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88년 올림픽을 앞둔 서울, 국내 굴지의 건설사가 세워올린 대형상가 건물이 와르르 주저앉았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무너져내린 자리엔 건물의 잔해와 잿더미만 쌓였다. 파묻혀버린 한 아이의 시신과 함께다. 1995년 6월29일 500여명의 사망자를 낸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을 모티브로 한 드라마 MBC ‘스캔들: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의 첫 장면. 드라마는 부실시공을 숨기기위해 건물붕괴를 폭탄테러로 위장한 부도덕한 재벌총수 장태하(박상민)를 악인으로 등장시켰다. 그 위장을 위해 정계와 법조계도 결탁한 ‘그들만의 세상’이다.
#2. 1990년 신도시 개발이 한창이던 대한민국, 그 후 20년을 담은 격동의 경제사는 SBS ‘황금의 제국’을 통해 그려진다. 거대 재벌가를 배경으로 돈과 성공을 향한 ‘부끄러운 욕망’이 이 드라마에 집약됐다. 1997년 IMF, 98년 빅딜과 구조조정, 2002년 부동산 광풍, 2003년 카드대란,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버텨낸 재벌가의 이야기다. 드라마는 ‘추적자’의 드림팀인 조남국 PD와 박경수 작가가 재회한 작품이다.
브라운관 안팎에 불어닥힌 ‘경제민주화’ 바람이 거세다. 숱한 비리에 연루된 대기업 총수들의 이름이 뉴스와 신문에 끝도 없이오르내리는 요즘이다. 회삿돈은 호주머니에 들어갔고, 수백억원대의 탈세를 위해 유령회사도 세웠다. 현 정부에서 처음으로 구속된 대기업 총수도 등장했다. 그들이 브라운관 안으로 들어왔다. 압축성장을 일군 기업들의 이면에 드리운 어두운 욕망과 추악한 비리가 과거 재벌드라마와는 다른 모습으로 낱낱이 폭로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무렵, 사랑받던 서민드라마는 사라지고 브라운관 속 거의 모든 드라마에 재벌이 단골소재로 등장하기 시작했다.‘백마 탄 왕자님’이 등장하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대세였던 시절이 있었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경제사에 기여한 성공 스토리가 인기였던 때도 있었다. 이젠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의 부도덕을 사회적인 시각으로 조명하고 있다.
드라마가 그리는 ‘그들만의 세상’은 정경유착과 유전무죄의 현주소이며, 재산 축적을 위해 부도덕과 불공정을 일삼는 비리 백화점이었다. 부정부패를 일삼는 모습만이 전부는 아니다. 속물근성과 우월감으로 가득 찬 재벌가(SBS ‘결혼의 여신’)의 이면도 투영됐다. 눈 하나 깜빡 않고 불륜을 저지르는 재벌2세 남편(김정태)이나 청담동으로 입성한 서민 며느리를 업신여기는 재벌 시월드도 그려진다.
압축성장을 일군 주역이지만, 브라운관 재벌들은 ‘공공의 적’이나 ‘트러블메이커’로 비쳐진다. 하지만 현실을 투영한 드라마가 권선징악의 결말을 따라간다면 ‘성장의 주체’인 재벌의 특성을 그리며 부정적인 면을 바로잡자는 ‘재벌개혁론’의 취지와도 맞닿을 것으로 보여진다.
정덕현 대준문화평론가는 “‘스캔들’이나 ‘황금의 제국’은 재벌을 사회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권력자들이 권력을 이용해 복수극을 그리는 형태의 드라마”라며 “부실공사 등 실제 경제사를 통해 압축성장의 후유증을 보여주는 것으로 부정적 부분을 노출시키고 있다. 과거엔 이 같은 드라마가 시선을 끌지 못했으나 대중의 공분이 부각된 지금은 우리 정서에 잘 맞는 드라마다”고 설명했다. 특히 “경제민주화와 갑을 정서가 화두로 떠오르며 사회를 다루는 드라마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정 평론가는 “대중들의 정서가 반영된 결과물”이라고 해석됐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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