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배우 손현주는 무슨 역을 맡아도 소시민 이미지가 따라다닌다. ‘장밋빛 인생' ‘조강지처클럽’ ‘앞집 여자'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과 지난해 손현주에게 SBS 연기대상을 안겨준 ‘추적자'까지 모두 수수한 소시민 페이소스를 진하게 풍긴다.
‘조강지처클럽’에서 병을 숨기고 자살시도까지 하는 기러기 아빠 ‘길억'을 연기할 때는 대한민국 기러기 아빠의 애환과 고충을 대변하면서 시청자를 짠하게 만들었다. 손현주는 ‘여우야 뭐하니'에서는 온 몸에 명품을 걸치고 초호화 레지던스에 살아도 워낙 강한 소시민적인 그의 본래 이미지와 충돌해 오히려 코믹 캐릭터가 됐다.
손현주는 소시민이 어울릴만한 주말극과 일일극에만 나오는 게 아니라 미니시리즈, 장르물에서도 도전해 소시민과 결합한 그만의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그의 연기 스펙트럼은 예상보다 훨씬 더 넓어졌다.
소시민의 착한 이미지에만 갇혀있는 게 아니다. 위악을 떨어도 현실적인 느낌과 결부되면 별로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장밋빛 인생'과 ‘앞집 여자'에서 봤듯이, 심지어 바람을 펴도 용서가 되는 남자 캐릭터다. ‘이웃집웬수'에서 이혼한 후 새 여자인 김성령과 전처인 유호정 사이를 오가도 어색하지 않는 캐릭터다.
손현주는 세상에 없을 것만 같은 캐릭터를 연기해도 특유의 현실적인 느낌을 불어넣는 재주를 지녔다. 그가 지닌 소박한 소시민 중년남자 이미지는 일상이 버거워 허우적대는 남자여서,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 적응이 쉽지 않은 남자여서 더욱 더 서민들의 공감을 자아낼 수 있다. ‘추적자'에서도 소시민 형사 느낌이 강하게 살아나 억울하게 당하고도 제대로 항변조차 못하는 서민들의 분노를 더 잘 대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대상 수상소감에서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군요.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네요”라며 “‘변방 드라마’가 원방도 되네요”라고 말했다. 마치 기적이 이뤄진 것처럼 말했지만 상을 주건 말건 묵묵히, 열심히, 죽기살기로 노력하며 연기 장인의 길을 걸어온 진정한 중년 배우의 뚝심이 마침내 보상받은 것이다. 손현주의 연기대상 수상 기사에 달린 ‘서민이 대통령된 느낌이다'는 댓글이 그런 상황을 압축적으로 말해준다.
아울러 2012 SBS 연기대상은 상이 주인을 제대로 찾아가 권위도 함께 올라갔다. 2011년 ‘뿌리깊은 나무'의 한석규에 이은 손현주의 대상 수상은 SBS 연기대상의 공정성을 증명한다. 상을 받을만한 사람한테 갔는데도 왜 이리 짠한지 모르겠다. 소시민 페이소스를 진하게 풍기는 중년 연기자 손현주에게 준 이 대상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게 남아있을 것이다. 어떤 분야에 가도 세상을 발전시키는 사람은 이렇게 화려한 조명을 받지는 않아도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 일이 아니라도 각자 맡은 일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많은 개미들에게 이 상의 의미를 함께 하겠다”는 손현주의 수상 소감은 새해벽두 ‘개미'들에게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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