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웃고 싶어 한다. 코미디는 그 욕망에 가장 충실한 연예 장르다. 한때 천박한 장르로 비하받던 코미디가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뛰어넘어 여전히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웃기는 일은 쉽지 않다. 어설프게 웃기려했다간 본전도 못 챙길 수 있다. ‘개그는 타이밍’라고 했던가? 이 공식을 제대로 이해하고 절묘한 타이밍에 시대의 웃음코드 속으로 파고들었던 코미디와 코미디언들은 여전히 대중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회자되고 있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아물지 않은 1960년대 코미디 스타는 ‘만담의 거장’ 장소팔-고춘자 콤비였다. 장소팔의 엉뚱한 매력과 결합한 고춘자의 쉰 목소리가 쏟아내는 속사포 같은 만담은 전후 가난과 배고픔으로 힘겨워 했던 대중의 시름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 단비였다. 특히 1967년 라디오 프로그램 ‘내 강산 좋을시고’는 이들을 전국적인 스타로 만들어줬다.

70년대엔 무대가 라디오에서 텔레비전으로 옮겨왔다. 1969년 MBC 개국과 동시에 전파를 탄 ‘웃으면 복이 와요’는 서영춘, 구봉서, 배삼룡 등 당대 최고 코미디언이 전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바보 캐릭터의 슬랩스틱 코미디가 대세를 이루며 넓어진 코미디의 장에 이주일이 화려하게 등장했다. 1979년에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아, 글쎄. 뭔가 보여드리겠다니까요” 등의 유행어로 안방극장을 장악한 이주일은 특유의 표정과 몸 연기로 MBC ‘일요일 밤의 대행진’, TBC ‘토요일, 전원출발’ 등 인기 프로그램을 이끌었다.

80년대의 한국 코미디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영구’ 바보 캐릭터로 한국 코미디 역사에 깊은 족적을 남긴 심형래를 필두로 김한국, 이경규, 이봉원, 김미화, 이성미, 이경실 등 지금도 활발히 활동 중인 코미디언들이 80년대에 대거 등장했다. 그 동안 MBC 코미디에 밀렸던 KBS는 ‘쇼, 비디오쟈키’, ‘유머 1번지’, ‘한바탕 웃음으로’ 등의 코미디 프로그램을 대거 편성하며 약진을 거듭했다.

90년대는 한국 코미디에 급격한 변화의 바람이 분 시기다. 슬랩스틱 코미디로 대변되는 ‘정통 코미디’가 하락세를 걷고 재치 있는 입담과 애드리브로 승부를 거는 ‘버라이어티 쇼’가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이경규와 ‘서세원쇼’로 한국 토크쇼의 전형을 확립한 서세원은 ‘개그맨 MC’의 양대 산맥으로 군림하며 신동엽, 김용만, 유재석, 강호동, 남희석 등의 등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버라이어티 쇼’는 2000년대로 접어들어서도 예능프로그램의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버라이어티 쇼’의 대세 속에서도 ‘정통 코미디’의 명맥은 이어졌다. KBS ‘개그콘서트’는 다시금 코미디를 주류로 편입시킨 일등공신이다. 직접 KBS 예능국과 담판까지 지으며 ‘개그콘서트’를 발족시킨 김미화는 백재현, 심현섭, 김영철, 김준호, 김대희 등을 이끌고 대학로에서 운영되던 공연 형식의 코미디 쇼를 텔레비전으로 옮겨와 히트시켰다. ‘개그콘서트’는 이후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 MBC ‘개그야’ 등의 탄생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1999년 첫 방송 이후 14년 째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