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6회> 붉은 태양을 따라서 (35)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지금부터 딱 10분을 주겠어요. 그 10분 동안에 빈틈없이 내각을 구성하세요.”
“내각? 아, 무슨 말씀인줄 알겠군요. 회사 경영진을 새로 구성해보란 말씀이지요? 그런데 고작 10분이 뭡니까?”
“농담하는 거 아녜요. 옛날 중국의 동아왕은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에 시도 지었답니다. 그러니 강 프로님도 10분 안에 내각을 구성해보라고요. 정확히 10분 안에.”
“까짓 거 하라면 못 할까 봐요? 국무총리에 백광돌…”
아, 그런데 이건 무슨 조화 속일까? 강준호의 머릿속에선 아무런 이름도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여태껏 강유리의 매니저 역할을 해 온 후배 백광돌의 이름만 맴돌 뿐이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을까?
“또요? 부총리엔 누구를 내세울 거예요?”
이쯤에서 신희영이 들먹인 역사공부 좀 해보기로 하자. 혹시 ‘자두연기 (煮豆燃萁)라는 옛 시를 아시는지? 글자대로 풀이하자면 콩깍지를 태워서 콩을 삶는다는 뜻이므로… 형제끼리, 혹은 한 패끼리 미워하고 싸우는 것을 뜻한다.
내친 김에 유래를 따져보면, 삼국지의 영웅 ‘조조’가 죽고 그 아들 ‘조비’가 위나라를 창건하게 된다. 조비가 위나라의 문제(文帝)로 등극한 것이다. 그는 동생 ‘조식’을 동아왕(東阿王)으로 봉하기는 했으나 무척 미워했다. 어느 날 조비는 동생을 없애버리기 위하여 이렇게 명령했다.
“너는 내가 일곱 발자국을 걷는 동안에 시 한수를 지어라.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면 중벌로 다스리겠노라.”
그 짧은 시간에 시 한 수를 지어야 하다니… 하지만 황제의 명령이니 거역할 수도 없었다. 이때 동아왕 조식이 지어낸 시가 바로 ‘자두연기’라는 것이다.
아예 시의 핵심구절을 소개해 보도록 할까?
<콩깍지는 가마솥 밑에서 불타고 (기재부저연 萁在釜底燃), 콩은 가마솥 안에서 운다 (두재부중읍 豆在釜中泣)>
원래 시의 원문은 길지만 대충 생략하였는데… 핵심 구절만 보아도 이 얼마나 기막힌 말인가? 원래 콩깍지와 콩은 한 식구 아니던가.
그렇다고 해서 신희영이 한시에 능통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녀는 단지 조식이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에 시를 지었다는 것만 기억해내고는 강준호에게 10분 안에 내각을 구성하라고 명령한 셈이었다. 일곱 걸음 운운 하는 것도 아마 고등학생 때 국어선생님께 대충 얻어들은 말씀이었을 것이다.
“왜 이렇게 아무 이름도 떠오르지 않을까요? 왜 그러지?”
강준호는 머리통을 득득 긁으며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긴… 무식해서 그렇겠지.’
신희영은 이렇게… 마음속으로 외쳤다. 본인이라고 해서 별로 다를 바도 없었지만 그녀는 마음속에 이미 유식한 한승우를 품고 있었기 때문에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한승우를 부각시키기에 앞서서 강준호를 내치자는 것이었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어낸 백전노장의 처세술이었다.
“건망증일까요?”
“그럴 리가 있어요? 강 프로님 주위에 마땅한 인재가 없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니 한승우 실장을 한시바삐 불러와야 한다고요.”
어쩌면 이렇게 뻔뻔할 수 있을까? 강준호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녀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그녀는 새로운 재벌로 등극한 것을!
<계속>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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