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8> 감추어진 승부 (22) 글 채희문 | 그림 현경희
“어,어,어…”
공지호 부부장은 이제 아무런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오로지 신음과도 같은 외마디 소리만 질러댈 뿐이었다. 가뜩이나 술에 쩐 상태에서 거꾸로 서있자니 두 팔이 부들부들 떨려왔으므로 잔뜩 힘을 주어야만 했다. 게다가 지겟작대기까지 공을 들이다보니 힘 줘야 할 곳이 무려 세 군데…
“이제 폭격에 들어갑네다, 부부장 동무.”
엇 뜨거워라! 그녀가 미사일의 뇌관에 불을 댕기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공지호는 아무런 반항도 할 수 없었다. 두 팔로 땅을 짚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입으로 외마디 소리만 계속 질러 댈 뿐이었다.
씩스나인 자세라고 하나? 잠시 눈앞으로 그녀의 발목이 스쳐 지나가는가 싶더니, 금세 그녀의 얼굴이 눈앞으로 들이밀어졌다. 그러더니 또다시 그녀의 발목이, 잠시 후엔 또다시 그녀의 얼굴이…
이를테면 그녀는 주특기를 살려 회전축을 중심으로 뱅글뱅글 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공지호의 지겟작대기는 뜨끈뜨끈하게 달구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그의 지겟작대기가 회전축 역할을 하는 모양이었다.
“으,으,으…”
입으로 모르스 부호를 찍어대는 것일까? 쯔쯔, 또또, 어어, 으으… 하는 동안 공지호의 눈앞이 어느새 노래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회전동작은 현란했다. 원래 북한에서는 서커스를 으뜸으로 여긴다던데, 그 곡예단에서 갈고 닦은 실력에 성심성의가 더해졌으니 아무래도 그의 눈이 뱅뱅 도는 모양이었다.
한 술 더 떠서… 서울을 폭격하는 동안 그녀는 발끝으로 전등 스위치를 켰다가 끄는 동작까지 반복하기 시작했다. 한번 돌면서 전등불을 끄고, 다시 돌면서 전등불을 켜니 공지호의 눈앞이 번쩍번쩍…
“그만, 그만! 미치겠다우!”
“하늘과 땅이 번떡번떡 하디요? 어느새 서울이 불바다가 된 모양입네다.”
그녀는 언젠가부터 반대로 회전하는 중이었다. 회전이 반복될수록 공지호의 호흡도 가빠지기 시작했다. 머리를 땅으로 향하고 있으니 아마 혈압도 꽤나 높아졌을 것이다. 그래서인가?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팽팽해지기 시작했는데, 그 와중에 전등불도 켜졌다, 꺼졌다 를 반복하니 마치 대기권을 돌파하는 우주선에 매달린 기분이었다.
“아, 위대하신… 수령 동지!”
공지호 부부장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모양이었다. 정신이 아득해지니 순간적으로 현실을 망각하고 오랫동안 학습된 본능으로 되돌아갔다는 말이다. 서울이 불바다가 되는구나.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 미사일을 쏘아야만 할 터.
“민족의 태양이시며, 아시아의 등불이신… 수령 동지 만세!”
공지호의 목에 핏줄이 울대처럼 솟아나고 있었다. 그는 뜨거워진 미사일의 발사단추를 과감히 눌렀던 것이다. 아흑, 아흑… 회전축을 중심으로 뱅뱅 돌던 노란모자 에미나이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드디어 발사! 공지호의 귀에서 헬리콥터 프로펠러 소리가 들려오고, 눈으로는 번쩍번쩍 섬광이 일기 시작했다. 순간 두 팔이 부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그의 몸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러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벌떡 솟아올랐다. 그뿐인가? 거꾸로 흐르던 땀이 입속으로 찝찔하게 밀려들고 눈물이 핑 돌기 시작했다.
“내레 이렇게 죽는구만!”
“부부장 동무, 이제 겨우 서울을 폭격했을 뿐입네다.”
전등불이 켜졌다, 꺼졌다 반복하는 6층 호텔방에서는 계속 진격명령이 내려지고 있었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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