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 진격의 서사
양극화로 벼랑끝 몰린 사람들 계급사회의 심장부 향해 돌진
‘설국열차’ ‘진격의 거인’이 그린 인류 마지막 사회의 비밀은…
미래사회에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들은 ‘설국열차’의 ‘꼬리칸’에 탑승하거나 ‘머리칸’에 가까운 상류계급이 된다. 멈춰서면 절멸인 열차의 바깥은 모든 자연과 사물이 얼어있고, 모든 생명체가 죽은 새로운 빙하기의 지구다. 아름답기조차 한, 눈덮이고 얼어붙은 열차 밖 세계의 추위는 적막과 ‘새하얀 어둠’으로 위장한 잔인한 포식자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설국열차’가 전하는 묵시록이다.
이것이 아니라면 미래의 어느 세대, 최후의 인간들은 ‘월 마리아’의 주민이거나, 운이 좋아 ‘월 로제’의 경계 안에 있거나, 더 드물게는 ‘월 시나’의 높은 벽 안에 거주할 수도 있다. 성벽의 바깥엔 키 3m에서 15m까지 압도적인 크기와 힘을 가진 거인이 인육을 탐하는 시뻘건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거인은 순수한 식욕의 화신이자, 살육의 욕망덩어리일 뿐이다. 일본 TV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이 그리는 미래다.
이들 작품에서 미래는 철저한 계급사회다. 온난화를 막기 위한 조치로 오히려 생명체가 살 수 없는 빙하기의 대재앙을 맞은 인류는 마지막 생존자를 태운 ‘설국열차’를 출발시킨다. 그리고 17년 후 엔진에 의지한 인류 최후의 사회는 ‘윌포드 인더스트리’라는 회사의 수장 윌포드에 의해 엄격하게 통제되는 계급사회다. 극악한 억압과 통제, 이유를 알 수 없이 차출돼 실종되는 아이들. 최악의 생존조건에 시달리던 꼬리칸의 지도자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분)는 반란을 도모하고 머리칸의 엔진룸까지 ‘진격’하기로 한다. 윌포드를 신격화하며 그를 대리하는 ‘메이슨 총리’(틸다 스윈튼 분)의 방해와 저지, 체제 수호자의 학살과 살육에도 불구하고 꼬리칸의 반란자는 동료의 시신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들은 마침내 감옥칸에 갇혀 있던 열차의 보안설계자 ‘남궁민수’(송강호 분)를 만나 머리칸까지 닫혀진 모든 문을 열어낼 수 있는 열쇠를 얻게 된다. 검역칸, 주방칸, 정수(물공급)칸, 식물칸, 수족관칸, 교실칸, 사우나칸, 미용실칸, 수영장칸, 클럽칸을 지나 엔진룸이자 ‘열차의 신’인 윌포드의 칸까지. 문이 한 칸씩 열릴 때마다 열차 속 계급사회의 풍경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꼬리칸 탑승객은 바퀴벌레를 짓이겨 만든 단백질덩어리로 배를 채울 때 머리칸의 인간은 초호화 식당칸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며 스테이크를 썬다. 열차의 지배자들은 수영장칸의 물에 몸을 담그고, 식물칸의 정원을 거닐며, 클럽칸에서 매일 술과 마약으로 흥청망청한 파티를 연다.
그렇게 당도한 엔진룸에선 인류 최후 세계의 마지막 비밀이 드러난다. 지도자 커티스가 대면한 진실은 끔찍하고 잔인하며 절망적이다. 하지만 보안설계자 남궁민수와 그의 딸 ‘요나’(고아성 분)는 한 가닥 희망의 빛을 발견한다. 그 ‘판도라의 상자’는 과연 어디로부터 왔을까.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매우 제한된 공간이지만, 반란군이 진격하는 기차의 칸마다 서로 다른 액션과 정조, 미술, 화면구도, 에피소드를 배치해 놀라운 속도감과 박진감을 보여준다. 원작인 동명의 프랑스 만화(자크 로브ㆍ뱅자맹 르그랑 글, 장 마르크 로셰트 그림)는 참조에 불과하다고 할 만큼 전혀 다른 작품이 됐다. 원작보다 훨씬 직선적이고 비극적이며, 파워풀하다. ‘설국열차’는 열차의 심장인 엔진룸을 향한 반란군과 함께 계급사회의 비밀을 향해 진격해간다.
‘설국열차’의 반란군이 꼬리부터 머리칸까지 진격해갈 동안 ‘진격의 거인’에서 거인들은 바깥으로부터 안으로 성벽을 돌파해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류가 마지막 사회의 비밀을 깨우쳐가는 것은 거대한 적이자 압도적인 힘의 포식자인 거인들의 진격을 통해서다. 평범하게 살다가 전투병이 된 주인공들은 성벽을 하나씩 무너뜨리며 도시의 심장부로 돌진하는 거인들을 상대로 인류 최후의 방어선이 되고 나서야 진실의 실체에 한 발씩 접근해간다. ‘설국열차’의 모든 비밀이 머리칸의 엔진룸에 있었듯, ‘진격의 거인’에서 최후의 수수께끼는 왕과 지배자들이 사는 마지막 성에서야 밝혀지지 않을까.
미래를 극도의 계급사회로, 그리고 진격의 서사를 담아내는 이들 작품의 묵시록적인 상상력은 도대체 어디서 기원한 것일까. 아마도 부와 권력을 독점한 1%와 나머지 99%로 양극화하는 현대사회에 대한 풍자가 아닐까.
‘설국열차’의 지배자들은 머리칸에서 꼬리칸까지 계급으로 구획된 세계를 ‘생태계의 균형’과 ‘생존을 위한 질서’로 합리화한다. 마치 멜더스의 ‘인구론’을 연상시키는 이 같은 주장은 ‘진격의 거인’에서 주기적으로 인류를 도살하는 거인의 행태에도 들어맞을 듯하다.
그렇다면 계급사회의 묵시록은 피할 수 없는 것일까.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진격의 주인공’은 성벽의 바깥을 끊임없이 상상한다. 그것은 ‘설국열차’가 판도라의 상자 안에 봉인한 희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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