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 서영이’ 동거하다 헤어지듯 혼인관계 정리도 독립적으로…

‘아들 녀석들’ 승기 바람기때문에 시어머니 만류에도 가볍게 결정

설문조사 “이혼 안된다” 56.6% 이혼에 대해 관대한 성향 뚜렷

예전 집안 대 집안의 얽힘 아닌 시대상 반영 당사자간 문제 취급

“내가 위자료 줘야 될 상황이야. 우재 씨 덕분에 월급 안 쓰고 모은 돈 충분해요. 집 벌써 구했고, 아무 것도 필요 없어요.”

여자는 집을 구해주겠다는 전 남편의 호의를 거절하고, 오히려 결혼 기간 중 월급을 모을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는 태도다 . KBS2 드라마 ‘내 딸 서영이’의 서영(이보영 분)이 결혼 3년 만에 이혼한 직후 남편 우재(이상윤 분)와 나누는 대화의 한 토막이다. 시부모와 남편에게 고아(孤兒)라고 거짓말한 게 들통나자 서영은 시댁에서 자기 짐을 챙겨 홀연히 떠났다. 마치 동거하다 헤어지듯 혼인관계 정리 과정은 독립적이고, ‘쿨했다’.

MBC ‘아들 녀석들’의 막내아들 승기(서인국 분)는 바람기 때문에 아내 미림(윤세인 분)과 이혼했다. 이 과정에서 시모는 미림을 설득하지만, 미림은 가볍게 이혼을 결정한다.

이처럼 요즘 가족드라마 속에서 ‘이혼’은 더 이상 무거운 주제가 아닌 게 됐다. 결혼과 이혼이 집안 대 집안의 얽힘과 정리가 아닌 남녀 당사자 간의 문제로 취급된다. 당사자 주변에 장구한 설명을 하지도 않고, 주변인들 역시 호들갑스럽게 반응하지 않는다.

그런가하면 사별한 남녀의 재혼, 전처나 내연녀의 자녀를 키우는 등 새로운 가족 구성원도 곧잘 등장한다.

종편 화제작인 김수현 작가의 ‘무자식 상팔자’에선 다양한 형태의 가족상이 그려지는데, 사회적으로 성공한 맏딸은 비혼모(非婚母), 아들은 동거만 하는 독신주의자, 막내아들은 부모의 경제에 의존하는 조혼(早婚) 세대다. 또 조부모는 느즈막이 황혼이혼을 준비 중이다.

‘아들 녀석들’의 장남은 아내와 사별하고 홀로 자녀를 키우다 자신과 마찬가지 처지로 남편을 사별한 여자를 만나 재혼,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내딸 서영이’의 호정 엄마 김강순(송옥숙 분)은 오래전에 애 딸린 남자(홍요섭 분)와 결혼했고, 차지선(김혜옥 분)은 입양아를 내 자식처럼 길렀다.

시트콤 ‘패밀리’는 재혼 남녀의 결합을 통해 각자의 1~3세대가 다같이 한가족이 돼가는 과정을 담았다.

전문가들은 불과 2~3년 전과 비교하면 상당한 변화라고 입을 모은다. 예컨대 ‘불굴의 며느리’ ‘엄마가 뿔났다’ 등 과거 가족드라마에서 이혼이나, 이혼남성과 초혼여성의 결혼을 다루는 장면에선 사회통념에 따라 호들갑스러운 시각이 있었다. 지금은 전혀 ‘문제적’이지 않다. 과거 아침 드라마에서 많이 나타났던 이혼녀와 총각의 사랑, 이혼녀의 사회적 성공 등 주부를 위한 판타지도 이젠 새롭지 않다.

왜 그런 것일까. 이수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내 딸 서영이’의 경우 이혼을 두고 인생의 실패라기보다 여성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묘사가 흥미롭다”면서 “요즘 방송에선 싱글맘, 입양 사례가 많이 나오는데 실제로 가족의 개념은 변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더 이상 ‘결혼’에 의해서만 가족이 만들어지는 게 아닌 시대다. 결혼을 통하지 않은 가족도 가족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며, 이는 ‘반(反)가족’ 이나 ‘가족해체’가 아닌 ‘가족 개념의 확장’, ‘가족 다양화’”라고 강조했다.

그런 면에서 드라마는 현실을 앞서간다기보다 변화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최근 연구조사(‘가족의 미래와 여성-여성가족정책전망’, 여성정책연구원. 2012)를 봐도 그렇다. ‘이혼해선 안 된다’는 응답률은 1998년 60.3%에서 2008년 58.6%로 떨어졌고, 2010년엔 56.6%로 더 낮아졌다. 같은 기간 ‘이혼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유보적 답변은 29.1%, 31.9%, 33.4% 등으로 완만하게 증가했다. ‘재혼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는 52.2%, 55%, 58% 등으로 차츰 늘었다.

또 ‘결혼생활은 당사자보다 가족관계가 우선이다’에 대해 ‘전적으로 찬성(1점)’과 ‘전적으로 반대’(5점) 등 5점 척도로 분석한 결과, 동의도는 2008년 2.51에서 2010년 2.49로 감소했다. ‘남녀가 결혼하지 않더라도 함께 살 수 있다’에 대한 동의도는 2.16에서 2.18로 늘었다.

드라마가 어떠한 문제의식 없이 가족을 쉽게 해체시키는 경향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작가 입장에선 추후 재결합 등 극적 상황을 만들기 위한 재미 추구 차원에서 아무렇지 않게 이혼을 다루는 것 같다”면서 “변화된 사회상을 소재로만 단순 차용할 게 아니라 왜 그런 사회 구조가 됐는지 작가의식이나 문제의식이 없다는 건 아쉽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드라마는 아직 전통적인 결혼제도의 가치를 존중하고 두둔한다. 서영-우재, 승기-미림은 다시 핑크빛 무드가 감도는 것으로 미뤄 화해하고 재결합할 가능성이 크다. 이혼만큼 재결합도 가볍고 쿨하게 이뤄질 분위기다.

한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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