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예방 각종 프로젝트 운영 유족 80%이상 심리부검 동참 언론보도 엄격금지 모방 방지

유족모임 활성화 우울증 극복 생명중시 사고도 큰 요인으로

1980년대 초 핀란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였다. 자살률이 10만명당 30.3명에 달했다. 핀란드 정부는 자살률 1위 국가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1986~1996년에 범국가적 자살방지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심리적 부검’을 통해 모든 자살사건을 철저히 조사연구했다. 심리적ㆍ문화적ㆍ사회적 분석을 통해 죽음의 동기 및 과정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 자살의 원인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었다.

핀란드 정부는 자살자 1300명의 유족을 심층조사해 4년간 분석한 뒤 자살위험군에 대한 대책을 세웠다. 이어 지역 보건소마다 정신상담 전문의를 배치하는 등 종합적인 자살예방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이 같은 자살예방에 시민들이 참여하는 비용은 모두 무료였다.

정부의 정책에 국민들도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심리부검에 참여하는 자살 유가족의 비율이 83%에 달했다. 그 결과 1990년 30.3명의 자살률이 2004년 20.4명으로 30% 급감했다.

OECD 헬스데이터 2012에 따르면 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낮은 나라는 그리스(3.2명)다. 이어 멕시코(4.8명), 이탈리아(5.9명)의 순이다. 영국 6.7명, 네덜란드 9.2명, 독일 10.8명, 스웨덴 11.7명, 미국 12.0명 등 주요 국가의 자살률 역시 10명 안팎이다.

그럼 지중해에 자리잡은 나라, 그리스의 자살률이 가장 낮은 이유는 뭘까. 그리스는 최근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자살자가 급속히 늘고 있지만 지난 수십년간 전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낮은 국가였다.

아르기로 카소타키 가토풀루(Argyro Kasotaki-Gatopoulou) 한국외국어대 그리스어과 교수는 “자살률이 낮은 이유는 그리스인들이 생명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르기로 교수는 “그리스 문명과 도덕 철학은 생명과 인생의 밝은 부분을 지향하며 발달해 왔다”면서 “그리스인들은 개인의 자유와 창의력, 삶의 즐거움을 중요시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리스인은 항상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융통성 있게 산다”면서 “자신의 감정을 남에게 솔직하게 드러내며 가족 간의 유대가 강해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고 돕기 때문에 자살을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아르기로 교수는 또 “일년 내내 화창한 날씨와 느긋한 문화 역시 자살률이 낮은 이유”라고 덧붙였다.

그리스의 국교인 그리스정교회가 자살자에 대해서는 교회와 성직자가 장례를 주관할 수 없도록 하는 등 자살을 엄격히 금지한 것도 또 다른 이유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최근 “그리스 정교가 자살을 허용하지 않아 그동안 그리스가 유럽 최저 자살률을 기록해 왔다”고 전했다.

자살률 최저 국가들은 대부분 유럽의 선진국들이다. 폴 이프(Paul Yip) 국제자살예방협회(IASP) 부회장은 영국과 이탈리아, 네덜란드, 독일 등 선진국들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자살예방에 나서 자살률을 낮췄다고 설명했다.

폴 부회장은 “영국은 수십년 전 정부가 나서 자살예방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영국 정부는 국민들의 자살을 사전에 막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면서 “이탈리아 등 다른 유럽의 선진국 역시 정부가 나서 자살예방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 국가는 모방자살(베르테르 효과) 예방을 위해서도 자살 보도 준칙을 마련하는 등 무분별한 자살 보도를 막는 데 앞장서고 있다.

폴 부회장은 “영국 등은 자살 보도에 대해서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정부와 미디어가 함께 유명인의 자살 보도를 제한하는 등 베르테르 효과를 막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자살 보도 가이드라인을 통해 자살에 관한 사실적인 보도와 소설에 가까운 묘사를 자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자살률이 낮은 국가에서는 자살자 유가족 간의 교류 역시 활발하게 이뤄진다. 정택수 자살예방센터 상담팀장은 “미국은 자살 유가족끼리의 모임이 일반적이다. 유가족끼리 모여 마라톤 대회를 하는 등 서로 위로하면서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을 이겨낸다”면서 “자살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이 우울증에 빠져 다시 자살하는 것을 방지하는 사회시스템이 잘 마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각 나라의 자살률 수치에만 집착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있다. 자살률 데이터를 완전히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래니 베르만(Lanny Berman) IASP 회장은 “멕시코(4.8명) 등 중남미 국가 상당수의 자살률이 낮은데, 이것은 사망 원인을 규명하는 사회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 자살률이 낮게 나오는 것이다. 실제로는 자살률이 높을 것”이라면서 “각 나라의 자살률을 비교하는 것보다는 각국의 상황에 맞는 자살예방프로그램을 마련해 실천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민상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