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본시장이 위기다. ‘자본시장의 꽃’이라 불리는 주식시장이 고사(枯死) 직전까지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는 “수십 년 동안 겪었던 어려움 가운데 최대 위기”라고 입을 모은다.

개인투자자들의 외면과 외국인의 대규모 이탈로 국내 증시의 활력은 크게 줄어들고 있다. 지난 2011년 7조원에 근접했던 유가증권시장의 일평균 주식거래대금은 지난해부터 4조원대로 떨어진 뒤 올 들어서는 3조원대로 내려앉았다. 주식 거래대금 감소세가 계속될 경우 증권사나 자산운용사 등 금융투자업계는 물론 국내 자본시장 자체가 고사할 수 있다.

국내가 어려우면 해외로라도 나가야 하는데 그쪽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현저하게 낮아지고 신흥국을 중심으로 금융위기가 불거져 나오면서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재정위기를 탈피하는 듯한 유럽과 경기회복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미국 역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문제는 이 같은 어려움이 한동안 참아내면 저절로 극복되는 단기적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선 장기간의 성장 둔화로 일본식 장기불황에 접어들었는데 이를 타개할 만한 대응수단이 없다.

베이비부머 세대 수백만명이 무더기로 은퇴하면서 몇 년 이내에 본격적으로 국민연금 수령기에 접어드는 인구학적 트렌드 역시 큰 부담요인이다. 그동안 이들이 꼬박꼬박 낸 국민연금으로 주식과 채권 매입이 늘어나 자본시장이 커지고 발달해 왔지만 거꾸로 이들이 무더기로 연금을 타게 되면 자본시장은 급속도로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수영장 속의 고래’로 불리는 국민연금이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대량으로 증권을 팔기 시작하면 그 충격은 생각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

‘줄탁동기(啄同機)’라는 말이 있다. 어미닭이 알을 품고 있다가 때가 되면 병아리가 성숙해 안에서 껍질을 쪼게 되는데 이것을 ‘줄()’이라 하고 어미닭이 그 소리에 반응해 바깥에서 껍질을 쪼는 것을 ‘탁(啄)’이라고 한다. 이 ‘줄탁(啄)’이 어느 한 쪽의 힘이 아니라 동시에 일어나야만 새로운 한 생명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껍질의 경계로 두 존재의 힘이 하나로 모아졌을 때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당국이 ‘규제 강화’에 나서면서 파생상품시장이 위축되고 그로 인해 현물시장까지 활력을 잃었다. 지금이 자본시장을 구성하는 모든 주체들이 고사 위기에 처한 자본시장을 살리는 데 총력을 기울일 때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1월부터 ‘금융서비스업 발전 민관합동 TF’를 구성, 5년 만에 규제 완화에 착수했다. 주식시장 진입ㆍ퇴출과 자산운용, 금융상품, 경영관리 등에 대한 규제를 전면 재점검하는 한편 비공식적 행정지도와 가이드라인 등 숨어 있는 규제도 점검해 올해 중 일괄 재정비를 단행한다는 방침이다.

자본시장이 발전하지 못한 나라가 선진국이 된 사례는 없다. 오랜만에 방향 전환에 나선 금융당국이 보다 실효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관련 업계와 시장에 귀를 열어야 할 것이다.

박세환 금융투자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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