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다큐예능의 힘이 소리없이 강하다. 큰 인기를 구가했던 리얼버라이어티 ‘남자의 자격’이 종영을 맞게 된 것은 콘텐츠 업그레이드에 한계를 보인 면도 있지만 예능 트렌드가 바뀌면서 힘이 부치게 된 측면도 있다.
다큐예능의 포인트는 주어진 현실에 자연스럽게 부딪치며 나오는 즉각적이고 소소한 반응이다. 그런 것들이 작위적으로 웃기는 예능물보다 훨씬 더 친근하고 살갑게 대중에게 다가간다.
다큐예능의 선두 주자는 ‘정글의 법칙’(이하 ‘정법’)이다. ‘정법’은 2011년 10월 아프리카 악어섬에서 첫 공개되고 최근까지 큰 인기를 누리면서 사랑을 받아오다 조작 논란에 휩싸여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멤버들이 족장 김병만을 중심으로 진심을 보여주면서, 등을 돌린 시청자도 다시 애정을 보이고 있다.
다큐예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법’에서 드러났듯이 진정성이다. 제작진의 과욕에서 시작됐지만 리얼리티 논란으로 진정성에서 한 번 흠이 생기면 시청자를 돌려놓기가 쉽지 않다. 사람들은 현실이 힘들어지면서 다큐예능을 보고 힐링받기를 원한다. 시청자가 진심과 진정성이 결여됐다고 받아들이면 프로그램의 인기 하락을 만회하기는 쉽지 않다.
‘정법’은 내용상으로 시즌 2의 국면에 접어들었다. 초기에는 아프리카와 파푸아 섬, 툰드라 등의 오지에서 단순무식하게 고생하는 생존기를 담았다. ‘정법’ 기획자였던 SBS 정순영 국장이 파푸아 섬에서 실종됐을 때는 리얼리티 효과가 최고조에 달했었다. 다큐예능인 ‘정법’의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는 남극과 아마존, 아프리카의 속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교양 파트의 순수 자연다큐가 힘을 잃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정법’도 조작 논란이 발생하면서 그 거품이 어느 정도 걷혔다. ‘정법’이 완전한 정글이 아니면서 여행의 로망이 담긴 뉴질랜드를 행선지로 택한 것은, 진정성을 회복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지만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렇게 해서 ‘정법’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정글의 힘들고 무서운 요소가 줄어들면서, 미지에 대해 갖게 되는 ‘로망’이라는 요소가 늘어난 것이다.
‘뉴질랜드’ 채텀 섬에서 고생을 자처하며 초심으로 돌아간 이들은 자이언트송어를 맨손으로 잡고 흑전복 밭에서 전복을 딴다. 5일 방송에서 길이 60㎝급의 크레이 피쉬를 잡아 먹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까지 군침이 돌게 했다. 해양생물의 보고였다. 직화구이로 요리한 크레이피시의 몸통을 내장소스에 찍어먹는 장면은 여행이 주는 ‘로망'이 아닌가. 이는 새로운 여행 트렌드로 시청자의 욕구를 자극할 수 있다. 안락한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왜 굳이 사막에 가서 체험을 하고 싶어하는지와 똑같은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의 조건’은 김준호 등 여섯 명의 개그맨이 일주일간 현대문명을 살아가는 인간에게서 필요한 조건 한 가지씩을 가감해 합숙생활을 하게 한다. ‘휴대전화, 인터넷, TV 없이 살기’ ‘쓰레기 없이 살기’ ‘자동차 없이 살기’ ‘돈 없이 살기’ 등을 통해 웃기려는 강박 없이 자연스럽게 관심을 이끌어낸다. 출연자가 개그맨들이어서 거창하게 보이지 않고 서민 냄새가 난다. 이들은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시청자들은 소소한 깨달음을 얻는다.
‘땡큐’는 차인표 등 3~4명의 출연자가 함께 여행하면서 나누는 자유스러운 대화 속에서 고민과 속내, 일상을 보여주며 교감하고 소통한다. 은지원은 힘들게 회사에서 나와 새롭게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하는 오상진에게 “아나운서의 이미지를 버리고 어눌하고 망가지는 모습도 보여주고 닥치는 대로 하면서 나에게 맞는 프로그램과 그 안에서 내 역할을 잘 찾아 그만큼을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을 해줬다.
다큐예능에는 연예인과 명사들이 나오지만 일반인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를 보여줘 의외성이 나타나야 한다. 이 예측 불가능성은 다큐예능을 끌고 가는 엔진이다. 연예인의 상황이나 경험이지만 일반인 시청자들의 관심사와 욕구에 부합하고 공감할 수 없다면 ‘그들만의 다큐예능’이 될 것이다. 은지원과 오상진의 대화는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것이었다.
힐링이란 요즘 방송 콘텐츠의 최대 트렌드지만 거창한 게 아니다. 공원 산책, 기지개 켜기, 강아지 쓰다듬기 등 소소한 것에서 힐링된다. 음악도 소소하게 공감하고 진심을 느끼게 하는 힐링음악이 대세다. 출연자들이 보이는 솔직한 반응에 대해 공감하는 것, 이것이 다큐예능의 효용가치라 할 수 있는 힐링이다.
다큐예능의 제1덕목은 진정성이다. 힐링은 진정성에서 나온다. 하지만 다큐예능이 제2덕목이랄 수 있는 웃음과 재미를 완전히 포기해서는 안 된다. ‘땡큐’ 등 다큐예능은 착하고 계몽적인 쪽을 지향하다 웃기지 않는다는 한계를 드러낼 가능성이 있다. 그런 우려는 다큐예능이 계속되면서 조금씩 현실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서병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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