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해 대한민국에선 소통이 화두였다. 내내 소통을 바라던 정치권은 끝내 불통으로 시름하다 국민을 기만했고, 잊히기가 무섭게 터져나오는 갑을논란에 수많은 ‘을’들은 쓴웃음도 짓지 못했다. 좌절할 여력도, 상실할 겨를도 없는 국민들을 위로한 것은 다름 아닌 대중문화였다.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의 예능과 드라마는 대중의 지친 어깨를 어루만지며 함께 울고 웃었다. 누구도 성공을 예상치 않았던 아빠와 아이의 여행기(MBC 아빠!어디가?)는 한반도를 넘어 대륙을 삼켰고, 평균 나이 76세 할배들의 배낭여행기(tvN 꽃보다 할배)는 흔한 여행예능에 뻔하지 않은 캐릭터로 대박을 냈다. 정치권도 하지 못한 영호남 대통합은 전국팔도에서 모인 94학번 새내기들의 상경기를 담은 ‘응답하라1944(tvN)’를 통해 실현됐다.
그 중심에 두 얼굴이 있다. 아류가 넘쳐나는 방송가에서 시도된 적 없어 성공 가능성 조차 점칠 수 없는 새로움에 도전했고, ‘우리는 개인보다 뛰어나다’는 집단지성의 가치를 리더십에 접목했다. 집단창작의 결과물인 콘텐츠로 대중과 소통하고, 대중의 정서를 예리하게 파고들어 감동을 준 두 사람. 김영희 MBC 예능본부 특임국장과 이명한 CJ E&M tvN 제작기획국장이다.
방송가를 이끄는 두 PD의 ‘리더십’에는 공통의 키워드가 존재한다. 창의력을 바탕으로 한 ‘발견’과 ‘도전’, ‘소통’이다.
MBC의 간판 스타PD이자 최연소 예능국장을 지낸 김영희 PD는 자신을 오래도록 따라다닌 ‘쌀집아저씨’라는 별명과도 같은 프로듀서다. 화통한 웃음과 선량한 눈매, 친근한 모습은 익숙한 옆집 아저씨같은 이미지의 연출자이지만, 그가 손을 대는 곳에선 전혀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장르의 프로그램이 나왔다.
1986년 MBC에 입사한 이후 지금까지 한국방송대상부터 대통령상에 이르기까지 국내에서 받을 수 있는 상은 모조리 쓸어갔다. 1996년 연출한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이경규가 간다-양심냉장고’ 편을 통해 한국인의 질서의식을 화두에 올렸고, ‘책을 읽읍시다’ ‘느낌표’ ‘칭찬합시다’ 등 소위 ‘공익예능’으로 꼽히는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킨 인물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 코미디를 비롯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웃기고 즐기는 부분을 강조할 때 김영희 PD는 ‘대중과 나눈다’는 측면을 강조했다”며 “예능 프로그램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고민하며 사회에 도움이 되는 예능시대를 열어, 현재 MBC의 예능 트렌트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지난 2011년에는 가수들이 자신의 직업을 걸고 ‘서바이벌 경쟁’을 한다는 음악예능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를 통해 또 한 번 신드롬을 일으켰다. “묻혀진 가수를 발굴해 끄집어낸다”는 ‘발견’과 잊혀진 노래를 통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소통’이 접목된 콘텐츠였다. 2013년엔 1년간 20여 차례나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현지에서 플라잉 디렉터(Flying Director)로 활약, ‘나는 가수다’와 ‘아빠!어디가?’를 성공시킨 그는 한국을 넘어 대륙까지 사로잡은 ‘예능의 신’이 됐다.
김 PD는 하지만 안주하지 않았다. 1년 전엔 MBC 내부의 적극적인 추천에도 고사했던 신임사장 공모에 당당히 지원서를 제출했다. 최종 후보자 선정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김 PD는 “방송사는 소비자들의 사고방식, 생활방식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주는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는 미디어 기업”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시청자가 원하는 것을 가장 감각적으로 잘 아는 예능PD는 방송사의 콘텐츠 수입을 책임지는 중요한 인적 자원”이라며 출사표를 던졌다. ‘예능한류’의 전면에 서있는 콘텐츠 제작자를 넘어 국내 방송산업을 이끌겠다는 수장으로서의 추진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후배들 사이에서 김영희 PD는 새로운 시도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고, 도전을 성과로 가져오는 ‘살아있는 전설’인 동시에 ‘소통의 아이콘’이다. 김영희 PD는 촬영현장 녹음과 프로그램 자막, 스태프의 출연을 시도하며 예능 매뉴얼을 만들며 새로운 예능 시대를 연 스타PD였으며, MBC 예능국에선 김영희 PD가 새로운 작품에 돌입하면 최고의 스태프들이 서로 도와주려 나서는 든든한 지지기반도 가지고 있다.
이명한 tvN 제작기획총괄국장의 이름 옆엔 두 방송사의 예능 전성기가 적힌다. KBS 23기 공채PD로 입사해 ‘자유선언 토요대작전, 산장미팅-장미의 전쟁’ ‘스타 골든벨’을 비롯해 ‘해피선데이’의 ‘1박2일’, ‘남자의 자격’을 제작하며 KBS 예능의 황금기를 이끌었고, 2012년 CJ E&M으로 몸을 옮겨 지난 한 해 ‘꽃보다 할배’ ‘응답하라 1994’를 기획한 tvN 대박신화의 주인공이다.
이명한 PD가 만들어가는 작품에는 ‘발상의 전환’과 ‘휴머니즘’이 바탕한다. 세상에 없던 전혀 새로운 장르가 아닌, 기존의 장르 안에서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담아내는 구성이다. 시골촌놈의 정서를 끌어온 ‘응답하라 1994’, 실버세대를 향한 연민을 불러온 ‘꽃보다 할배’에선 KBS 시절부터 갈고 닦은 이 PD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빛을 발하며 대중의 공감대는 깊어졌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명한 PD가 ‘1박2일’을 만들 당시에도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장르는 존재했지만, 이 안에서 여행이라는 코드를 따로 떼내 스토리텔링을 시도했다”며 “예능 프로그램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장르와 방식의 이야기를 여행이라는 국한된 소재 안에서 풀어낸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일정한 제약을 두고 출연자들의 캐릭터를 기가 막히게 잡아냈고, 스태프 등 제작진을 자유자재로 카메라 안에 등장시켜 웃음을 유발할 수 있는 신선한 연출을 시도하는 것도 이 PD의 장점이다. 정 평론가는 이에 ”이명한 PD는 관찰예능의 전신으로 다큐멘터리처럼 찍고 촬영한 내용을 통해 인물들의 이야기를 발견했다“며 ”새로운 예능 포맷에 대한 실험을 시도하고, 기획작업을 많이 해 예능의 다양성에 기여하는 프로듀서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활약하던 시절을 지나 tvN 채널의 예능 프로그램을 총괄하며 후배들을 관리하는 위치에 있게된 지금 이명한 PD는 집단지성을 중시하는 ‘소통의 리더’로서의 면모를 비추고 있다. 새로운 도전을 밀고나가는 강력한 추진력은 후배들에겐 든든한 우산이 된다.
나영석 PD는 KBS 시절부터 호흡을 맞춰온 이명한 PD를 ‘가장 존경하는 선배’로 꼽으며 “모두를 아우르는 리더다. 후배든 선배든 가리지 않고 의견을 경청하고 의견이 모아질 때까지 기다린다”며 “그러나 한 번 중지가 모아지면 거침없이 실행한다. 신중함과 추진력이 조화된 리더십으로 후배들을 이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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