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날이 지능화되는 범죄의 진화양상에 따라 수사에도 전문적 소양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같은 필요에 따라 경찰청은 최근 20여개 분야에 대한 수사전문가를 선발했다. 이들의 자문을 받아 조직폭력배 분야를 시작으로 CCTV 분석, 보이스피싱, 대포차, 프로파일러(범죄행동분석가), 혈흔형태분석, 법최면, 의료사고 등 총 20회에 걸쳐 관련 범죄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숨겨진 수사기법에 대해 알아본다.<편집자주>
[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넌 방금 ‘아니’라고 말했어! 게임 오버! (총성) 빵!.”
인질협상을 다룬 영화 ‘네고시에이터(1998년작)’에서 나오는 한 장면이다.
최고의 인질협상전문가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돌연 인질범이 돼버린 사무엘 잭슨이 대치 중 내세운 금기어(‘아니’)를 경찰이 실수로 말해버리자 인질에게 총을 쏘는 것처럼 가장해 협상을 유리한 국면으로 이끄는 대목이다.
이처럼 인질 상황에선 말 한마디에도 생명이 오갈 수 있는 일촉즉발의 순간이 계속된다.
이 때문에 인질협상가의 자질로 고도의 직관력과 빠른 판단력,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도 서두르지 않는 노련함과 인내심 등이 꼽힌다.
최근 우리나라도 전 남편과 의붓딸을 살해한 안살 인질극 사건, 형과 형수를 죽인 화성 총기사건 등 영화에서 나올 법한 인질 상황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인질협상 전문가로 선발된 임경호<사진> 경찰청 수사국 경위는 인질사건의 관건은 피의자의 정체와 동기가 뭔지를 빠르고 정확히 파악해내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임 경위는 “가해자든 피해자든 처음엔 경찰이라고 하면 상대하길 거부한다”며 “그때 사용하는게 ‘페이스 리딩(pace leading)’ 기법인데 처음엔 가해자를 인격적으로 대해주면서 감정을 마음껏 발산하게 한 뒤 서서히 우리가 원하는 말을 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중요한게 인질범과의 라포(rapport·유대감) 형성인데, 동시에 피의자의 모든 요구에 응해주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가령 술이나 마약을 넣어 달라거나 도주할 차량을 대 달라는 등 인질범이 라포를 역이용할 수 있는 요구에 대해선 과감히 거절하는 것이 키 포인트다.
임 경위는 대표적인 협상의 기술 2가지를 소개했다.
하나는 ‘풋 인 더 도어(foot in the door)’ 기법으로, 우선 문 안에 발을 들여놓듯 인질범에게 사소한 제안부터 시작해 점차 협상의 폭을 넓혀나가는 일종의 점강법이다.
반대로 인질범이 처음부터 협상의 여지를 주지 않을 땐 초반에 강하게 나가는 ‘도어 인 더 페이스(door in the face)’ 기법이 있다.
협상 불응시 즉시 진압에 들어가겠다는 식으로 했다가 점차 수위를 낮춰가는 점추법이다.
인질협상팀은 주협상관(네고시에이터), 보조협상관, 코치, 정보관 등 4명 정도로 구성되고 협상 시한은 보통 24~48시간 내로 잡힌다.
또 하나의 주의점은 어떤 상황에서도 네고시에이터를 교체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인질범에게 불신감과 두려움을 일으켜 인질을 극단적으로 몰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인질범에게 해선 안되는 말의 유형으론 충고, 판단, 설득, 핀잔, 명령 등이 있다.
패배의식에 젖어있는 인질범에게 무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인질범의 끝말을 따라하거나 ‘예’, ‘아니오’ 외의 대답을 유도할 수 있는 개방형 질문, 1인칭의 완곡한 표현 등이 좋다.
임 경위는 “인질 상황뿐 아니라 모든 경찰 업무가 적극적으로 들어주는 것에 기반한 위기 협상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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