 제대로 준비가 안됐거나 시킨 일을 안 해낼 땐 엄하게 말도 해요. 후배들은 그 모습이 무서웠던 모양이에요.”

후배들의 입장, 이해가 가더군요. 김병만 씨 역시 그만의 아우라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빡빡한 스케줄에 ‘1억 집짓기’ 프로젝트까지 병행하던 그는 인터뷰를 하던 날도 잠을 못자 피곤하다며 부은 얼굴과 충혈된 눈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두 눈에선 어찌나 레이저가 나오던지요. 그래서 김병만 씨에게 “그럴 법도 하다”며 맞장구를 쳤죠.

사실 김병만 씨, 뭐든 열심히 하고 늘 새로운 것을 찾아 도전하는 사람입니다. 주어진 것은 늘 기대 이상의 성과를 가져다주죠. 선배 김병만의 성실한 도전을 본 후배들에게 그의 이야기가 허투로 들릴까 싶었습니다. 김병만 씨는 그저 “그런 부분도 있다”며 “그런데 말을 안 들을 때도 많다”며 웃어넘깁니다.

가족들에게도 김병만 씨는 자상한 아빠이고, 든든한 아들이었습니다.

김병만 씨가 경기도 가평에 전원주택을 지은 것은 가족들이 편하게 머물며 사생활을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 자그마한 2층집에서 눈에 띄는 것은 사춘기가 다가올 딸의 공간이었습니다. 딸이 혼자만의 공간을 갖고, 자기 시간을 지키고 싶어할 것 같은 마음에 큼직하게 방을 하나 만들고, 테라스 역시 개별공간으로 설계해놓았더군요.

‘딸바보’의 면모도 보였습니다. 지금 김병만은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습니다. 김병만은 그 곳에 사는 이유로 딸을 꼭 여중, 여고에 보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반포엔 세화여중 세화여고가 있고, 인근 방배동엔 이효리의 모교인 서문여고가 있죠. 사실 대학도 여대에 보내고 싶다고, 아니 보낼 생각이라고 합니다. 왜냐고 물으니 “요즘 세상이 너무 험하잖아요. 여자아이고, 남학생이 있는 환경에 있다고 생각하면 걱정이 되네요”라고 말합니다.

어머니에겐 다정한 아들이었습니다. 손수 설계하고 하나 하나 쌓아올린 집안의 구석구석을 설명하며 김병만 씨는 휴대폰에 저장된 어머니의 전주집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가평집의 정원은 어머니의 집처럼 꾸미고 싶다고 하더군요. 살구나무와 자두나무를 심고, 직접 배추와 고추도 기르고요. 어머니께 몇 해전 전주시내에 마당있는 집을 선물하자, 무척 기뻐하셨다고 합니다. 마당에는 손수 키운 농작물과 과실나무가 열렸고, 계절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나봅니다. 그걸 본 아들을 어머니를 닮아가고 싶은 마음이라고요. 어머니의 이야기를 할 때 김병만 씨의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