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0회> 바람에맞서는 법(19)
글 채희문 | 그림 현경희
높은 양반… 여태껏 높은 양반으로만 통해왔던 그는 왠지 몰라도 표정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거울 앞에 서서 옷깃을 바로 여미는 것을 보니 곧 저~ 높은 곳으로 등극할 분을 만나러 떠날 모양이었다.
“박 기사, 논현동 안가로 가세.”
참으로 오랜만에 안가로 향하는 길이었다. 안가… 안전가옥의 준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비밀스러운 집을 뜻하는 말이지만 겉으로 보기엔 흔하디흔한 칵테일 바와 다름없었다. 조금 고급스럽다는 차이점 외에는.
어느새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인지, 승용차 안에 설치된 DVD에서는 대통령 선거결과에 따른 특별방송이 연이어 보도되는 중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세상풍경 역시 어수선했다. 교차로마다 가두연설을 하는 당원들과 선거운동원들의 노래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들이 구현하는 율동이 볼만했다.
“박 기사, 기다리는 동안 계속 뉴스만 보고 있었지? 5개국 관통 랠리대회에 관한 보도는 없었나? 북한의 반응이 어떤지 대대적으로 보도됐어?”
“물론입니다. 좀 전까지만 해도 곧 북한 땅을 통과하게 될 랠리 카들에 관한 보도가 이어졌고요, 지금도 밑에 자막으로 계속 깔리고 있습니다. 얼롱소? 유명한 선수 이름인가 보죠? 얼룩소도 아니고… 하여간 얼롱소와 슈마허라는 선수가 대담을 했다는 데요… 곧 북한에서 F1이 열리게 될지도 모른다는데요?”
“그래? 그거 바람직한 일이군. 이 양반아, 얼롱소라고… 아주 유명한 F1 선수야. 세계적인 선수지.”
“그런데 F1이 뭡니까? 특보 님.”
“설명하려면 골치 아파. 자넨 운전이나 잘 하라고.”
“알겠습니다, 특보 님.”
높은 양반은… 그러고 보니 특보, 즉 대선 주자의 특별보좌관이었다. 특별보좌관이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대선주자를 만나러가는 중이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뭔가 심각한 사건이 생긴 모양인데…
“도착했습니다. 특보 님.”
“알겠네, 자넨 내가 나올 때 까지 계속 뉴스를 보면서 북한관련 보도 횟수를 체크하라고. 채널을 부지런히 돌려가면서 확인 해.”
특보는 이렇게 다짐한 뒤에 곧바로 안가를 향해 들어갔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평범한 칵테일 바였으므로 서너 군데의 테이블에 앉아 술을 마시는 중년 남녀들의 모습이 평온해 보이기만 했다.
그러나 밀실 안에서 벌어지는 대화내용은 결코 평온치 않았다. 벽에 붙은 TV를 보기 위해 의자를 돌려 앉은 대선 주자는 한 마디의 멘트, 한 줄의 자막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모양이었다. 그는 벽을 향해 앉은 채로 특보의 보고를 받는 중이었다.
“북한 영내 통과를 성사시킨 유민 회장의 공이 크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이쯤에서 차단막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대표 님.”
“왜요? 무슨 문제를 일으키던가요?”
“애초에 했던 약속을 잊은 모양입니다. 조금 전에 전화를 받았는데… 국내 방송사에 압력을 가해달라고 하더군요.”
“이권 때문인가요?”
“랠리 기간 동안 아홉시 뉴스 전, 후 광고를 독점하게 해달라는 청탁이 있었습니다. 그런 일을 전화로 청탁하는 것도 문제지만, 태도며 발상부터가 벌써 싹이 노랗습니다.”
특보는 대선주자의 뒤통수를 향해 이렇게 의견을 밝혔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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