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한석희 기자]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침대는 과학입니다’ 이제는 빛이 바랠 정도로 지겹도록 듣는 광고 카피지만 들을수록 귀에 쏙 들어오는 감칠맛이 있다. ‘편안한 잠자리’ ‘숙면’에 대한 현대인의 오랜 갈망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불안하고, 사회가 어수선할 수록 사람들은 “당신의 잠자리는 안녕하십니까” 반문한다.
숙면을 이루지 못해 선잠에 들어야 하고, 때론 산더미 처럼 밀린 일과에 혹은 말 못할 고민에 쪽잠을 자는 게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사회에서 ‘잠’은 걷잡을 수 없는 욕망으로까지 비춰진다.
그렇다고 마냥 ‘잠’에 대한 생리학적 욕구를 채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고등학교 시절 숱하게 듣던 ‘4당 5락’은 성공하기 위해선 잠의 욕망마저 불태워야 하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대변한다. 365일 25시간을 살아야 하는 현대인에게 ‘잠’은 그만큼 이중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 한 대 값 하는 침대가 불티나게 팔린다
고가의 프리미엄 침대가 최근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것도 ‘편안한 잠, 안녕한 잠’에 대한 욕구와 맞물려 있다. 돈을 들여서라도 잠 만큼은 방해받지 않으려는 욕망이 크다는 것이다. 스웨덴 최고급 침대 브랜드 ‘덕시아나’(Duxiana)와 그리스 침대 브랜드 ‘코코맡’, 프랑스 명품 리빙토탈 브랜드 ‘리네로제’(ligne reset) 침대 등이 입소문을 타면서 또 다른 부(富)의 상징이 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1000만원~3000만원대에 달하는 ‘덕시아나’는 특히 일일이 손으로 조립한 메트리스가 가슴과 허리, 엉덩이 부분을 각각 다른 하중으로 떠받칠 수 있도록 3단으로 구성된 데다, 품질보증기간도 20년에 달해 VIP 고객들이 특별히 선호하고 있다고 한다. 덕시아나의 경우 매년 200% 이상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고가의 프리미엄 침대 매출은 2011년 19.5% 신장한 데 이어 2012년 32.7%, 지난해엔 38.9%로 해마다 큰 폭의 신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현대백화점 역시 올 들어 프리미엄 침대 매출 신장세가 가파르다. 덕시아나와 리네로제 등의 프리미엄 침대는 올 들어서만 10%대의 신장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700~800만원대의 템퍼와 씰리 등의 기능성 침대도 18%의 높은 신장세를 올리고 있다.
특히 기능성 침대의 경우 젊은층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최근 젊은 고객 위주로 힐링문화가 확산되면서 기능성 침대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지난 한 해에만 기능성 침대인 ‘템퍼’와 ‘나비드라텍스’가 각각 60%, 44%의 높은 신장세를 기록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안녕한 잠’에 대한 한국인의 입맛이 까다로워 지면서 최근 해외 명품 가구 브랜드들도 잇따라 백화점에 똬리를 틀고 있다. 리네로제는 국내에선 처음으로 지난해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 단독 매장을 차렸으며, 코모맡도 이달 초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정식 오픈하고 정상가에서 20%를 할인(3세트 한정) 판매하는 등의 행사를 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최근 수면이 정신 건강뿐만 아니라 심혈관계 질환인 고혈압, 심장병, 당뇨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되는 등 숙면을 위한 프리미엄 침대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며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건강하고 여유로운 삶을 원하며, 수면 및 휴식의 질과 직결돼 좋은 침대를 찾게 된다”고 말했다.
■잘 자는 것도 이젠 산업이다
보통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는 ‘삶의 질’의 변곡점으로 여겨진다. ‘어떻게 사냐’에서 ‘얼마나 잘 사냐’로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는 것이다. 수면산업이 본격 형성되는 것도 이 때부터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선 유난히 변곡점이 빨리 찾아왔다는 게 유통업계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소득에 비해 소비수준은 벌써 저 멀리 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경제가 어려웠던 2013년은 그 변환점의 한 가운데에 있다고 한다. 살기가 팍팍해졌다고는 하지만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와 같은 심리적 충격까지는 없었다. 그럭저럭 먹고 살만해졌다곤 하지만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에 휩싸였고, 갈등의 한 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잘 사냐’의 효율성에 집착하는 소비경향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실제 수면의 가장 기본이 되는 매트리스 시장 규모만 하더라도 지난 2011년 3400억원에 그쳤던 것이 지난 2013년에만 5000억원에 달했다. 신세계백화점이 본점과 강남점에 국내 백화점 업계에선 처음으로 베개 편집매장인 ‘필로우 컬렉션’을 선보인 것도 지난해다.
이 편집매장엔 수면 관련 산업이 발달한 선진국에서 직접 공수해 온 베개 전문 브랜드 제품들을 비롯해 편백, 메밀, 황토 등 한국의 전통적 베개 충전재를 활용해 국내 협력업체와 함께 개발한 제품 등 112종의 베개가 한데 모였다.
신세계는 소비자의 신체 특성 및 취향, 잠자는 자세 등에 맞춰 충전재와 높이 등을 결정하는 ‘맞춤식 베개 서비스’를 위해 일본에서 70%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침구업체 ‘니시카와’와 제휴해 제품을 들여 놓기도 했다.
‘필로우 컬렉션’을 주도했던 문용찬 신세계백화점 생활팀 과장은 “스트레스 등으로 수면 장애 인구가 늘면서 일본에선 2002∼2012년 사이에 각종 기능성 베개 매출이 약 3.5배 늘었었다”며 “앞으로 수면산업 관련 상품들을 한데 모은 ‘수면 갤러리’를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한 대 값과 맞먹는 고가의 프리미엄 침대가 불티나게 팔리고, 기능성 베개와 같은 수면관련 용품과 방향제 시장이 급성장 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기능성 베개는 지난해 12%, 에트로 등 프리미엄 침구류 등도 10% 증가했다. 기능성 베개와 프리미엄 침구류는 올들어서도 각각 18%, 16.6% 늘었다.
특정 공간에 향을 내는 향초나 룸스페레이, 디퓨저(diffuser) 등 홈프래그런스 제품 역시 불과 1년만에 백화점 곳곳을 점령했다.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지난 2012년 4월 경기점에 ‘프래그런스 편집매장’을 오픈했을 당시 5개 내외에 그쳤던 브랜드도 현재는 20개 이상의 브랜드로 늘었으며, 지난 2012년 2분기 4.7%에 그쳤던 홈프래그런스 매출 성장률이 지난해 4분기엔 64.4%로 껑충 뛰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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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mom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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