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경원ㆍ이태형 기자] ‘연(緣)’이란 한자는 부수인 ‘실사(糸)’에 ‘돼지 달아날 단(彖)’이 조합된 글자다.
돼지가 도망가도 묶어 놓은 실 때문에 다시 찾을 수 있는 것처럼 인간 사이에도 단단한 끈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연’이라는 뜻풀이가 가능하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한 개인의 ‘연’에서 파생된 부패로 한국 사회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그가 남긴 메모지 한 장에서 촉발된 ‘성완종 게이트’ 는 유력 정ㆍ관계, 금융계 인사들과의 비리 스캔들을 야기시키며 돈으로 얽힌 권력층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
부정부패 척결을 앞장서 외쳤던 이완구 전 국무총리마저 금품 수수 혐의로 낙마해 검찰소환을 앞둔 신세로 전락했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은 한국 사회에서 사적인 인연이 공적 영역에서도 여전히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민간부문에서는 ‘연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지만, 정작 권력 핵심부에서 한국 사회의 고질병은 쉽게 치유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성 전 회장은 개인적 연을 공적으로 활용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2007년 출간한 자신의 자서전에서는 ‘연 맺는 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사람을 만날 때 이해관계를 먼저 따지는 것은 바보짓”이라며 “사심없이 만나다 보면 언젠가는 자기도 모르게 그 관계 속에서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맺은 인연의 대표적인 형태가 성 전 회장이 지난 2000년 주도적으로 만든 ‘충청포럼’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정운찬 전 국무총리 등 충청권 지역 정ㆍ관계 유력 인사와 언론인을 두루 포섭하며 창립 15년 만에 전국 10개 지부, 회원 3500명을 거느린 거대 조직이 된 이 사조직은 이번 파문의 핵심 ‘고리’가 되고 있다.
비단 충청포럼 뿐 아니라 여러 지연ㆍ혈연ㆍ학연 단체들이 한국 사회의 다양한 층위에 인연의 끈을 매놓고 있다.
매년 아시아 국가들의 부패지수를 측정해 공개하는 홍콩 정치경제리스크컨설턴시(PERC)가 최근 내놓은 ‘2015 아시아ㆍ태평양 국가 부패인식’ 보고서에서 한국을 “다른 어떤 선진국보다 최악의 부패 인식을 갖고 있는 ‘특별한 국가’”라고 평가한 것도 이처럼 다양한 인연의 끈이 부패로 이어질 수 있음을 문제삼은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사적 인연을 부패구조로 악용하는 사회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입은 모은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군사정권 등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오면서 국민의 지지에 기반한 권력이 출범하지 못했고, 친분이나 인맥으로 인사를 하면서 ‘내 사람’, ‘내 라인’이라는 개념이 강해졌다”며 “사회 전반에 걸쳐 감시 기능을 강화하고, 옴부즈맨 제도 활용 등을 통해 일상적인 문제의 감시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부정부패, 정실주의, ‘관피아’ 논란까지 불거지며 사람 관계에 따른 신뢰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어느 때보다 강한 것이 사실”이라며 “관계에 대한 신뢰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사회적 프로세스에서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더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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