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값 천정부지‘ 총성없는 전쟁’
中·中東 가세…너도나도 미술관 건립 투자·자기과시 큰손 컬렉터까지 합세
‘단색화 열풍’ 국내미술계도 과열 양상 국내 일각 “검증 안끝난 거품” 지적도
그림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올해 들어 세계 미술시장에서 ‘가장 비싼 그림’ 기록들이 잇달아 깨졌다. 비공식 개인 거래와 공식 경매 거래에서 모두 1위 자리가 바뀌었다.
개인 거래를 통해 폴 고갱의 ‘언제 결혼하니’가 3억달러에 팔리며 2억5000만달러에 팔렸던 폴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을 뛰어넘었다. 경매 거래에서는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이 약 1억7800만달러에 팔리며 가장 비싼 그림이 됐다. 이전 경매 최고가 기록은 1억4200만달러에 팔렸던 프랜시스 베이컨의 ‘루치안 프로이트의 세 가지 연구’였다. 재밌는 건 베이컨의 그림을 제외하면 3점의 최고가 그림을 모두 카타르 왕실에서 사들였다는 점이다.
해외 거장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국내 작가들의 작품값도 치솟고 있다. 바로 단색화다. 최근 국내 양대 미술품 경매회사가 홍콩에서 치렀던 경매에서 박서보, 윤형근, 정상화 작가 개인의 최고가 그림 기록이 깨졌다. 특히 박서보 작가의 경우 연내 10억원이 넘는 작품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돌고 있다.
왜 이렇게 그림값이 뛸까. 누가 이렇게 비싼 그림을 사들일까. 이러한 트렌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미술관 잇단 건립 붐…글로벌 문화전쟁=가장 큰 이유는 전세계가 문화예술 분야에서 ‘총성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문화예술 강국인 미국, 유럽에 이어 중국, 중동 등 신흥 부국들이 이 전쟁에 가세했다. 경제적인 부를 쌓고 그에 걸맞은 문화적 위상을 갖추려는 이들 국가가 경쟁적으로 미술관을 짓고 있다.
세계 2위 대국인 중국이 문화예술을 제 2의 성장 주력분야로 내세웠다. ‘미술관 시대’라는 말을 방불케 할 만큼 중국의 미술관에 대한 관심은 절정에 달했다. 중국 정부는 2011년 미술관을 포함, ‘박물관 사업 중장기 계획’을 발표하고, 전국 박물관을 2020년까지 6000개로 늘리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당시 중국의 박물관 수는 3400개 정도. 이후 450여개의 박물관이 더 지어지면서 2013년 기준으로 현재 3850개 이상의 박물관을 운영 중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동의 부국들도 잇달아 미술관을 유치하며 문화전쟁에 뛰어들었다. 아부다비는 올해 루브르박물관에 이어 2016년 자예드내셔널박물관, 2017년 구겐하임미술관을 차례로 열 예정이다. 카타르는 이슬람미술관, 아랍현대미술관에 이어 카타르 국립미술관 재개관까지 앞두고 있다.
이처럼 미술관이 늘어나다보니 여기에 걸 그림이 필요하게 된 건 당연지사다. 특히 기존의 명문 미술관들과 ‘급’을 같이 하기 위해서는 검증된 명작들이 필요하다. 카타르 왕가가 수천억원을 주고서라도 명작들을 구입하는 이유다.
▶늘어나는 슈퍼리치…컬렉션을 향한 끝없는 욕망=여기에 개인 슈퍼리치 컬렉터도 가세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순자산 3000만달러(약 330억원) 이상을 보유한 전세계 슈퍼리치는 17만명이 넘는다. 5000만달러 이상의 슈퍼리치는 12만8000여명. 이전 해보다 9500명이 늘어났다. 우리나라에서도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부자가 16만7000명으로 집계됐다. 중국 슈퍼리치는 사상 최대치를 찍었다. 5억위안(890억원)을 넘는 부호가 1만7000명이다.
이들은 금전적 투자효과와 함께 스타급 미술품을 손에 넣음으로써 자기 과시를 하고 싶어한다. 특히 경매에서 미술품은 돈을 가진 단 한 사람이 사는 것이라서, 이 사람이 작정하고 호가하면 가격이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 국내 경매회사 관계자의 말처럼 “미술품 가격은 파는 사람이 아니라 사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은 “상한가를 찍었다는 작품들이 여전히 계속 가격이 올라가는 데는 어마어마한 신흥 부자들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관장은 또 “미술관 경쟁만으로도 치열한데 여기에 슈퍼리치가 가세했기 때문에, 한정된 스타급 작가의 최고 브랜드 작품을 사려는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림값 뛰는 단색화…투자는 신중한 접근을=국내 미술계로 시야를 좁혀도 과열 양상이다. 특히 지난해부터 시작된 단색화 열풍이 국내 미술시장을 독식하다시피 하고 있다. 미술사가 송미숙 씨는 “소수 엘리트의 취향이 대중의 취향을 결정한다”면서 “현재의 단색화 트렌드는 일부 화랑들과 컬렉터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물”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시장에서만 과열되고 있다는 점이다. 단색화에 대한 의미있는 분석이 전세계 학계를 비롯한 미술계 전문가 집단에서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 일부에서 단색화 열기를 ‘거품’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하는 이유다.
이 관장은 “피카소처럼 세계 미술계에서 검증이 끝난 작가의 작품과 한국의 단색화는 다르다”고 말했다. 단색화는 1980년대 이후 현재 젊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사조는 아니라는 것. 그는 “대항마가 없는 상태에서 가장 한국적인 미술사조가 새로운 아이템으로 나온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라면서 “검증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일부 컬렉터만 치고 빠지는 시장에 상투 잡히듯 따라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계했다.
김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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