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면허취소 처벌 덜 받게 손 쓰고

성형환자 연결해주고 알선 수수료 챙기고

수천만원 받고 범죄자 밀항시켜주고…

법률·의료·정치·문화 불법 브로커들 손길 안 미치는 곳 없어

지난 7월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김모(30) 씨. 가구배달업을 하는 김 씨는 면허가 취소되면 당장 생계에 지장을 받는 것이 불보듯 뻔했다. 처벌을 조금이라도 덜 받기 위한 방법을 알아보던 중 인터넷에서 눈에 띄는 글 하나를 발견했다. 면허취소를 정지처분으로 바꿔주며, 행정사를 통한 음주운전 구제신청보다 확실하게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자신을 운전면허 구제전문 ‘브로커’로 소개하며 “운전자의 음주정도, 적발 당시의 정황, 직업적 환경 등을 참고하는 것은 물론 법원 쪽의 줄을 이용해 확실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심지어 “필요하다면 약식재판에 관한 제출서류도 조작할 수 있다”는 브로커의 말에 김 씨는 순간 혹했지만, 불법적인 일에 관련되는 것 같아 더이상 진행을 하지는 않았다.

수요와 공급, 원하는 자와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는 사람 사이에는 그들을 이어주는 은밀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브로커(Broker)다.

사실 브로커라는 단어가 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역사상 상거래가 발생한 순간부터 존재해왔다. 우리나라에서도 ‘거간’이라는 이름으로 판매자와 소비자의 사이에서 흥정을 놓고, 중개를 해왔다. 하지만 불법 브로커는 법의 테두리에서 거래할 수 없는 은밀한 것까지 거래하고 있다.

불법 브로커가 손을 뻗치고 있는 영역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정치, 경제, 의료, 문화 등 이들이 거래하지 않는 분야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가장 대표적으로 브로커가 활개를 치는 분야가 성형 분야다. 싼 가격에 시술을 받고자 하는 환자와 병원을 소개시켜주고 알선 수수료를 받아 챙기는 것.

이달 초 서울 강남경찰서는 강남 일대 성형외과와 환자를 연결시켜준 브로커 27명을 의료법 위반으로 불구속 입건했다. 브로커는 병원 측에서 환자당 수술비의 20% 정도를 소개료로 받는 것은 물론, 대부업체와 결탁해 환자에게 수술비를 빌려주면서 수수료를 챙기기도 했다.

현행 의료법상 돈을 벌 목적으로 환자를 의료기관에 알선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지만 경쟁과 난립으로 운영이 어려운 성형외과 측에서 브로커를 통해 환자를 연결받는 경우가 점차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 관계자는 “강남구에만 600여명의 성형전문의가 영업을 하다보니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얼마간의 수수료를 내더라도 브로커를 통해 확실하게 환자를 공급받고 싶어하는 유혹에 빠지는 병원이 많다”고 말했다.

출입국과 관련된 서류를 조작하는 것도 대표적 불법브로커의 활동영역이다. 주로 관광비자를 이용하거나 여권을 위조해 신분을 속인 채 국경을 무사히 넘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경찰 관계자는 “우리나라에 체류 중인 불법체류자 중 대다수가 브로커를 끼고 입국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특히 해외알선 조직과 연계해 입국희망자를 모집, 여권이나 비자를 조작하는 전문 조직이 활개를 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 범죄를 저지른 수배자가 중국이나 동남아 등으로 밀항하는 과정에서도 이른바 ‘밀항브로커’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부산지검은 수천만원을 받고 수배자를 중국으로 밀항시킨 전ㆍ현직 선원으로 구성된 밀항브로커를 적발하기도 했다.

정치권도 예외는 아니다. 법을 만들고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보니 여의도 주변에는 각종 입법 브로커가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다양한 인맥을 바탕으로 기업이나 이익단체에서 필요로 하는 내용이 법안에 반영되게 한다.

때로는 정치인이 브로커에게 일을 의뢰하는 경우도 있다. 주로 선거철에 활개를 치는 이른바 선거브로커는 후보자에게 표를 모아주는 것은 물론 SNS 등을 통해 상대방에 대한 흑색선전까지 처리해주기도 한다. 지난해 6월에는 4ㆍ11총선 당시 모 후보자에게 접근해 표를 모아주겠다며 금품을 요구한 선거브로커가 제주지검에 구속되기도 했다.

가요계도 브로커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음원순위에 따라 영향력이 달라지는 점을 이용해 음원을 사재기하거나 음악추천을 전문적으로 조작하는 브로커가 활개를 치고 있는 것.

이달 초에는 SM 등 4개 대형 음반기획사가 서울중앙지검에 디지털 음원 사용 횟수를 조작하는 마케팅 대행업체를 고발했으며, 정부도 음원 사재기에 대한 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박상진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불법과 탈법을 이용해 이익을 챙기려는 수요ㆍ공급자 사이에서 불법 브로커가 활개를 치고 있다”며 과거에는 인맥 등을 무기로 영업을 했던 브로커가 최근에는 조직화ㆍ전문화하고 있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이들의 불법활동을 막기 위해서는 당국의 강력한 수사는 물론 불법출생신고에 악용되는 인우보증제와 같은 허술한 법체계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서상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