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2회> 붉은 태양을 따라서 (31)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다시 귄터그라스의 ‘양철북’ 첫 대목을 상기해 보도록 하자. 능청맞은 태도로 경비병의 추적을 따돌린 ‘아나 콜리아이체크’는 그러나 한동안 꿈쩍도 하지 않고 밭 한 가운데에 앉아있었다. 추적자들이 멀리 사라져 시야에서 벗어나기를 기다렸던 것인데… 그 사이에 치마 속에 숨어있던 도망병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갔어?”

치마 속에서 유호성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들려왔지만 꽃님이 역시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왠지 강유리가 되돌아 와 벌컥 방문을 열어젖힐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었다.

“갔냐고? 그 여자.”

유호성 역시 폴란드의 도망병과 다를 바 없는 속물이었다. 그는 사태가 종결되자마자 벌써부터 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긴… 처녀 총각이 좁은 치마 속에 서로 몸을 찰싹 맞대고 있는 시간이 오래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에그머니나!”

꽃님이는 앉은 자세로 몸을 움찔거렸다. 갑자기 아랫도리가 화끈해지는 것이… 아무래도 유호성이 치마 속에서 본때를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저 양팔을 뒤로 짚은 채 상체를 비스듬히 기울일 수밖에 없었는데… 정작 그때부터 문제가 새로 시작되고 있었다.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난 직후였으니 요정 종업원들과 마담이 그냥 있을 손가? 그들은 발뒤꿈치를 든 채로 살금살금 걸어와 조용히 방문을 열어젖히고는… 금붕어처럼 소리 없이 입을 벙긋거리며 사태의 정황을 묻는 것이었다.

(아이고! 얘야, 고생했다.)

마담의 입술 모양을 보니 분명 이렇게 묻는 중이었다. 하지만 치마 속에서 본때를 보이는 유호성은 치마 밖을 내다볼 수 없었으므로 더욱 더 용맹 정진할 뿐이었다. 치마 속에 새우처럼 몸을 웅크린 자세에서 유호성은 어떻게 지겟작대기를 세우고 용맹 정진할 수 있을까? 인도의 성전 ‘카마수트라’인들 이런 상황에서 합체할 수 있는 자세를 그려낼 수 있을 것인가? 꽃님이는 그저 혼자서만 궁금할 따름이었다.

(그 여자는 갔어?)

“어… 어… 어흑!”

(갔냐고? 그 여자… 얘가 왜 이래?)

“어머, 어머… 억!”

코미디가 연출되고 있었다. 태풍이 몰고 지나간 뒤끝이고 추적자는 아직 50미터 이내에 머물러 있을 것만 같은데… 마담과 종업원들은 조심스럽게 입만 벙긋거릴 뿐이었고, 상황을 모르는 유호성은 치마 속에서 화끈한 불장난을 저지르고 있었다. 정작 꽃님이는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그녀의 입에서는 저절로 교성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어머, 쟤가 왜 경기를 일으키고 그래?”

“마담 언니, 너무 놀라서 그런 거 아닐까요?”

“그래? 물! 물 좀 가져와. 냉수로 말이야.”

마담과 종업원들은 이제야 서로 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함부로 방 안으로 들어서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 방이야말로 조금 전까지 꽃님이와 유호성이 사랑을 나누던 밀실임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으… 꽃님아! 나 죽는다, 죽어.”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호성은 급기야 신음을 토하기 시작했다. 시각적으로나 후각적으로나… 그녀의 치마 속에서 웅크린 채 벌이는 상열지사야말로 일품이기 때문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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