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콘셉트 ‘서서뷔페’ 인기 소상공인 민원…구청 집중단속 학원에서 접근성 안좋은 곳 이전 대기업도 비슷한 메뉴로 압박 포장마차 역사의 축소판 어디로…
‘개천에서 용 나기’를 꿈꾸는 고시,공시촌 포장마차의 컵밥은 눈물과 희망의 상징이다. 서서 후딱 주린 배를 채운 뒤 책상머리에 앉겠다는 수험생들의 다급한 마음을 담은 추억의 상품이다. 이곳 포장마차에선 좌절한 동료에 대한 위로, 공복(公僕)이 되면 무엇을 하겠다는 그들의 꿈, 합격한 친구에 대한 축하가 교차한다.
26일 오전 11시. 점심을 먹기엔 다소 이른 시간임에도 노량진역 3번출구를 나서자 한 쪽 팔에 책을 낀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이 와글와글 모여 ‘점심 쇼핑’을 하고 있었다. 3000원짜리 ‘김치삼겹컵밥’부터 ‘밥스테이크’까지 꼭 ‘밥’이 포함된 진기한 ‘메뉴 현수막’을 내건 포장마차 식당이 서울 동작경찰서 앞 약 200m 가량의 인도를 가득 메웠다. ▶관련기사 3면 지갑은 얇지만 꿈을 품은 공시생들의 ‘한끼’를 채워주던 컵밥촌이 터전을 옮긴다. 서울 동작구는 노량진 학원가에 위치한 컵밥촌을 올해 9월까지 인근 사육신 공원에 조성되는 ‘거리가게 특화거리’로 이전할 계획이다. 기존 컵밥촌은 ‘노점없는 거리’로 조성된다.
밥과 볶음김치, 계란, 스팸, 소시지 등을 큰 종이 그릇에 담아 3000원 안팎의 가격에 판매되는 컵밥은 ‘서서 빠르게 해결하는 뷔페’라는 독특한 컨셉트로 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컵밥촌의 높은 인기는 시샘을 불러왔다. 일부 소상공인들이 ‘노점상 때문에 장사가 되지 않는다’며 구청에 민원을 넣기 시작했다. 자연히 단속으로 이어졌다.
게다가 대기업이 슬며시 컵밥촌에 발을 내밀기도 했다. 프랜차이즈 기업들은 편의점 즉석메뉴로 컵밥을 내놓기 시작했다. 깔끔하게 포장된 편의점 컵밥을 노점이 당해낼 재간은 없어보였다.
우여곡절 끝에 터전을 옮기는 컵밥촌은 한국 포장마차 역사의 축소판이다.
지난해 기준 서울시에만 모두 8662건의 노점상이 있지만 그 역사와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명동, 동대문 등지의 포장마차 밀집지역은 해외 관광객이 먼저 찾을 만큼 명소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하지만 도시미관 개선과 교통 불편 등을 이유로 단속과 철거가 반복된 곳도 많다. 웬만한 중소기업 못지않은 소득을 올린 사장님도 있지만 하루하루 언제 쫓겨날지 모른채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노점상들도 존재한다. 지난해 노점상 단속 건수는 6379건에 이른다.
컵밥촌이 이전 모습을 되찾을지는 미지수다. 현재 컵밥거리로부터 120m가량 떨어진 사육신공원 맞은편 특화거리는 기존 컵밥촌과는 그리 멀지 않지만 애당초 학생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이다. 게다가 바쁜 공시생들이 굳이 더 먼 곳으로 싸구려 컵밥을 먹을 이유가 없다.
공시행 정진우(27) 씨는 “편하고 시간이 절약돼 컵밥을 자주 먹지만, 길 건너로 이전된다고 하면 굳이 찾지 않고 학원 근처 밥집에서 먹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공시생들의 눈물 젖은 컵밥촌도 시대 흐름에 따라 변화를 강요받고 있다. ‘컵밥촌의 거듭나기’는 스마트 시대를 거쳐가고 있는 한국 포장마차 문화가 새롭게 변신하는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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