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야구선수에서 CEO까지…야구 DNA로 우리파이낸셜 캐피털업계 ‘빅3’로 이끈 이병재 사장의 금융인생 34년…
고등학교 때부터 야구선수로 활약 대학땐 야구부 주장까지…소통·사기진작·효율적 시간관리 강조하는 경영원칙은 선수시절때 다 배워
한일은행 행원에서 우리파이낸셜 수장에 오르기까지…상대입장 중요성 강조한 피터 드러커 멘토로 삼아
패배의식에 빠져있던 직원들 나무라기 보단 고충 들어주며 교감…CEO의 따스한 리더십은 만년 꼴찌를 업계 빅3로 키워내
이경재 前기업은행장·이명재 前검찰총장·이정재 前금융위원장 등 경북 영주의 ‘3才’ 가 친형님…집안 때문에 손해본 적은 없죠
‘노 번트, 노 볼’
몇 해 전 국내서도 베스트셀러에 오른 일본 소설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에서는 1루에 주자가 있으면 통상 번트를 쳐 승수를 높이는 관행을 버리고 고객(관중) 감동을 위해 정직하게 경기에 임하자는 ‘혁신’이 나온다. 또 만년 꼴찌팀에 들어온 새 매니저는 감독과 부원이 의사소통을 거부하고, 부원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갈등하던 고교 야구부에 공동의 목표를 세운 뒤 팀을 효율적으로 변화시킨다. 적극적인 소통으로 서로를 이해하게 된 야구부는 조직력을 갖춰 점점 ‘이기는’ 경기를 하게 된다.
이처럼 이기(利己)보다 이타(利他)적인 리더의 이야기는 종종 ‘리더의 조건’에 대해 생각케 한다. 야구와 경영,이 두 단어에서 누군가를 떠올린다면 그 사람은 바로 이병재(64) 우리파이낸셜 사장일 것이다.
실제 고려대 야구부 주장 출신인 그의 경영은 소설 속 야구 매니저,그리고 팀플레이와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한 드러커와 꼭 닮았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관리자보다 실무자의 말을 듣고, 영업실적으로 나무라기보다 힘든 점이 뭔지를 알아보고 도와주는 따스한 경영은 패배주의가 짙던 업계 하위 업체 우리파이낸셜을 빅3로 키운 디딤돌이 됐다.
강추위가 여전하던 1월의 맑고 시린 날, 올해 목표를 ‘마음을 헤아려줄 수 아는 사람’이 되겠다는 그를 서울 서초구 우리파이낸셜 사무실에서 만났다.
▶인생과 경영은 야구와 같다=최고경영자(CEO)로서 그의 이력은 독특하다. 경북고와 고려대를 나온 그는 그 시절 야구선수였다. 고려대 69학번으로 야구부 주장까지 맡았다. 해설가 허구연 씨와 끝내기 만루포로 유명한 이종도 씨 등이 그의 후배다. 입학 당시 고대에 체대가 없어 예비고사(1회)를 치르고 대학에 들어갔다. 야구를 통해 선후배와의 소통, 사기진작법, 효율적인 시간관리(연습시간)법 등을 절로 깨쳤다.
야구에서 배운 리더십은 졸업 후 한일은행 행원으로 출발해 금융인으로 반평생을 보내는 동안 내내 그의 성공 DNA가 됐다. 2007년 우리금융지주가 한미캐피탈을 인수하며 수장에 오른 뒤로는 그의 뼈 마디마디에 들어찬 이타적 매니지먼트 DNA가 큰 도움이 됐다.
1989년 설립된 우리파이낸셜은 우여곡절이 많은 회사다. MBK파트너스가 한미리스를 인수한 후 쌍용캐피탈로부터 자동차 할부 부문을 인수한 뒤 우리금융지주 품에 안겼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내부 직원은 한미, 쌍용 그리고 우리 계열사 출신에 새로 스카우트된 업계 출신으로 다분화했다.
업계 하위 업체로서의 패배의식도 짙었다. 당연히 영업은 죽어 있었고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이 사장은 “각기 다른 회사 출신인데다 우린 해도 안될 것이라는 자신감마저 없으니 영업실적이 좋을 리 없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이렇게 처음에는 막막했다.
그래서 자신감,이기는 습관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인재도 영입했다.
취임 이듬해인 2008년 사내 야구팀을 만들었다. 금융위원장배 금융인 야구대회를 통해 결속을 다지자는 의도였다. 첫 해 2부 리그서 뛰던 우리파이낸셜 야구팀은 해당 리그 우승팀이 돼 바로 1부 리그로 올라갔다. CEO가 선수 출신이어서 그런지 2009년에는 2위, 2010년부터 3년 연속 1부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야구로 팀워크가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우승을 통해 자신감도 높아졌습니다. 사내 곳곳에 패배의식을 이겨내자는 서적을 갖다놓을 정도로 직원의 사기진작에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호프데이에 참여해 스스럼없이 직원과 맥주잔을 기울였고, 지금도 그렇게 한다. 미국 근무 경험으로 햄버거를 좋아해 직원과 가끔씩 햄버거 파티도 즐긴다.
▶“저 아이들이 우리 회사 월급으로 크겠구나”하니 책임감이 커지더라=소통이 원활해지니 실적은 자연스레 따라왔다. 우리파이낸셜은 우리금융그룹으로 편입된 2007년 직원 150명, 자산 7000억원에서 지난해 직원 600명에 자산 3조5000억원으로 급성장했다. 취임 당시 70억원 적자로 이익이 안 나던 구조에서 지난해 순이익 517억원을 달성,목표로 한 457억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수입차와 의료기 리스가 전부이던 회사는 그간 신차와 중고차,소액대출,기업금융 쪽으로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업계 3~4위권으로 발돋움했다. 신용등급도 BBB+에서 AA-로 껑충 뛰어올랐다. 현재 관련업계 내에서 가장 다양한 자산포트폴리오를 자랑한다. 자동차할부의 경우 시장점유율이 애초 신차와 중고차 각 2%에서 현재 10%와 20%까지 부쩍 성장했다.
우리파이낸셜은 매주 화요일 근무 시작 전 사내방송에 맞춰 국민의례라는 독특한 의식을 치른다.
“거창한 애국이 아닙니다. 가족이 잘 되려면 회사가 잘돼야 하고, 회사가 잘되려면 나라가 잘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겁니다.”
그래서 복도 로비에 ‘가족 사랑,회사 사랑,나라 사랑’이라는 문구를 만들어 걸었다.
“사내 체육대회 때 직원이 가족과 함께 왔는데,‘아! 저 아이들이 우리 회사 월급으로 커야 하는구나. 회사가 잘못되면 큰일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래서 이런 문구를 복도에 걸어놓게 됐습니다.”
영업실적으로 직원에게 부담을 준 적은 없다. 목표 실적을 달성하지 못했더라도 회의석상에서 단 한 번도 나무란 적이 없다.
“은행지점장 시절부터 아침 회의 시간에 애로사항을 들으면 들었지 영업실적으로 얘기한 적은 없습니다. 믿고 기다리며 도와줄 길을 찾아주고, 그런 마음이 직원에게 전달돼 결과적으로 실적도 좋아지는 선순환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실무자 자리로 바로 찾아간다. 처음엔 부담스러워하던 직원도 이제는 자연스러워졌다.
그는 CEO의 최대 덕목으로 마음을 먼저 그리고 활짝 열 것을 꼽았다. 2013년 신년사도 경영목표나 경영 환경을 나열하지 않고 ‘마음을 헤아려줄 수 있는 사람’이란 글로 대신했다.
‘서로 마음을 헤아려 소통하고 배려하는 문화가 돼야 하며 고객을 대할 때도 먼저 마음을 주고 배려해 그 마음이 진정성 있게 전달된다면 더 많은 것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신년사다.
항상 임직원들이 일궈낸 성과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며 자부심과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처럼 마음의 전달이 잘 돼야한다는 그의 경영철학은 소설 속 야구부를 일으킨 ‘현대 경영이나 관리는 커뮤니케이션에 좌우된다’,‘내가 무슨 말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무슨 말을 들었느냐가 중요하다’는 피터 드러커의 경영학과 꼭 닮아있다.
▶위기는 기회, 내실을 다지다=CEO에 오른지 1년만에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터졌다. 이 사장은 위기를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성장하는 와중에 내부를 정비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었다. 연체나 유동성 문제를 돌아보고 회사를 더욱 탄탄히 만드는 계기로 삼았다.
주가도 그의 성적을 잘 말해준다. 2008년 9월 리먼 사태 이후 한때 2880원까지 추락했던 주가는 현재 1만7000원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우리금융그룹 계열사 가운데 주가가 가장 높다.
위기를 겪으면서 직원들에게 주문하는 것은 바로 균형감각과과 책임감,그리고 팀웍이다.
금융인 생활 34년간 늘 회사전체를 생각해왔고 직원들한테도 이를 주문한다.
그는 맞다고 생각하면 확 밀어주는 스타일이다.
향후 포부도 다부지면서도 면밀하다. 우선 렌터카사업을 장기렌탈쪽으로 시작할 계획이다. 전체 2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상용차 할부시장과 서민금융확대에 발맞춰 내구재 시장에도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올해는 총 자산 3조7000억원에 순이익 520억~530억원을 예상한다. 내실다지기와 신 성장동력 안착이 올해 최대 목표다.
“늘 이기는 습관으로 사기는 충만하고 탄력이 붙을 겁니다.”
‘이기는 DNA’로 똘똘 뭉친 이 사장의 다부진 포부다.
▶아내 덕에 지금까지 온 것= 경북대학병원 약사이던 아내 김기순(58)씨와는 당시로서는 늦은 서른 둘에 경북 영주 고향에서 중매로 만났다. 결혼 후 일을 접은 아내에게는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다. 이 사장은 몇년 전 우리은행 시절 장모께 “제가 지금까지 이렇게 잘 된 것은 아내덕입니다”고 처음으로(?) 고백했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월급은 늘 절반만 집에 갔다. 나머지 절반은 사람을 좋아해 술값으로 나갔다. 그런 이 사장의 내조를 잘해준 덕에 이 자리까지 올랐다며 아내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털어놨다.
그런 마음 덕인지 아내와 사이도 좋다. 청담동 자택 근처 한강변에서 함께 산책하고 저녁엔 술 한잔도 하는 친구사이다. 1년에 꼭 1번씩은 올레길을 같이 걷는다. 야구는 대구중 재학시절 반대향 야구시합을 하다 눈에 띈 것이 계기가 됐다. 포지션은 3루수였다.
1973년 한일은행에 입행,우리금융에서 한우물을 파왔고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과는 한일은행 영업부에서 부장과 차장으로 같이 근무했다.
대원외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온 맏딸 은선(29)씨는 은행에 잠시 근무하다 현재 동시통역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있다. 아들 종서(27)씨는 한양대 공대를 나와 삼성 계열사에 지난해 입사했다. 잘 커준 아이들이 밈음직스럽다고 했다.
형제들 얘기만 나오면 손사레를 치지만 이 부분은 빼놓을 수 없다. 바로 경북 영주 4재(才)로 통하는 그의 형제들이다.
이경재 전 기업은행장, 이명재 전 검찰총장, 이정재 전 금융감독원장이 바로 이 사장의 형님들이다. 이정재 전 금감원장은 이 사장처럼 중학생 때 야구 선수로 활동한 바 있는 야구 애호가로, 앞서 우리파이낸셜이 우승한 금융인 야구대회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윗 형님들은 나란히 경북고와 서울대를 졸업한 수재들로 1990년을 전후해 한국은행 자금부장, 서울지검 특수부장, 재무부 이재국장을 동시에 맡아 ‘영주 3재’로 불렸고 여기에 이 사장이 들어가 ‘영주 4재’로 확대됐다.
개인사업을 하는 막내 상재씨를 빼고는 모두 금융계와 인연을 맺었다. 6남매중 첫째로 현재 KB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이경재 전 행장은 1960년 행정고시에 합격했지만 동생들 뒷바라지 등을 위해 보수가 높았던 한국은행에 1961년 입행했다.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변호사인 이명재 전 검찰총장은 사법고시(11회) 합격 전에 외환은행을 다닌 적이 있다.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셋째 정재씨는 행시 8회로 재무부에서 이재국장 등 핵심 요직을 거쳐 재경부 차관을 지냈다.
심리학계에서 명성이 높은 이춘재 전 가톨릭대 교수(경재씨 바로 아래)가 친누나다.
이름난 형님들 후광을 좀 본적이 없냐는 농에 “딱히 꼬집을수야 없겠지만 적어도 어느 집안이라 알려졌을 때 손해본적은 없었다고 생각한다”며 싱긋 웃었다.
그러고보니 싱긋 웃는 바로 저 모습이 그의 최대 매력포인트라는 생각과 함께 장시간에 걸친 인터뷰가 끝을 맺었다.
성연진 기자/yjsung@heradcorp.com
kimh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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