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2회> 바람에 맞서는 법(21)
글 채희문 | 그림 현경희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는 말이 있다. 썩 어울리는 비유는 아니지만, 5개국 관통 랠리 경기가 시작되자 저마다 가슴 속에 사연을 담은 사람들이 랠리 대회의 시발점을 향해 모여들고 있었다.
예원희는 북한의 국경도시 투먼에서 항저우로, 유한솜과 권일주는 인천공항에서 항저우로, N-Dos 단의 지원조인 모리타니아의 젊은 군인 4명은 북서 아프리카에서 항저우로… 각자 비장한 사연을 가슴속에 품은 채 랠리대회가 열리는 곳으로 모여드는 중이었다.
그들 중 가장 먼저 항저우에 도착한 사람은 한때 북한의 통일신보 기자로 재직하다가 지금은 활동사진 작가로 변신한 미녀감독 예원희였다. 그녀가 중국 여행허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서열 32위 당 간부인 제 6 사단장의 헌신적인 배려 때문이었지만…
그녀가 5개국 관통 랠리대회의 촬영자격을 얻어 항저우로 떠난 사실에 더욱 기뻐한 사람은 바로 당 서열 33위인 도형철이었다.
“원희야, 이제야말로 너로 인해서 내 소원을 풀게 되는가보다. 너는 이번 랠리 기간 중에 기필코 내 동생… 도종호를 만나야 해. 남쪽 최대의 자동차 회사인 거성의 상무로 있는 네 작은아버지 말이야.”
예원희가 투먼을 떠나오던 날, 길게 이어진 국경다리까지 배웅을 나온 도형철은 눈물을 글썽인 채 그녀의 두 손을 꼭 쥐고 있었다.
“걱정 마시라요. 내가 어찌 그 약속을 어기갔습네까?”
예원희는 제 6 사단장의 빽으로 랠리대회 촬영 자격을 얻어냈지만 마음속엔 도형철을 위해 헌신하리라는 생각이 가득 차있을 뿐이었다. 왜냐고? 피는 물보다 강하기 때문에… 비록 양아버지이긴 하지만 도형철이야말로 그녀를 여태껏 키워준 은인이기 때문이었다.
제 6 사단장은 북한에 자동차 경주바람을 일으키려 애쓰는 중이었고, 도형철은 골프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중이었다. 어째서 북한 당국이 자동차 경주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그로 인해 제 6 사단장의 당 서열이 도형철보다 한 끗발 위인 32위로 뛰어오른 사실은 그녀로서도 못마땅했던 것이다.
“이번에 작은아바지를 만나면 꼴푸 육성을 위한 돈 보따리를 풀어내도록 하갔습네다. 걱정 마시라요. 이번 일만 잘 되면 아바지는 당 서열 30위쯤으로 올라가지 않갔습네까? 그리 되면 삼일포에 조각배라도 띄워놓고 까스맥주나 실컷 마시지요, 머.”
그들이 눈물로 이별의 순간을 장식했다면… 상해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권일주는 모진 운명을 탓하고 있었다. 아들 권도일이 랠리 경기 도중에 유호성 선수를 살해하려는 음모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 여동생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를 굴려야만 하는 운명.
“아가야, 너는 운명이란 걸 믿니?”
“또 아드님 걱정을 하시는군요? 너무 우려하지 마세요. 아무리 코스가 험해도 도일 오빠는 무사히 완주할 테니까요.”
“그래, 아무렴… 그래야지.”
권일주는 유한솜과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있었지만 결코 그녀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휠체어 없이 혼자 걸을 수만 있어도 그녀를 멀리 내쳤겠지만… 그녀와 함께 유호성의 죽음을 관람하러 가는 꼴이 되었으니 한숨만 길게 새어나올 따름이었다.
그런가 하면, 멀리 북서 아프리카의 변두리 공항을 출발한 모리타니아의 젊은 군인 네 명은 뜻하지 않게 찾아온 행운에 들떠있는 중이었다. 느닷없이 중동의 N-Dos 단이란 지원 단체에서 5개국 관통 랠리 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자금지원을 해 준 사실이 감격스러울 뿐이었는데…
“이번에 행운을 움켜쥐게 된 것은 지난번 ‘와랑 사막’에서 벌어진 자동차 경주에서 우승한 대가라고 봐야지. 이미 세계에서 우리를 주목하고 있다는 뜻 아니겠어?”
그들은 N-Dos 단의 실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암살 작전이 실패할 경우, 가난한 아프리카의 군인들에게 테러혐의를 덮어씌우기 위한 계략으로 초대된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그들은… 연신 희희낙락하며 꿈에 부풀어 있었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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