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05회> 총칼 없는 전쟁 45

“알겠니? 너는 오늘부터 사막의 낙타가 되는 거야. 일단 코끝을 텐트 안으로 밀어넣는 일엔 성공했으니 앞으로는 힘차게 머리통을 밀어넣으란 말이다. 인정사정 봐주면 안 돼. 잘 알아들었지?”

중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도 강준호는 여전히 훈계를 하고 있었다. 그 말을 다소곳이 듣고 있는 사람은 강유리였다. 그녀야말로 5개국 관통 랠리 팀을 뒤쫓아 중국으로 가는 일이 꿈만 같았다. 왜냐고?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미 유호성에 대한 사랑이 자라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맨손으로도 울며불며 그를 쫓아갈 판인데 HY 훌 푸드에서 자동차와 경비까지 후원해주며 가라 하니 웬 떡이냐 싶었다.

“알았어요. 그런데 아빠, 텐트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는 게 뭘 어떡하라는 거예요? HY 훌 푸드의 임원 자리를 차지하라는 말씀인가요?”

“그것도 좋지만… 아예 안방마님으로 들어가라는 뜻이기도 하지.”

“네? 안방마님? 나보고 그 집 며느리가 되라고요?”

“왜? 싫으니? 네가 아직도 세상이치를 모르는 모양인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힘차게 살아가려면 일단 재벌가문에 편입이 되어야 한단다.”

“그야 기본 상식이지요. 그래도 그렇지….”

이를테면 은근한 연막술이었다. 속으로는 좋아 죽을 지경이었으나 겉으로는 덤덤한 척하기. 아무리 뜻을 같이한 부녀지간이어도 이 정도의 연막은 피워놓을 필요가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기회는 자주 오질 않는 법이란다. 얘야.”

강준호는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느덧 인생 후반기로 접어든 남자, 젊었던 시절의 꿈을 모두 잃고 이제는 한낱 치졸한 사기꾼 정도로 전락한 남자가 아버지의 진정한 모습이라니…. 강유리도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하지만 더욱 기막힌 것은 어느덧 자기 자신도 아버지 강준호의 모습을 빼어 닮아가는 중이란 점이었다.

“아빠, 우리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야?”

“너무 잘살려고 애쓰지 마라. 인생이란 원래 허섭한 것이란다. ‘세라비’라는 말이 있잖니? ‘케 세라 세라’도 좋고.”

에어포켓 속으로 빨려들어갔는지 잠시 비행기가 중심을 잃고 출렁거렸다. 하지만 강준호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될 대로 되는 게 인생이지 뭐…. 강준호는 진심으로 이런 생각에 젖어 있었다.

그들은 일단 상하이 공항에서 내려 ‘항저우’를 거치지 않고 ‘우한’으로 직행할 예정이었다. ‘우한’은 5개국 관통 랠리 팀이 첫날 경기를 치른 후 1박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곳이었다. 계획대로라면 그곳에서 먼저 1박을 한 뒤에… 랠리 팀이 도착하기 전에 다음 1박 예정지인 ‘시안’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즉, 랠리 팀의 일정보다 서너 시간씩 앞서서 랠리 코스를 따라가는 셈이었다. 그래야만 랠리 팀의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 언론 보도용으로 뿌려지는 생생한 뉴스를 들으면서 거사 시기를 조율하자는 의도였다.

“상하이에 도착하면 아빠는 저 뒤의 직원들과 골프나 치며 노세요. 이번 일은 저 혼자 감당해도 충분해요.”

강유리는 서너 칸 뒤에 앉아 있는 여섯 명의 HY 직원, 이른바 ‘유호성 케어 팀’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공연히 그들과 섞여봐야 골치만 아프다는 투였다.

“내 생각도 그렇다. 이번 일은 오히려 너 혼자 은밀히 해결하는 게 좋아. 네 말대로 나는 저 작자들 꼬여서 신 나게 골프나 쳐야겠어.”

강준호도 수긍했다. 혹시 사막에서… 둘만의 은밀한 상열지사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알리바바 더보기


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